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불이 나던 그 날, 아무래도 딸을 구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라는 표지 문구가 눈길을 끄는 작품이다. <고백>을 통해 큰 화재를 낳으면서 베스트셀러 작가 대열에 오른 미나토 가나에는 <<모성>>에 대해 "이 작품 이후 작가를 그만 두어도 좋다고 생각하고 쓴 소설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 작품에 혼신을 다 했다고 한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모성은 본능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그의 질문은 책을 읽는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모성이란 무엇일까.

여성이 자기가 낳은 자식을 보살피며 키워내려고 하는 어머니로서의 본능적인 성질. (본문 54p)

 

모성에 대한 사전의 의미는 이렇다. 그렇다면 저자의 질문에 모성은 본능이 맞다고 해야 옳을 듯 싶다. 헌데 간혹 이런저런 사유로 태어난 아기를 버리는 미혼모, 훈육을 핑계로 폭력을 휘두르며 급기야 아이를 사망에 이르게하는 엄마들의 이야기가 종종 뉴스에 등장한다. 만약 모성이 본능이 맞다면 이런 여성들의 이야기가 생겨난다는 것에 어폐가 있다. 그렇다면, 모성은 본능이 아니라는 걸까? 책을 읽기도 전에 정말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여학생이 4층 자택에서 떨어져 의식불명이 되었다. 경찰은 사고와 자살 가능성을 모두 열어두고 조사에 착수했다. 여학생의 담임선생님은 성실하며 특별히 고민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고 했으며, 어머니는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기른 딸이 이렇게 되다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모성>>은 자택에서 떨어진 열일곱 살의 여고생의 기사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후 엄마의 고백과 딸의 회상이 중첩적으로 구성되면서 사건의 진실이 하나씩 드러낸다. 딸아이를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키웠다는 엄마는 왜 그랬냐는 신부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고, 엄마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스물네 살 결혼할 때로 돌아간다. 시민 문화센터의 회화 교실에서 알게 된 남편, 다도코로 사토시와의 결혼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서, 칭찬받고 싶어서 어릴 때부터 애를 썼던 일에서 비롯되었다. '아름다운 집'을 만들 수 있다는 확신에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게 되었고, 딸의 출산은 어머니의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된 날이었기에 엄마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다. 실상은 불행의 시작이었지만 말이다. 엄마는 자신처럼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아이가 되길 바랐고, 자신이 가장 먼저 사랑해줘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준 것처럼 말이다. 딸 이야기를 할 때 어머니는 진심으로 즐거워 보였고 똑똑한 아이로 키웠다는 어머니의 칭찬으로 엄마는 늘 행복함을 느꼈다.

그러나 딸의 회상은 달랐다. 외할머니가 자신에게 준 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지만, 엄마는 귀하게 길러주신 것은 분명하지만 조건 없는 사랑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의 존재는 엄마가 그린 행복이라는 그림의 일부분, 소도구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딸은 '이걸로 됐어'라고 생각하면서도 늘 엄마의 사랑을 갈구했기에 엄마가 가르치는대로 따랐다.

 

그리고 결혼하고 7년, 엄마가 막 서른한 살이 된 가을, 태풍으로 인해 뒷산이 무너져 흙더미가 밀어닥치면서 함께 자고 있던 어머니와 딸을 덮쳤다. 엄마는 어머니를 구하려고 하였고, 어머니는 아이를 먼저 구하라고 했다. 엄마는 자신에게 제일 소중한 사람은 낳아 길러주신 어머니였고, 아이는 다시 낳으면 된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딸을 구하라고 했다.

 

"부탁이다, 엄마 말을 들어. 나는 내가 사는 편보다 내 생명이 미래로 이어지는 게 더 기쁘단다. 그러니...."

"너를 낳아서 엄마는 진심으로 행복했단다. 고마워. 너의 사랑을 이번에는 저 아이에게 쏟아부어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길러주려무나."

엄마의 마지막 유언이었습니다. (본문 74p)

 

이 사건으로 아름다운 가족을 그린 그림은 불길에 타버렸고, 가족은 아빠의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었다. 시어머니에게 늘 구박을 받는 엄마 편에 서서 대신 할머니에게 대들고, 엄마를 도와주며 엄마에게 칭찬받으며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싶은 딸, 두 번 다시 엄마가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줄 일은 없다는 생각에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지곤 하는 엄마. 그렇게 엄마는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딸을 사랑하지 못했고, 딸은 그런 엄마에게 끊임없이 사랑받기를 원했다.

 

나는 소중하게 길러졌다.

그러나 나카타니 도루는, 그런 건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고 나에게 말했다. 형식적인 거라고. (본문 120p)

 

나의 단 하나뿐인 소원은 엄마가 다정하게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열심히 애썼구나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를 바랐다. 그런 사랑을 원했다.

그러니까 엄마, 이 손을 놓지 말아줘.... (본문 136p)

 

이렇게 엇갈린 두 사람의 마음은 점점 파국으로 치닫게 되고, 숨겨져 있던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딸은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어 자살을 감행했고, 엄마는 비로소 딸의 손을 움켜지면서 딸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모성>>은 진짜 엄마로 만들기 위해 애썼던 엄마의 어머니와 엄마 그리고 딸, 이 세 사람을 통해 모성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작품을 통해 '엄마와 딸'에 관한 감동적인 스토리와 만나왔고 그 속에 담겨진 진한 모성애를 통해 엄마에 대한 애틋함을 느끼곤 했다. 이제는 엄마가 된 딸들은 이런 이야기 속에서 슬픔을 느끼고,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자신의 딸에 대한 벅찬 감동을 느꼈었다. 하지만 <<모성>>은 달랐다. 작가는 '모성은 본능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독자들은 그 질문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 속에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모성은 인간이라면 타고나는 성질이 아니라, 학습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대다수의 사람이 처음부터 타고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모성애가 없다고 지탄받으면 그 엄마는 학습 능력이 아니라 인격을 부정당하는 착각에 빠져서, 자기는 그런 불완전한 인간이 아니며 틀림없이 모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말로 위장하려고 한다.

금지옥엽으로, 소중하게 기른 딸...(본문 55p)

 

사춘기 딸아이의 중2병이 극에 달했을 때, 달라진 딸아이의 모습이 당황스러워 미울 때가 있었다. 내가 낳은 딸인데도 미울 수가 있다니? 그때의 나는 '엄마'인 내 모습에 혼란을 겪은 듯 했다. 지금와 생각해보면(모성을 읽은 후) 아이가 태어나던 날, 그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벅찬 감동과는 다른 내 모습을 보며 우울했던 것은 아마 이런 혼란때문은 아니었나 싶다. 예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나이가 들면서, 내 엄마는 책 속의 엄마의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나를 길러주셨으리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내 엄마처럼 내 딸을 키우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다. 나는 두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것일까? 좋은 부모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일까? 내 엄마의 마음처럼 두 아이를 대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수많은 질문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모성이 후전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라면 나는 <<모성>>을 통해서 모성을 조금 더 배우고 길렀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건넨 질문에 확신할 수 있는 대답은 결코 할 수 없지만, 모성은 아이가 생겨나는 순간 벅찬 감동과 함께 내 안에서 아이와 함께 자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전에는 엄마의 마음 조차 이해하지 못하던 딸이었으나, 아이가 생겨나면서 조금씩 그 마음을 이해해가는 걸 보면 말이다.

 

"아이를 낳은 여자가 전부 어머니가 되는 건 아니에요. 모성이란 게, 여자라면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 성질도 아니고, 모성이 없어도 아이는 낳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태어나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모성애가 싹트는 사람도 있을 게 분명하고요. 거꾸로 모성이 있으면서도 누군가의 딸이고 싶고, 보호를 받는 입장이고 싶은 마음이 강하면 무의식중에 자기 안의 모성을 배제하는 여성도 있어요." (본문 229p)

 

누군가의 딸 혹은 누군가의 엄마라면 꼭 읽어보시라 적극 권하고 싶다. 그리고 작가가 건네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란다. 엄마에 대해, 이제는 딸이자 엄마인 나에게 대해 그리고 딸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달라지게 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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