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머즈 하이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박정임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1985년에 일어난 사상 최악의 항공기 추락 사고 JAL 123편의 비극 실화를 바탕으로 한 <<클라이머즈 하이>>를 읽고 있을 때, 아시아나 항공기 사고가 일어났다. 뉴스를 통해 사고장면과 사고내용을 본 탓인지 항공기 추락 사고를 다룬 이 작품의 긴장감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반면 보도 현장을 다룬 내용 탓인지 책을 읽는내내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사고에 대한 기사 역시 놓치지 못했다. 이렇게 책의 스토리와 현실 속의 사건이 맞물려지면서 나는 이 작품에 더욱 강하게 흡입된 거 같다.

<<클라이머즈 하이>>는 항공기 추락 사고라는 최악의 사건으로 최대의 특종을 맞게 된 지역신문사 긴타칸토의 기자들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보도현장과 신문사 데스크인 유키가 함께 가장 험하다고 알려진 암벽 봉우리인 쓰이타데이와에 함께 등반하기로 한 안자이의 사고를 중심으로 한 두 가지 이야기가 서로 맞물려 구성된 작품이다.

 

유키는 안자이의 아들 린타로와 함께 인간을 위압적인 쓰이타데이와 앞에 서 있다. 17년 전 사전답사를 왔을 때 느꼈던 경외감이 다시 온몸을 지배한다. 이번에는 정말 오르는 것이다. 오르지 않으면 안된다. 마음속에 울리는 안자이의 소리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신의 그 17년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산에 오르기 위해 유키는 1985년 8월 12일 모든 것이 시작되었던 그날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지역신문사인 긴타칸토신문사에 근무하는 마흔 살의 유키는 사내에서 최고참 기자로, 부하를 두지 않고 재량껏 움직이는 프리핸드의 위치이다. 유키가 현경의 팀장을 맡고 있을 때 유키 밑으로 배치되었던 1년차 기자였던 모치즈키 료타는 배속 6일째 유키의 사진 수배 지시를 받고 나갔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말았던 사고 탓이다. '오르자 모임'을 통해 알게된 안자이와 함께 반 년 전 사전답사를 다녀왔던 쓰이타데이와에 오르는 일이 바로 내일로 다가왔다. 하지만 524명을 태운 JAL 123편이 나가노 현과 군마현에 추락하면서 유키는 일본항공 취재 전권이 맡겨지고 총괄 데스크 석이 세팅되면서 유키는 안자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유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안자이의 집에 전화를 걸어 비행기 사고가 있어서 산에 갈 수 없다고 전했지만, 안자이는 식물인간이 된 채 돌아왔다.

한편 최대의 사건의 총괄을 맞게 된 유키는 전쟁이 시작된 것 같은 보도 현장 속에서 상세한 보도를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후배들이 현장에서 작성한 르포가 실리는 것을 방해하는 선배 기자들, 조직내에서 일어나는 비열한 암투와 기자들 간의 대립 등으로 상황이 녹록치않다.

 

"신문사는 신문이 상품입니다. 이쪽은 그 신문을 만들고 있는 겁니다. 벌지도 못한다는 말 따위 용서할 수 없습니다."

"헛소리 집어 쳐. 구독료라고 해봐야 얼마 되지도 않아. 광고 수입이 없으면 아무리 천황의 말이라고 해도 신문은 단 하루도 나올 수 없어." (본문 77p)

 

<<클라이머즈 하이>>는 이렇게 두 갈래로 이야기가 흘러가지만, 또 하나 눈여겨 볼 것은 40대를 살아가는 유키를 통해 현 우리 사화의 아버지상을 볼 수 있다. 아버지로서의 유키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상처로 아들 준이와의 관계에 영향을 미쳐 두 사람의 갈등은 더욱 깊어만 간다. 비행기 사고의 총괄을 맡게 된 유키는 후배의 르포기사를 실어주고자 하지만 이를 방해하는 차장과 차장의 편에 선 사장으로 인해 유키는 무기력해진다. 이런 유키의 모습은 아버지로서, 회사의 직원으로서 살아가는 현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모습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데스크 따위가 의견을 말하지 마."

"읽어주십시오."

"자네 잘리고 싶나?"

 

... 기자에 미련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할 만큼 했다. 앞으로는 더 추해질 뿐이다.

가족도 필요 없다.

겉치레다. 마음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런 걸 가족이라고 할 수 있을까. 벌벌 떨면서 아들의 눈치나 살피고 사는 것은 더 이상 싫다. 해고됐다고 하면 유미코도 정나미가 떨어지겠지. 혼자서 살아가면 된다.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혼자인 편이 훨씬...........

.....마음 같은 건 통하지 않아도 좋다. 혼자는 싫다.

 

"대단히 실례했습니다." (본문 134,135,136p)

 

식물인간이 된 안자이는 "내려오기 위해서" 산에 오른다고 말했다. '내려오기 위해 오른다'는 안자이의 말은 내내 유키의 마음을 파고 들었는데, 당시 산에 오르는 것에 대해 납득하지 못했던 유키는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쓰이타데이와에 오르면서 안자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내려가기 위해 오르는 거지-.

안자이의 말은 지금도 귓가를 맴돌고 있다. 하지만 내려가지 않고 보내는 인생도 잘못된 인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죽으 때까지 있는 힘껏 달린다. 넘어져도 상처를 입어도 패배를 맛보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계속 달린다.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은 의외로 그런 길 위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클라이머즈 하이. 오로지 위를 바라보며 곁눈질도 하지 않고 끝없이 계속 오른다. 그런 일생을 보낼 수 있다면,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본문 430,431p)

 

<<클라이머즈 하이>>는 지역신문사인 긴타칸토의 기자들의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보도 현장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이는 저자의 기자 시절의 경험이 반영되었다고 하는데, 그 사실감 탓인지 긴장감이 강하게 느껴진다. '혈압계를 둘렀을 때처럼 서서히 강하게 조여오는 긴장감이 있는 작품''리더스하이(reader's high)를 느끼게 했다''메가톤급 지진 한복판에 서 있는 느낌'이라는 호평을 받았다고 하니 그 긴장감이 어떠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두 줄기의 이야기에서 보여주는 유키의 삶은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되묻는 듯 보였다. 숨막히는 긴장감 속에 숨겨놓은 인생에 대한 고뇌가 작품의 무게를 더해주었고, 그 무게감은 쓰이다테이와와 같은 험한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해보게 했다.

 

"클라이머즈....하이?"

"말 안했었나?"
"처음 듣는 말인데."

"흥분상태가 극한까지 달해 공포감이 마비되어버리지."

"마비? 공포감을 느끼지 않는, 그런 건가?"

"바로 그거야. 홀린 듯이 올라가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쓰이타테이와 정상에 있는 거지.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본문 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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