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리고 가끔 고양이 - 이용한 시인의 센티멘털 고양이 여행
이용한 지음 / 북폴리오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어린시절 트라우마로 남아있던 길고양이에 대한 공포가 종이우산님의 <행복한 길고양이><보드랍고 따뜻하고 나른한>을 통해 극복했다면 이용한 작가의 <<흐리고 가끔 고양이>>는 내게 길고양이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동화나 소설에서 강아지가 꽤 흔한 소재였다면, 요즘 출판계에서 길고양이는 신선한 소재이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길고양이는 예전과 달리,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진 탓이다. 물론 여전히 길고양이에 대한 불편한 시각의 잔재가 뿌리깊이 박혀있긴 하지만.


고양이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나는 좀 더 오래 이 여행을 즐기고 싶다. 설령 그 길에서 아프고 슬픈 고양이를 만날지라도 그 낱낱의 사연과 희로애락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이 세상에 이런 고양이가 살다 갔다고. 그것은 때로 눈물겹지만 아름다웠다고. (시작하며 中)



이용한 시인은 제주 가파도에서 울릉도까지, 전남 구례에서 강원도 원주까지 2년 반 동안 만난 전국 60여 곳의 고양이들의 삶의 모습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그들과의 만남에는 안타깝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320여 컷의 사진들과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사람과 동물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제인 구달은 "사람에게는 동물을 다스릴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을 보호할 의무 있을 뿐이다." (본문 158p) 라고 말했다. 길고양이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비난을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갈 권리를 가진 자연의 한 부분임을 사진 속 고양이들은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양식 어장의 쥐 때문에 필요에 의해 고양이를 키웠던 거문도에서는 더 이상 고양이가 필요없어지자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이유로 살처분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무서운 이기심탓에 고양이 500마리를 대량으로 살처분한 일이 있었다. 지난 2008년에도 민원이 이어지자 '거문도 고양이 살리기 운동본부'가 구성되었는데, 과연 거문도의 생태계 파괴는 고양이가 주범일까? 고양이가 그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인간이야말로 더 커다란 혐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공존'과 '공생'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욕지도의 작은 포구 마을인 목과 마을은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속력을 내고 해안 도로를 달리다가는 높치기 십상인 마을이다. 사람들의 태도에 따라 고양이들의 행동은 달라지게 되는데, 저자는 사람과 고양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혼자만의 '고양이 마을'로 지정했다.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저 무심했다. 고양이가 선착장에 앉아 있거나 말거나, 화단에 누워 잠을 자거나 말거나, 수돗가에 와서 물을 마시거나 말거나. 이렇게 무심한 것만으로도 고양이는 저렇게 자유롭고 저렇게 평화롭다. 어쩌면 사람과 고양이의 진정한 공존의 모습은 저런 무심함에서 오는지도 모르겠다. (본문 43p)



애월항의 식당 주인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으로 동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과 '이년아'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몇 세대를 거치면서 고양이들을 돌볼고 있었고, 김녕미로공원에서는 고양이 공원을 꿈꾸는 캣대디 노릇을 하는 김영남 박사는 더 많은 어른들이 고양이를 좋아하게 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조계사의 캣맘 보살은 스무 마리 남짓 되는 고양이들을 돌보고 있다. '어쩌면 사무소' 카페의 면장 고양이, 대학로 카페 그린빈 2호점의 단골손님인 고양이 세 마리, 연남동 주택가의 '연남살롱'이자 '야옹살롱' 그리고 홍대 카페 '로닌' 그리고 부산 깡통시장 옆 곱창 골목 작은 족발집의 만복이와 자갈치시장의 상인들과 고양이 등은 사람과 고양이와의 공존과 공생의 모습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들이 고양이와 함께하는 일이 그리 호락호락 하지는 않다. 캣맘 보살님은 절 근처에 있는 노숙자가 가까이 다가오는 고양이의 눈으로 젓가락으로 찔러 애꾸눈이 되었다는 안타까운 사연과 지붕 위의 고양이가 시끄럽다고 돌을 던지며 해코지를 일삼는 사람에 대한 속상한 마음을 전했다. 아무 짓도 안 하고 그냥 앉아만 있음에도 둘둘 만 신문지 뭉치로 고양이를 위협하는 할아버지, 인심이 야박해서 더 고달픈 가파도 고양이들의 묘생, 시골 오일장 가축전에서 들려오는 절박한 아기 고양이의 외침은 슬픈 아기 고양이의 눈 때문에 마음이 더 아프다.



고양이의 접근을 막기 위해 쳐놓은 철조망이 안전하다고 믿고 그 속에서 쉬는 고양이, 그 철조망은 자연을 파괴하는 주범인 사람들의 마음같이 뾰족하기만 하다. 그러나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난간을 따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료를 주는 용두산공원의 캣맘과 나란히 줄을 서서 사료를 먹는 고양이의 모습은 철조망 같은 사람들의 마음도 녹여낼 수 있을 거 같아 흐뭇하기만 하다.
고생뿐인 묘생의 삶, 그러나 욕을 먹으면서도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과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보다.



고양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당신이 존재하는 그 이유와 같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버림받으면 슬프고, 폭력이 무섭고, 고통이 두렵고, 아프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것. 먹고살기 위해 앴는 것.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당신이 행복과 평화를 바라듯 고양이도 그렇다. 하지만 한국에서 고양이는 먹어야 할 권리, 사랑할 권리, 살아갈 권리조차 무시당한다.어떻게 인간과 동물이 같을 수가 있느냐고 따지고 싶다면, 당신이 믿는 신에게 한번 물어보라. 그리고 당신이 사는 지구의 의견도 경청하기 바란다. 어느 쪽이 이 세상을 망치고 지구를 오염시키고 있는지. 어느 쪽이 가해자이고, 어느 쪽이 피해자인지. (본문 343p)



저자는 사람들이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건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고양이 여행을 하면서 저자가 만난 고양이와 사람들의 이야기는 때로는 슬픔과 분노와 절망을 주어 가슴을 먹먹하게 하지만, 때때로 웃음과 행복을 주기에 함께 공생하며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있어 그래도 마냥 아프지만은 않다.

예전에는 무섭고 시끄럽게만 들렸던 길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어느 순간 내게는 슬프게 들리기 시작했다.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오는 고양이들,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음에도 먼저 마음을 열어 발라당해주는 그들의 마음과 척박한 환경과 사람들의 해코지에도 부성애와 모성애로 자식들을 키워내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비로소 보이고 있다는 뜻일 게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려보았다.
'고양이도 먹고, 사람도 먹고, 고양이도 살고, 사람도 살고.' (본문 11p)



함께 먹고 산다는 것, 그리 어려운 것만 아닐 게다. 그들의 존재를 비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여기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으리라. 슬픔이라는 미래를 가진 고양이, 그 연민으로 고양이 발자국을 따라 나섰고 사료를 배달하게 된 작가, 가끔은 한국에서 고양이로 살아가는 것만큼 고양이 작가로 사는 것이 힘들지만 그가 있어 사람들은 고양이를 바라볼 수 있는 법을 배운다. 작가 그리고 많은 캣맘, 캣대디가 있어 지금은 비록 흐리고 가끔 고양이지만 내일은 대체로 고양이 맑음을 예보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들에게 감사의 마음과 사람들의 무서운 이기심탓에 고생스러운 묘생을 살아가게 된 한국의 고양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함께 전해본다.


"한 나라의 위대함과 도덕적 진보는 동물을 다루는 태도로 판단할 수 있다. 나는 나약한 동물일수록 인간의 잔인함에서 더욱 철저히 보호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이 유명한 발언은 우리가 지금도 새겨들어야 할 뼈아픈 충고인 것이다. (본문 161p)


(사진출처: '흐리고 가끔 고양이' 본문에서 발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