계약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4
선자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춘기 소년의 막막한 심정을 '괴물 같은 그놈'이라는 실체에 비유해 판타지 기법으로 담아낸 <사춘기, 그놈>이라는 청소년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청소년기의 격동적인 감정 생활을 '강한 바람'과 '성난 파도'라는 뜻으로 질풍 노도라고 하는데, 좌절과 불만이 잠재하여 극단적인 사고와 과격한 감정을 갖게 되며 정서적인 동요가 심한 이 시기에는 자신도 미쳐 알지 못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보게 되기도 하기에 이를 '괴물'로 표현한 것은 너무도 적절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약자>>의 주인공 알음이처럼 말이다.

 

나는 억지로 웃어주었다. 내 속도 모르고 소희는 개운한 얼굴이었다. 반면 나는 거미줄을 먹어서인지 일그러진 얼굴이 쉽게 펴지지 않았다. 집에 가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다. (본문 21p)

 

알음이는 단짝 친구인 소희를 따라 빈집에 들어섰다. 귀신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고 짝사랑이 이루어지게 해달라는 소희의 간절한 소원을 빌기위한 의식을 위해 찾아 온 것이다. 사실 알음이는 좋아하는 남자애 때문에 고민하는 소희보다 더 현실적이고 처절한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유치원 때부터 단짝인 소희에게도 말하지 못할. 다정하고 완벽한 아빠는 가족에게 정이 넘치는 사람이었고, 정과 돈이 다 넘치는 아빠는 가족으로 모자라 남에게도 베풀었고 문제를 가져오곤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교통사고로 죽은 미린이라는 여자의 어린 아들을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아빠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하지만 알음이는 믿지 않는다. 착한 엄마는 결국 설득당했고 알음이는 그런 엄마를 마주 보기 힘들었다. 소희가 의식을 치루는 동안 함께 손을 잡고 있던 알음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고 밖으로 나오는 길에 얼굴을 휘감았던 거미줄은 알음의 기분을 더럽게 했다.

 

네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다. 계약은 시작되었다. (본문 52p)

 

알음은 꿈속에서 녹아내리던 괴물의 얼굴을 보았고 악몽은 이제부터가 시작인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그 불안감은 현실로 다가오고야 만다. 소희는 피겨를 판매하는 잘생기고 멋있지도 않은 율을 좋아하게 되고, 다가서지 못하는 소희 대신 율에게 연락을 하던 알음은 소희 몰래 율은 만난다. 어린시절 자신을 돌봐주던 할머니는 아빠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귀한 아이라도 된다는 듯이 보살폈다. 알음은 계약자가 소희가 아닌 자신에게 나타난 것에 대한 희열을 느끼며 계약자에게 '그 애를 없애달라'는 소원을 빌게 된다. 계약자가 말하는대로 움직이는 알음은 소희 몰래 율과 만나게 되고, 문제아로 불리는 나비와 꽁알과 엮이게 되면서 나쁜 일에 동참하게 된다. 거짓말은 나쁘지 않다는 계약자의 말처럼 소희에게 거짓말이 늘어나고 소희의 행동이 눈에 거슬리면서 소희와의 사이도 틀어지게 된다.

 

"네가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 애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본문 166p)

 

엄마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되고, 이제 모든 걸 그만두고 싶었지만 계약자는 알음을 놔주지 않았다. 알음은 계약자가 웃는 모습을 남겨두고 싶은 마음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애가 우는 사이렌 소리, 알음이 가보니 아이는 머리를 바닥에 찧어댔고 자신이 죽이려던 그 애는 진짜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 죽어. 내가 알 바 아니었다.(본문 211p) 계약자의 그림을 그려가던 알음은 아직 미완성이지만 꽁알과 닮아 있음을 느꼈다. 악마 같은 꽁알이 계약자였던 것이다. 알음은 이 모든 것을 꽁알의 탓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 애는 실제로 죽을 뻔했지만 죽지는 않았지만 소아우울증으로 오랜 기간 입원하여 치료받아야 한다. 알음은 더는 그 애를 증오하지 않았다. 아니 증오하는 대상이 처음부터 그 애가 아니였던 것이다. 알음은 드디어 그림을 완성했고 그 여자아이의 그림이 꽁알이 아니라 자신임을 알게 된다.

 

네가? 아니 내가. 내가 불러왔지. 걷잡을 수 없었어. 욕망이 커서 미칠 것 같았어. (본문 216p)

 

사랑, 미움, 욕망으로 소용돌이치는 알음의 내적갈등이 결국 계약자라는 괴물을 불러냈고, 알음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정당화해왔다. 그로인해 꼬일때로 꼬여버린 상황에서 알음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피겨(figure]

요약: 영화,만호,게임 등에 나오는 캐릭터들을 축소해 거의 완벽한 형태로 재현한 인형.

나는 이제야 피겨에 대한 정확한 뜻을 검색해보았다. 거의 완벽한 형태. 거의. 아주 완벽한 형태는 아니란 소리다. 계약자는 나지만, 사실은 내가 아닌 것처럼. 나는 피겨를 모으는 걸 관두기로 했다. (본문 218p)

 

자신 안에 소용돌이치던 자신이 아닌 또 다른 자신의 모습에서 혼란스러웠던 알음은 이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갈 것이다. 작가는 달라진 알음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분명 내가 아닌 것 같은 자신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안의 또 다른 모습인 괴물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런 자신과 싸우면서 두 개로 나뉜 자아를 가지고 사는 법을 배워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자신 안에 또 다른 자아가 있음에 혼란스러운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아직 그 방법에 서툴다. 이에 사춘기의 내적 갈등을 섬세하게 다룬  <<계약자>>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괴물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하는 작품이 되어줄 것이다. 스릴러,공포소설보다 더 무섭고 끔찍한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꼭 읽어봐야할 작품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