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니 할배 파랑새 사과문고 74
권오단 지음, 김재홍 그림 / 파랑새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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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도, 이야기도 너무도 마음에 드는 책을 알게 되었다. 서포 김만중과 소년 유복이의 만남을 담은 이 책은, 역사적 사실 속에 창작을 가미하여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김만중에 대해 알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한 소년이 배움의 기쁨을 알게 되고 꿈을 꾸게 되는 과정이 잘 버무려진 완성도 높은 작품이다. 또한 머리카락, 주름, 나뭇잎 하나하나까지 사실적으로 그려진 삽화는 보는 즐거움까지 선사한다.


<<노자니 할배>>는 김만중이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외로운 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김만중은 이곳에서 '노자니 할배'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노자니 할배는 놀고먹는 할아버지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무렵 김만중은 <서포만필>과 <사씨남정기>를 집필하고 있었던 듯 싶은데, 김만중은 한글을 천시하던 시대에 한글의 우수함을 이야기로 증명해 낸 사람이기도 하다고 한다. 이 이야기 속에는 김만중의 그런 마음이 잘 드러난다.


사람이 살지 않았던 폐가에 머물게 된 노자니 할배, 주인공 유복이는 샘터에 물을 구하러 갔다가 노자니 할배를 만나게 된다. 열두 살인 유복이는 유복자로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아빠는 고기를 잡으러 갔다가 돌아가셨고, 엄마는 바람나서 할머니한테 쫓겨났다고 한다. 유복이는 할머니가 엄마를 못살게 굴어서 엄마가 도망갔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할머니를 미워한다. 한양에 살고 있는 엄마가 보고 싶은 유복이는 산정에 올랐다가 다시금 노자니 할배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말동무가 된다. 노자니 할배는 유복이에게 유복자였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할머니에게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 말한다. 아니나 다를까, 할머니는 청상과부가 된 며느리가 불쌍해서 독한 마음을 먹고 모질게 대했던 그때의 심정을 유복에게 전한다. 그러나 유복은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세 아들을 모두 바다에서 잃은 할머니는 유복이가 어부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 대신 봉수처럼 노를 깍는 목공자가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다. 유복은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노자니 할배를 찾는다. 노자니 할배는 유복이에게 글을 알아야 사람 노릇을 할 수 있음을 일깨우며, 유복이에게 세종 대왕께서 만든 우리글인 언문을 가르친다.


"문자라는 것은 본래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들을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다. 중국의 한자는 창힐이 만들었다고 하는데 몇 만자나 되는 글자를 일일이 외워야 하기 때문에 배우기는 어렵고 사용하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란다. 하지만 언문은 이와는 다르단다. 언문은 훈민정음이라 하여 세종 대왕께서 글을 모르는 백성들을 위해 만든 글자란다. 자음과 모음의 숫자도 몇 되지 않아 배우기도 쉽고 사용하기도 쉽지. 자음과 모음을 합치면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을 기록할 수 있으니 말이다." (본문 57,58p)


유복은 그렇게 노자니 할배로부터 글을 배우게 되지만, 노자니 할배의 감시는 더욱 심해져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이 여의치가 않아진다. 노자니 할배는 유복이 글을 배우려는 정성이 갸륵하여 <구운몽>책을 선물하고 유복은 이 책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었고 그렇게 꿈을 꾸게 된다. 노자니 할배는 유복에게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라고 적힌 쪽지를 주며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 공부의 즐거움을 기억하라고 당부한다. 또한 '철저성침'에 얽히 이야기로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음을 일깨워준다. 노자니 할배는 무엇이나 제각각 맡은 몫이 있다고 하셨고, 유복은 필사쟁이를 꿈꾼다. 모친의 죽음으로 슬퍼하던 노자니 할배는 유복에게 연습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유복은 철저성침으로 노력하게 된다. 첫 필사일로 쌀 다섯 말을 받게 된 유복은 노자니 할배의 약을 사지만 모친의 죽음으로 상심하던 노자니 할배가 결국 돌아가시게 된다. 노자니 할배는 돌아가시기 직전 유복에게 책상 위에 있는 종이뭉치를 건넨다. 그 종이뭉치는 <사씨남정기>라는 이야기책이었다.


왕비의 명으로 유복에게 있던 노자니 할배가 준 모든 책이 불타게 되고, 유복이가 필사일을 하던 서점의 책 마저 모두 불타게 되자 유복을 책을 구하러 한양길에 오른다. 모든 책이 불탔지만 할머니의 지혜로 무사했던 <사씨남정기>를 들고 한양에 가게 된 유복은 노자니 할배가 마지막에 책을 건네며 했던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고, 결국 노자니 할배의 이야기는 후에 세상을 바꾸는 역할을 하게 된다. 한양에서 멀리서 엄마를 보게 된 유복은 엄마의 웃는 모습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했던 할머니의 마음을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이제 유복은 필사하는 틈틈이 각지의 전설이나 소문을 모아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노자니 할배의 말씀처럼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문자로 기록될 때 제일 아름답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이야기도 만들 것이다.


궁녀들 사이에 <사씨남정기>가 퍼졌고 결국 임금님의 손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임금님은 <사씨남정기>를 보고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폐비는 복위되었고 새 왕비는 희빈으로 강등되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세도를 누리던 장희재도 큰 벌을 받았다....노자니 할배의 바람처럼 <사씨남정기>는 세상을 바꾸었다. 나는 이야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또한 그것이 내 인생을 또 바꾸었다. (본문 195p)


<<노자니 할배>>는 서포 김만중과 만나게 된 소년 유복이 배움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고, 이야기를 통해 꿈을 꾸고 세상이 바뀌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야기의 힘을 알게 되는 과정을 담아냈다. 유복을 이끌어 준 노자니 할배 즉, 서포 김만중이 보여주는 우리말의 우수성, 이야기의 힘, 가족의 의미를 잘 일깨워준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성장하는 유복의 모습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탄탄한 구성력과 멋진 삽화로 구성된 <<노자니 할배>>는 이 책에서 표현하듯 이야기가 주는 힘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아이들은 배우는 즐거움이 무엇이며, 배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배움을 통해 유복처럼 꿈을 꾸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이야기의 힘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유익한 이야기들은 우리 아이들을 성장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 주리라.

(사진출처: '노자니 할배'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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