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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니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6
이상권 지음, 오민석 해설 / 자음과모음 / 2012년 5월
평점 :
사춘기 딸을 둔 덕분에(?) 청소년 문학을 섭렵하듯이 열심히 읽고 있다. <<사랑니>>도 그런 맥락에서 읽어보게 된 작품인데, 무엇보다 저자 소개글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대도시에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갑자기 들이닥친 난독증과 우울증으로 생을 놓아버리고 싶었을 때가 있었는데, 이 시기에 문학이 찾아오면서 사춘기의 강을 아슬아슬하게 건넜다고 했다. 그는 그 시절이 가장 치열했으며, 가장 용감했으며, 가장 사랑하고 싶었으며, 가장 많이 슬퍼했고, 가장 자유로웠기에 작가가 된 뒤로도 청소년 이야기를 가장 많이 쓰고 싶었다고 한다. 호된 성장통을 겪은 그였기에 청소년들의 마음을 잘 대변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 탓에 책 읽기에 앞서 이 책에 대한 호감이 더욱 높아졌는데, 예상대로 저자는 각각의 작품 속에서 청소년들이 겪을 수 있을 고민과 아픔, 상처를 잘 어루만지고 있었다.
<<사랑니>>는 6편의 단편을 엮는 작품으로 장애, 가난, 낙태, 성폭력, 죽음 등 폭력의 세계에 맞서는 순수한 영혼들의 아름다운 저항을 이야기하고 있다.
[매운 떡볶이]에서는 장애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채영이는 임신한 작은 이모의 아기의 염색체에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고, 가족들이 모여 이모의 출산에 대한 논쟁을 벌이게 된다. 논쟁 중 자폐증에 걸린 장애 2급의 채영이의 사촌 해정이의 이야기가 거론되기도 하는데, 이에 채영은 장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어느 날 강아지 쭈글이가 새끼를 낳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채영은 강아지 고수가 새끼를 낳는 것을 지켜보았다는 해정에게 도움을 청하게 되는데, 이에 해정은 그냥 내비두면 다 알아서 한다는 간단한 대답을 내놓는다. 독자는 강아지 쭈글이와 이모의 임신을 통해 생명의 탄생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빠져들게 된다. 저자는 이 작품에서 생명의 문제는 인간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임을 암시하고자 했다고 한다.
생명은 그 자체 자신의 논리로 태어나며 때로 장애를 겪기도 하고 그렇게 더 큰 어떤 원리에 따라 살아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본문 215p)
표제작인 [사랑니]에서는 사랑니로 인한 치통으로 힘들어하는 진우가 사랑니를 뽑은 후 사촌 오빠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낙태 후에 힘들어하던 친구 풀잎이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담아냈다.
아, 얼마나 아팠을까, 넌, 넌, 넌....자궁 속에 있는 사랑니를.....아, 아, 아.......난 한 번도 그런 생각 하지 않았어. (본문 82p)
진우는 심한 치통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이는 혹독한 성장통을 치루면서 성장해가는 인생의 단면을 묘사한 듯 보였다.
-이빨이 쉬이 빠지지 않는 것은 아직 때가 되지 않아서 그래야. 더 기다려야 쓴다. 앞으로 세상을 살다 보문 이렇게 고통을 참으며 기다려야 헐 때가 많을 것이다. 절대 힘으로 빨라고 허지 말고..(본문 57p)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던 민우, 동우, 선우 세 친구가 중학교 때 동우와 주완이 맞짱 뜨는 날 함께 있으면서 주완 패거리로부터 폭력을 당했으나 오히려 주완에 의해 가해자로 몰리게 되면서 고통을 받게 되고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었지만 3년 만에 다시 만나는 날의 모습을 담았다. 피해자였지만 가해자가 되고 결국 문제아로 낙인 찍힌 민우는 친구들과의 재회를 꿈꾸었지만 주완과 친구가 되어있는 동우를 보면서 그 아픔과 고통이 전혀 희석되어 있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여기서 폭력이 악으로 가동되는 것은 그것이 정치성을 가질 때임을, 정치화된 폭력은 단순한 몸싸움 이상의 아픈 상처를 개인에게 각인시키며 민우는 정치화된 폭력이 지배하는 현실의 지도를 제공(본문 219p)하는 인물로 표현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이 내린 안마사가 사는 집]에서도 폭력이 소재가 되고 있지만. 이 작품은 치유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헌수를 성희롱하는 김한조 일행과 싸운 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가본 적 없던 시골집으로 찾아가게 된 진운이는 빈 집일거라 생각했던 집에 지윤이네 가족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할머니 집에 머물면서 지윤이로부터 가족의 이야기를 듣게 된 진운이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가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개 대신 남친]에서는 동물을 사랑하거나 혹은 집착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 작품에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저자의 생각이 담겨져 있었는데, 언뜻 보기에는 반려동물에 관한 이야기인 듯 보였지만 이 속에서도 폭력이 지배하는 현실이 밑바닥에 깔려져 있었다. 강아지를 좋아했지만 환경 탓에 기를 수 없었는데, 아빠 병수는 공부로 힘들어하는 딸에게 강아지를 키우자고 제안하지만 딸은 개보다는 남친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대답한다.
"개 대신 남친"이라는 슬로건은 폭력지배의 현실 안에서도 위축되지 않으며, 나약한 삶의 태도를 과감하게 버리고 건강한 관계적 삶으로 당당하게 나아가는 우리 청소년의 밝은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본문 223p)
<<사랑니>>에서 보여주는 6편의 단편에는 폭력이 지배하는 현실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작품 속 주인공들은 때로는 고통을 감내하고, 때로는 저항하며 또 때로는 고민하면서 폭력적인 현실에 맞서고 있었다. 표제작에서 보여준 고통을 참고 기다려야 하며 때가 있음을, 그 고통을 견디고 성장할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주었고, [신이 내린 안마사가 사는 집]에서 보여주듯 폭력을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은 가족임을 일깨운다. [그들이 다시 만났을 때]에서 보여준 정치화된 폭력의 고통은 현실의 모습을 많이 투영하고 있는 듯하여 씁쓸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듯 각각의 단편에서는 우리 현실에 깔려있는 다양한 폭력 속에서도 치유하고 성장하며 그리고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용기를 준다.
이 소설집은 인간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에게 당위의 작위 주기를 거부하는 청(소)소년들의 집용한 자기 싸움의 기록이다. -오만석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