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 - 제22회 스바루 소설 신인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1
아사이 료 지음, 이수미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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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제목을 보고 기리시마가 어떤 이유로 동아리를 그만두게 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상상을 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는 기리시마의 친구일 것이고, 주인공은 기리시마일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웬걸. 기리시마는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리시마가 가진 존재감은 너무도 컸다. 그는 '위'였기 때문이다.

 

왜 고등학교 교실 안의 인간은 이토록 알기 쉽게 계층화되는 것일까? 남자 톱 그룹, 여자 톱 그룹, 그 외의 나머지. (본문 62p)

 

아무리 작은 사회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서열이 존재한다. 학교라고해서 다르지 않다. 학생들 사이에도 엄연히 계급이 존재하고 있다. '위'와 '아래'는 서로 융화될 수 없으며 그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존재한다. 그 계급의 '위'에 존재하던 인물 기리시마가 갑자기 배구부를 그만두게 되었다. 이 일로 한 시골 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 작은 파문이 일어난다.

기리시마의 일은 야구부, 배구부, 브라스밴드부, 영화부, 소프트볼부, 배드민턴부 동아리활동을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이슈가 되고, 동아리를 중심으로 한 여섯 학생들의 생활과 생각에 작은 변화를 일으킨다.

 

나는 기쁜 거다.

기리시마가 없어져서. (본문 30p)

 

배구부의 주장이었던 기리시마가 그만두면서 부주장이었던 고스케가 중심이 되고, 기리시마의 포지션이었던 리베로는 고이즈미 후스케가 맡게 되었다. 후스케의 기분은 어떨까? 기리시마가 손가락을 삐었을 때와 집안 사정으로 시합을 쉬었을 때 딱 두 번 외에는 공식전에 나갈 수 없었던 후스케였다. 너, 조금은 기쁘지? 라는 고스케의 말에 후스케는 자신의 마음이 어떤지 느끼게 된다. 하지만 마냥 기쁘기만 할 것 같은 후스케는 기리시마의 빈 자리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리고 알게 된다. 타임아웃 때마다 늘 벤치를 지키던 자신에게 의견을 구했던 기리시마의 마음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말이다.

 

왜 동아리 그만뒀어, 류타가 농구 좀 하게 해줘, 기리시마~, 라고 누군지도 모르는 기리시마에게 화풀이도 해본다. (본문 66p)

 

밴드부 주장인 사와지마 아야는 친구인 시노가 마음에 둔 류타를 짝사랑한다. 그러나 기리시마가 배구부를 그만둔 후에는 기리시마와 함께 농구하는 류타의 모습을 볼 수 없다. 시노의 길고 예쁜 갈색 머리, 핑크빛 입술이 아야의 머릿속을 헝클어 놓는다.

전교생 앞에서 고교생 영화 콩쿠르, 일명 영화 고시엔에 출품한 작품으로 특별상을 받게 된 마에다 로야, 스스로를 아래라고 판단하며 배스민턴부 가스미를 지켜만 본다.
배구부의 후스케의 여자친구로 등장하는 소프트볼의 미카는 자신을 죽은 친딸 '카오리'라고 생각하는 새엄마와 살아간다. 패배라는 걸 실감한 적이 없던 미카는 4번 에리카에게, 카오리에게 늘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17세, 고등학교 2학년. 새하얀 도화지. 자주 듣는 말이다. 분명 우리는 젊고 힘도 있고 새하얗고 도화지이기도 하지만, 어차피 붓도 없고 애당초 아무것도 그릴 마음이 없다는 게 문제다. (본문 173p)

 

앞으로 뭐든 손에 넣을 가능성을 품고 있는 손바닥만 있을 뿐, 지금은 그저 텅 비어 있다는 생각에 꿈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갖는 야구부의 히로키, 그는 기리시마가 그만 두고 더욱 초조해진다.

로야가 바라만보는 배드민턴부의 히가시하라 가스미는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는 유미와 친하게 지낸다. 그러나 유미는 자신과 친구임이 알려지면 가스미까지 따돌림 당할 것을 걱정한다. 가스미는 그렇지 않다고 말해보지만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다. 왜냐하면 자신도 그런 이유로 말을 걸어주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스미는 유미를 통해 그 사람과 함께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더 즐거울 것임을, 왜 자신이 한 걸음 나서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는 저자 아사이 료가 19세 때 쓴 작품이라고 한다. 아사이 료는 이 작품으로 신인상을 받았고, 영화화되면서 일본아카데미상 최우수작품상까지 받았다고 한다. 열입곱 살을 지낸 직후였기에, 그들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학교라는 사회에 속한 열일곱 살의 고등학생, 친구, 이성관계, 미래, 꿈에 대한 많은 부분에 고민과 불안, 초조가 공존하는 시기임과 동시에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에도 쉽게 흔들리는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서열이 존재하는 그들만의 세계인 학교에서는 더욱 그러하리라. 기리시마가 배구부를 그만 둔 것으로 많은 아이들에게 변화가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여섯 명의 아이들은 소위 '위'에 속하는 아이들을 동경하고 부러워하고 있으며 '아래'에 속한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을 갖고 있다. 그 서열 안에서 고민하고 꿈꾸고 갈등하는 열일곱 살 청춘들의 이야기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나이였던 저자가 너무 잘 묘사하고 있다.

 

열일곱 살인 우리는 생각한 대로 말한다. 그 순간 생각했던 것을 있는 그대로 크게 외친다. 하늘을 때리기라도 할 듯 뛰어오르고, 거리를 가르기라도 할 듯 뛰어다닌다....마음 가는대로 산다는 것이 왠지 기쁘고, 또 지금이 아니면 그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본문 11,12p)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는 옴니버스 형식이다. 서로 다른 여섯 명의 이야기지만 기리시마가 동아리를 그만 둔 것이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어 있으며 하나의 장면에 서로 다른 그들이 모습이 다 담겨져 있는 듯 하다. 열일곱 살 청춘들이 겪는 고민을 다 엿볼 수 있었는데, 학교라는 작은 사회 속에 존재하는 계급, 서열, 권력 등이 씁쓸한 느낌을 준다. 이들은 학교 밖 더 큰 사회로 나가게 될 것이다. '아래'라는 자격지심이 그들의 꿈이나 미래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섯 학생들이 그 자격지심에서 조금씩 벗어나 새하얀 도화지에 자신만의 미래를 그려가듯 말이다. 청춘이라는 자체만으로도 이들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수많은 붓을 가지고 있다. 그 붓으로 마음껏 도화지를 채워나가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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