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과 바다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34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박상은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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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읽었던 명작과 성인이 되어 읽는 명작이 주는 느낌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에 대한 신비로움, 즐거움 등으로 최근 명작을 자주 읽곤 한다. 불과 6개월 전에 <노인과 바다>를 읽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푸른숲징검다리클래식> 시리즈로 다시 읽어본 <<노인과 바다>>에서는 또 다른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이미 읽어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았으며, 다음에 벌어질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 이것이야말로 명작이 가지고 있는 힘이 아닐까 싶다.

특히 고전을 읽는 즐거움을 느끼게하는 <푸른숲징검다리클래식>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시리즈인데, 부록으로 수록되는 [명작 제대로 읽기]편을 통해 작품의 배경, 작가, 작품에 관한 설명, 더 나아가 작품의 의미를 소개함으로써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알아가게 되는 과정에서 독서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많은 고전작품에서는 그 시대적 현실을 작품속에 많이 투영하고 있는 반면, 이 작품은 시대 현실에 완전히 눈을 감았으며 '하드보일드 스타일'이라고 일컫는 간결하면서도 절제되고 힘찬 문체를 꾸준하게 구사하고 있다는 점을 알려준다. 단순히 헤밍웨이의 문체가 너무도 건조하다라고 느꼈던 나의 생각과 달리, '하드보일드 스타일' 문체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기에 문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또 한 가지를 배우게 된 셈이다. 덧붙히자면, 이 문체는 '무엇을' 말할 것인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떻게' 말할 것인가의 문제에도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사실의 담담한 진술만으로 주제를 드러내는데 비중을 두었다고 한다. (본문 160,162p) [제대로 읽기]를 통해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들을 알게 되면, 작가의 생각,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이해하는데 훨씬 수월하고 또한 재미있다. 이것이 바로 내가 <푸른숲징검다리클래식>을 좋아하는 이유다.

기존에 <노인과 바다>를 읽었을 때 느꼈던 초반부의 무비건조함과 달리 다시금 읽어보게 된 <<노인과 바다>>에서는 확실히 작품에 동화되기 수월했다.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작품의 매력을 이해하고나니 책을 읽는 몰입도가 더욱 높아진다.

 

노인의 머리는 역시 늙어 보였고, 눈을 감은 얼굴에서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노인은 무릎 위에 신문을 올려놓은 채 잠들어 있었다. 다행히도 팔로 누르고 있었기에 저녁 바람에도 날아가지 않았다. 발은 맨발이었다. (본문 20,21p)

주인공 산티아고는 노인이었고, 일상 생활에서 있어 소년 마놀린의 도움없이는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없는 나약한 존재이다. 작은 배로 혼자 고기잡이를 하는 산티아고는 84일이 되도록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했던 터라, 소년의 도움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미끼를 얻어야만 했다.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85일째 되는 날, 노인은 소년의 배웅을 받으며 먼 바다까지 나가게 되고 드디어 커다란 물고기가 낚시줄에 걸리게 된다. 물고기의 무게는 심상치 않았으며 노인은 며칠 밤낮을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게 된다.

 

'.....저놈이 저렇게 클 줄은 정말 몰랐군. 그래도 저놈을 죽이고 말겠어. 당당하고 늠름한 저놈을 말이야. 물론 옳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 그래도 저놈에게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사람이 무엇을 견딜 수 있는지 보여 줘야 해!' (본문 77p)

"인간은 패배하라고 태어난 게 아니야."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아." (본문 122p)

'희망을 버리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 더군다나 희망을 버리는 건 죄악이야.' (본문 124p)

 

오랜 사투 끝에 물고기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피 냄새를 맡은 상어들의 공격을 받게 되고, 산티아고가 바다에서 상어와 싸우는 불굴의 의지는 인간은 한계를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헤밍웨이는 산티아고를 통해서 인간은 결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가능성있는 존재이며 또한 인간이 얼마나 역경을 잘 이겨 내는지를 보여준다. 초반부 한없이 나약했던 그래서 이제는 삶의 한계에 부딪친 듯 보이는 노인이었지만, 인간은 결코 한계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언제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너무도 담대하게 그 한계를 넘어서는 산티아고의 사투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더불어 노인 산티아고와 소년 마놀린과의 우정과 신뢰 역시 감동적으로 그려졌는데 덧붙히자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산티아고의 독백 또한 여운을 남긴다.

 

'고기잡이는 나를 살아가게 만들면서, 나를 죽이기도 해. 아니, 아니지. 사실은 그 애가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거야. 나 자신을 너무 속여서는 안 되지.'(본문 125p)

 

안타깝게도 커다란 물고기는 커다란 뼈만 남기게 되었고, 노인은 패배감에 빠진다. 하지만 소년은 폭풍이 끝나면 다시 배를 타기 위한 준비를 하겠다는 말로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었고, 그는 비로소 사자꿈에 빠져든다. 노인의 독백, 소제목으로 등장하는 "인간은 파멸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라는 말은 인간의 존재, 그 본질을 잘 보여주었다.

<<노인과 바다>>는 이처럼 간결하면서도 절제된 문체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젊은 어부들은 바다를 남성형 '엘'을 붙여 '엘 마르'라고 불렀으며 바다를 경쟁 상대나 싸워야 하는 곳, 심지어 적으로 대했지만, 노인은 바다를 여성으로 여겼고, 바다가 큰 혜택을 줄 때도 있고 주지 않을 때도 있다고 생각했다. 행여나 바다가 난폭해지거나 심술을 부릴 때면 노인은 바다도 어쩔 수 없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래도 쉬지 않고 노를 저었고, 간혹 파도가 밀려와 소용돌이 치는 것을 제외하면, 바다는 무척이나 잔잔했기 때문에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는 데 그다지 힘이 들지 않았다. 노인은 노를 젓는 일도 삼분의 일은 조류에 흐름에 맡겼고, 때문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멀리까지 나올 수 있었다. (본문 35p)

바다에 대한 노인의 생각을 보면서 삶이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삶은 더 많이 갖고, 더 높은 곳에 올라서기 위해 싸우고 적으로 대하는 상대가 아니라, 조류의 흐름에 맡기듯 자연과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간혹 파도처럼 힘겨운 상황이 닥칠 때는 인내하고 용기와 집념으로 끝임없이 노력하며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빨리 꿈을 향해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노인과 바다>>에서 보여주는 삶을 대하는 노인의 자세는 소년 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 보여준 인생철학이었다. 노인이 보여준 한계를 벗어난 인내와 집념은 현 사회를 살아가는 나약한 우리들을 이끌어주는 인생의 지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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