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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6
프란츠 카프카 지음, 장혜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8월
평점 :
최근 몇 년 사이에 고전을 참 많이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변신>>은 아주 생소하다. 분명 줄거리는 알고 있음에도 읽어봤는지에 대한 기억조차 희미한 것을 보면, 암기해야 할 내용-책 제목, 저자, 대략의 줄거리, 작품의 의도-만 외우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온전히 <<변신>>을 접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해도 좋으리라. 이 작품은 20세기의 불안과 소외를 담고 있는 상징이라 하는데, 현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너무도 잘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말 놀라운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는 100년 전에 쓰여진 소설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현 사회의 자본주의의 병폐를 예견하고 쓴 듯 우리의 삶과 이어져있어 고전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푸른숲징검다리클래식 시리즈의 <<변신>>에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 다섯 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좀 까다롭고 어려운 느낌이 드는 작품들이지만 부록으로 수록된 [변신]제대로 읽기로 작품의 의도와 의미를 이해한다면 각 단편이 주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뒤숭숭한 꿈을 꾸다가 깨어나 흉측스런 벌레로 변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본문 9p)
[변신]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어느 날 아침 자신이 벌레로 변신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황당하고 기묘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벌레로 변신했으나 자신의 참담한 상황보다는 회사로 출근할 일을 더 걱정한다. 출근준비를 위해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조차 버거운 벌레가 되었지만, 그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위해 무엇이든 해보려한다. 그레고르는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멋진 집과 훌륭한 생활을 선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꼈는데, 이 모든 물질적 풍요와 만족이 순식간에 끝나 버릴까 걱정한다. 결국 출근하지 않은 그레고리를 찾아 온 지배인에 의해 벌레가 되어버린 그레고르의 모습이 드러나고야 만다. 아버지는 분노했으며 엄마는 두려움에 떨었다. 이제 그레고르는 방 안에서만 지내게 되었지만 여동생은 그레고르의 입맛을 살펴보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갖다 주곤 했으며, 그레고르는 가족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는 있었다. 그레고르가 변신한 지 한 달이 훌쩍 지나면서 그레고르의 방문은 굳게 닫혔고, 여동생 역시 그레고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그레고르는 가족에게 소외되고 있었고, 결국 가족들의 냉대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인간이 인간으로 존재할 수 없는 정체성의 위기, 가족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는 절대 고독, 인간이 단지 생계유지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상황. (본문 176p)
그레고르의 모습은 현 우리 중년의 아버지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있다. 그레고르는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가족의 생활비를 혼자 감당해왔으나 벌레가 되자 아버지는 냉대했으며 어머니와 여동생 마저도 그가 사람이 되는 방법을 강구하기보다는 자신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그레고르를 방치한다. 그레고르가 벌레가 된 자신보다 가족들의 생활비 걱정을 우선시하고 있었던 것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이런 가족들에게서 점점 소외되고 있는 그레고르는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아버지들이 점점 고독해지며 가족 사이에서 외톨이가 되어가는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다.
프란츠 카프카는 그레고르가 왜 벌레로 변신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와 다시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는 그 어떤 방법도 알려주지 않았다. [변신]제대로 읽기에서 언급하였듯이, 우리는 이 작품을 쓴 배경이 자본주의의 성숙기로서 과학과 기계의 발달로 대량 생산을 이루어 낸 시기였음에 주목해야한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야 했던 노동자들은 힘겨운 노동과 저임금, 실업 등 불안한 처지로 계속해서 내몰리고 있었고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부정당하던 노동자들의 정신적 소외가 한계 상황으로 치닫던 때(본문 173p)였기에 그레고르는 그 시대의 노동자들, 즉 인간이라는 사실을 부정당하던 노동자를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레고르는 자신이 인간임을 확인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를 벌레가 아닌 인간으로 봐주지 않았다. 그 시절의 노동자들의 모습이 바로 그레고르와 같았음을 카프카는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런지. 생활력의 상실로 가족으로부터 소외되어 노숙자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 현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레고르는 그들처럼 그렇게 가족으로부터 고립되어 갔는데, 프란츠 카프카는 자본주의의 병폐를 예견한 듯 [변신]에서 현 사회의 모습을 너무도 잘 담아냈다.
[변신]에서도 그러했듯이 그 외 수록된 [판결][시골 의사][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단식 광대]에서도 프란츠 카프카는 주인공들에게 해답이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막막한 삶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현 사회에서 부딪치는 막막한 현실의 소시민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셈이다.
"진석구 너는, 이 빌어먹을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괴물 프랑켄슈타인이야. 그래서 무섭다. 그리고 먼저 산 사람으로서 미안하다." ('특별한 배달' 본문 54p)
얼마 전 읽은 책에서 이런 구절을 보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청소년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이는 자본주의의 병폐로 인해 일어나는 문제점이 많다. 결국 [변신]에서 그레고르가 벌레가 되었듯이 우리 청소년들도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점점 괴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프란츠 카프카는 <<변신>>을 통해 그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주인공들의 해답이 없는 막막한 심정을 통해 이 시대의 아버지들 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의 마음도 대변하고 있었다.
고전은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성 있는 소설로서만 평가 받는 것이 아니라 100년이 넘은 지금과도 연결되어지고 있음에 더 큰 평가를 받고 있는 듯 하다. 고전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고전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부분은 아닐까 싶다.
<<변신>>은 다소 어려운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지만 현 사회와 자아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자본주의의 병폐가 주는 현 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가족과 자신의 위치를 되새겨보면 더 좋을 작품인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