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섬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9
이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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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고물섬>>이라고 적혀있는데, 나는 '고물상'이라고 읽고 있다. '섬'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보니, 망망대해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외딴 섬에 홀로 있다는 막막함을 가지고 있을 듯한 한 소년의 모습을 떠올린다. 스스로를 고물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를 안타까운 소년을 만나기 위해 나는 서둘러 책을 펼쳐보았다. 그곳에는 예상대로 소통의 부재로 고립된 한 소년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고물섬'은 고립의 의미가 아니라 신기루 같은 의미였다.

 

이 책의 주인공 영래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지만 장난이었다고 말하는 하동철 패거리로 인해 확대해석해서 지레 겁먹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겁쟁이가 되고 말았다. 보호와 위로를 받아야 하지만 철저히 소외되었고, 완벽한 무력감과 허탈함으로 더 이상 버틸 기운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학교를 그만 두겠다는 영래와 유학을 제안하는 엄마와의 실랑이 끝에 공황 발작을 일으킨 영래는 학교를 그만두게 된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던 할아버지의 불길한 예언, 어쩌면 엄마는 자신을 선택했던 실패를 인정하고 막을 내릴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공개 입양아였던 영래는 숨 가쁘게 달려온 18년의 가속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공황 발작이후 서서히 자멸 중인 가족, 엄마는 더 이상 상처 받지 않겠다는 단호함으로 보여주었고, 아빠는 들어오지 않는 날이 잦아졌다. 최선을 다했지만,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사람들. '아무래도 얘한테 문제가 있는 것 같아...'(본문 53p)라고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그를 괴롭힌다. 칭찬받으려 조바심치던 꼬마는 엄마의 추억 속으로 영원히 추방되고 있었다.

 

어김없이 12시 정각이면 막대 사탕을 입에 물고 광부들이 갱도를 밝히느라 사용했음직한 케케묵은 머리등을 쓰는 남자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를 따르는 맘보라 불리는 산만하기 짝이 없는 꾀죄죄한 백구 한 마리에 대한 궁금증에 영래는 그를 쫓아가게 되고 회색 패널에 '고물섬'이라고 적힌 고물상에 들어서게 된다. 그러다 고물 도둑으로 누명을 쓴 영래는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고물상에서 일하는 오봉호에게 학생증을 담보로 잡힌 채 고물상에서 일을 하게 된다.

 

"안 굶어 죽으려고 그런다. 하긴 너같이 세상만사 삐딱하게만 보는 녀석이 뭘 알겠냐? 부자 부모 밑에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누릴 거 다 누리면서 배가 처불러서 지랄이지...부모 울타리 안에서 먹고 입고 잘 데 걱정 엇이 사는 거, 잘난 네놈이 그렇게 하찮게 여기는 걸 난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으니 어떻게 알겠어?"

"하긴 먹어보지 않고야 단지 쓴지 모르겠지. 답답하다, 인생을 통째로 바꿔볼 수도 없고."

"안 될 것 없지." (본문 75p)

 

엄마 아빠가 오봉호와 자신이 바뀐 걸 알아챌지 모를지 궁금하다는 유치한 호기심에서 영래는 오봉호의 말대로 일주일동안 바꿔서 살게 된다. 이렇게해서 아주 스펙터클한 영래 인생의 2막이 시작된다. 표류가 될지, 항해가 될지 알 수 없는. 불완전한 변신 속에서 고물상에서 일주일을 보내게 된 영래는 사람들 속에 섞이게 되고, 참고 참다가 적당한 자기 합리화로 스스로 위안하며 도망치던 자신의 유일한 생존 방식 속에서 살아오던 자신을 되돌아본다.

 

"속이 부글부글 끓지? 그런데 왜 가만히 있어? 너한테 필요한 게 뭔지 내가 가르쳐줄까? 액션이야, 액션. 생각만 하지 말고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날리란 말이야." (본문 104p)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 섞여 보낸 일주일은 영래에게 사전수전 다 겪은 비장한 기분을 들게했다. 다시 돌아온 집, 영래는 아빠의 노트북을 쓰기 위해 서재에 갔다가 '동심원'이라고 적힌 사진 한 장을 발견하게 되고, 사회복지시설임을 알게 된 영래는 흩어진 퍼즐조각을 맞추기 위해 액션을 취하게 된다. 봉사활동을 가장(?)하여 사진 속 영조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영래는 드디어 다이어리 속 사진과 같은 사진을 발견하게 되고, 사진 속 인물의 이름이 '영조'가 아닌 다른 이름임을 확인하고 놀란다. 그렇게 숨겨져 있는 은밀한 가족사를 알게 된 영조는 보고 싶은 것만 보았던, 자신을 자책한다.

 

나는 여태 보고 싶은 것만 보았다. 왜? 증오할 거리가 많을수록 내 탓이 아니라고 자위할 수 있으니까. 내 안의 상처와 결핍, 두려움까지 모두. 입양아, 난 오직 이 하나의 버전으로만 살아온 거다. 스스로를 울타리 속에 가두고 운명의 희생양인 양 자기 연민에 빠져 웅크린 채. (본문 207p)

 

공개 입양아였던 영래를 향한 친척들의 어긋난 시선, 자신을 빈틈없이 보살피고 좋은 교육과 환경을 베풀기 위해 노력한 엄마를 향한 혐오와 감사 사이에서 왔다 갔다 종잡을 수 없었던 영래는 자신을 버린 사람들처럼 언젠가 엄마 아빠에게서 또다시 버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자신을 가두고 있었던 것이다. 소통의 부재와 두려움으로 스스로를 가둬버린 고립 속에서 괴로워하던 영래는 그렇게 아파트 속에서 신기루처럼 남아있던 고물상에서 고립에서 벗어나 액션을 취하게 된다. 소통의 부재로 서로의 입장을 다독이지 못했던 영래와 엄마, 꼭꼭 감추고 싶었던 비밀이 드러나면서 서로의 마음을 내보이지 못했던 부분들을 들춰내고 소통함으로써 그들은 서로 보지 못했던 마음을 보게 되었다. 비로소 소통이 시작된 셈이다. 그리고 그 소통은 가족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했다.

 

간혹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소통의 부재로 가족이 서로 단절되어 각자의 섬에서 고립되어 살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게 각자 보고 싶었던 부분만 본 채 서로에 대한 오해와 원망 속에서  각자의 섬에서 살아가던 그들이 프로그램의 도움으로 보지 못했던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풀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소통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이 작품은 이렇듯 현 사회에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작품이었고, 고립된 섬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고물섬>>은  공개입양, 비밀스러운 가족사라는 소재를 통해서 소통의 부재와 고립으로 고통받는 영래가 스스로를 가둬 두었던 껍찔을 깨고 나오는 과정이 재미와 감동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덧붙히자면, 사진 속 인물에 대한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이 작품에 대한 재미를 더해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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