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5
헤르만 헤세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중3학년 딸아이의 생각과 성격 등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초등5학년때부터였다. 가정과 학교에서 늘 맑고 깨끗하고 아름답게 살기를 바라는 세계 속에 머물던 딸아이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반항과 갈등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선한 양심, 용서와 사랑이 있던 가족에서 느끼는 안정감을 좋아하면서도 반면 그 안정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였고, 그 속에서 갈등하는 듯 보였다. 이는 비단 내 딸아이만이 겪는 방황은 아닐 것인데, 허르만 헤세는 싱클레어라는 소년이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선과 악의 세계, 육체적 충동과 정신적 사유 사이에서 빚어지는 갈등, 성장의 단계마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데미안>>을 통해서 유년기에서 청년기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기록한 바 있다. 이렇게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겪게되는 고뇌와 갈등으로 인해 <<데미안>>은 청소년 시기에 꼭 읽어봐야 할 작품으로 꼽히고 있는데,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딸아이가 이 책을 처음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는 딸아이의 첫 소감은 '어렵다'였다. 까마득하게 오래 전 이 작품을 읽었던 나 역시도 어렵다는 생각을 먼저 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푸른숲징검다리클래식> 시리즈는 현직 국어 선생님의 해설을 통해 [데미안 제대로 읽기]로 작품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어 아이는 끝까지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작품이 아이의 내적인 갈등의 실마리를 풀어내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지금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서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겪는 고뇌와 갈등 등이 성장의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기를 나는 바란다.

 

어쩌면 나는 지금 갈림길에 서 있는지도 몰랐다. 이 순간부터 점점 더 나쁜 세계에 속하게 되고, 사악한 사람들과 비밀을 나누고, 그들에게 종속되어 복종하고,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할지도 몰랐다. 나는 잠깐 어른처럼, 영웅처럼 굴었다. 이제 그 결과를 책임져야 했다. (본문 31,32p)

 

선하고 밝은 세계에 속해있던 싱클레어는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면서 지금까지 속해있던 세상과는 다른 어려운 세계를 알게 된다. 크로머와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나쁜 짓거리를 한 것처럼 거짓말을 한 것이 결국 크로머에게 휘말리는 일이 되었고, 이는 싱클레어가 어둠의 세계와 맞닥뜨리는 결정적인 일이 되었으며, 아버지에게 마음을 닫아버리는 계기가 되고 만다. 싱클레어가 고통에서 구원받게 된 것은 상급생인 막스 데미안이 전학을 온 것에서 비롯되었는데, 그는 성경에 쓰여 있는 짧고 명확한 이야기에서 독특하고 비밀스러운 의미를 찾곤했다. 데미안은 자신에게서 크로머를 떨쳐 버려주었지만 싱클레어는 그런 데미안을 멀리했다. 그 역시도 낙원같은 자신의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 속해있었고 크로머와 다르게 자신을 유혹하는 자였던 탓이다. 데미안의 새로운 생각은 아주 위험하게 들렸는데, 지켜야 한다고 믿었던 개념들을 모두 뒤집으려 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다. (본문 137p)

 

김나지움으로 진학한 싱클레어는 여전히 선과 악의 세계에서 갈등한다. 그곳에서 만난 알폰스 베크와의 만남으로 싱클레어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선한 세계의 모든 것이 파괴되는 것을 느꼈고, 그를 통해 알게 된 금지된 것에 대해 분노를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쾌감도 느끼고 있었다. 아름답지 못한 방식으로 세상과 싸우던 그는 관심을 끄는 아가씨를 만나게 되고, 단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은 베아트리체라 이름붙힌 그녀는 그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끼쳤고 어두웠던 세계에서의 생활을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러던 중 데미안과의 조우,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 그리고 크나우어와의 만남으로 인생의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 새로운 경험을 더하게 되고, 이는 내면 깊은 곳의 진정한 자신을 찾는 과정이 되어준다.

 

미래를 어떻게 만들지 걱정하는 것은 표식을 지닌 사람들의 임무가 아니었다....각자가 오롯이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자기 안에서 자라는 자연의 싹에 완전히 일치하게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 불확실한 미래가 각자에게 어떤 일을 초래하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본문 219p)

 

확신이 없는 갈망에 자신을 빼앗기면 안 돼요. 당신이 뭘 원하는지 난 알고 있어요. 그 갈망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해요. 아니면 제대로 갈망하든가요. 마음속으로 성취될 거라는 확신으로 갈망한다면 실현도 되는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갈망만 하다가 곧 후회를 하지요. 그러면서 두려워하고요. 그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해요." (본문 222,223p)

 

<<데미안>>에서 헤세는 인간의 내부에 함께 존재하는 양면성을 발견하고 그것이 한 단계 승화되어 조화를 이루는 과정이 성장의 과정(본문 260p)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새에게 알은 하나의 세계이다. 새는 다른 세계로 나오기 위해 알에서 나오려고 힘겹게 싸운다. 우리가 유년기에서 청년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유년기라는 세계를 깨고 나와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선과 악, 밝음과 어두움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시련을 겪게 된다. 뿐만 아니라, 성과 어두운 뒷골목의 호기심과 충동도 따라온다. 물론 이런 성장과정 속에서 빚어지는 갈등과 고뇌는 유년기의 알을 깨고 나오게 하는 용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성장 과정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는 크로머와 베크처럼 악으로 이끌 것이고, 누군가는 데미안처럼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끌며, 누군가는 피스토리우스처럼 정신적 성장을 도울 것이며, 누군가는 베아트리체처럼 어두운 세계에서 구원해주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들 모두는 바로 우리가 인생에서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계단(본문 261p)이 되어준다는 점이다.

 

이제 '그'와 완전히 똑같은, 내 친구이자 인도자인 '그'와 똑같은 나 자신의 모습을. (본문 248p)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인물이었지만, 마지막에 싱클레어가 자신의 모습에서 데미안을 보았던 것처럼 싱클레어가 성장과정을 통해 깨닫게 된 삶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데미안>>은 성인이 된 내게도 난해한 작품이면서 아주 강렬한 작품이다. [데미안 제대로 읽기]를 통해 시대적 배경이나 작품에 대한 작가의 의도 등을 엿보지 않았다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고노와 갈등, 밝고 어두움 등 인간의 양면성, 세상이 가진 두 가지의 모습을 겪은 후 어른이 되어 읽게 된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내면 갈등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꽤 벅찬 느낌이 들었다. 지금 알에서 나오려고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춘기 딸아이에게 이 작품이 주는 감흥은 나와는 또 다른 떨림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싱클레어가 껍질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야 더 성숙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보여주었듯이, 지금 사춘기 청소년들이 겪는 고뇌와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데미안'이라는 인생의 진실을 찾아가기를 바란다. 푸른숲징검다리클래식의 <<데미안>>은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싱클레어의 '데미안'이 되어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