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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에서 앨라배마까지 - 2012 뉴베리상 수상작 ㅣ 한림 고학년문고 25
탕하 라이 지음, 김난령 옮김, 흩날린 그림 / 한림출판사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사이공에서 앨라배마까지>>는 인터넷서점을 둘러보다가 알게 된 작품이었다. 2011 내세녈북어워드 수상, 2012 뉴베리상 수상이라는 경력도 눈에 띄는 작품이지만, 베트남 소녀 하가 전쟁 중인 고향을 떠나 앨라배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적응하는 1년 간의 일기를 운문체로 담았다는 점이 더욱 눈길을 끌었다. 특히 전쟁으로 아빠를 잃은 슬픔, 피난을 가면서 겪는 고통, 새로운 나라에서 이방인이 되어 살아가는 아픔 등의 감정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으려는 하의 심리적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었다. 저자 역시 주인공 하처럼 열 살 때 베트남 전쟁의 막바지를 목격하고, 가족들과 앨라배마로 도망쳤으며, 전투 중 아버지가 실종되는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주인공 하 속에 잘 녹아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어.
양측이 제각기
맹목적인 자기 신념만
떠들어 대고 있으니!" (본문 32p)
1975년 열 살이 된 하는 엄마와 부리스 리 흉내를 내는 부 오빠, 코이 오빠, 꾸앙 오빠와 살고 있다. 아빠는 9년 전 해군에 징용되어 끌려갔다가 행방불명되었고, 엄마는 아버지의 귀환을 빌고, 하는 생일 소원으로 아버지가 집 문간에 나타나 걱정 근심으로 늘 아래로 처진 엄마 입고리가 귀밑까지 올라가서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필 수 있기를 빈다. 뒤뜰에 휙 던진 파파야 씨앗 하나가 쑥쑥 자라 파파야가 열린 걸 바라보길 좋아하는 하, 하지만 엄마는 고향을 떠날 준비를 한다. 다섯 식구는 1센티미터 틈도 없이 사람들로 꽉꽉 채워진 갑판밑에 서로 꼭 붙어 있을 수 있는 멍석 하나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바다에서 딱딱하고 곰팡내 나는 주먹밥을 먹으며 한때 알았던 것들에 대해 조금씩 잊으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중 미국 배에 의해 구조되고 괌의 텐트촌의 생활이 시작된다. 미국으로 가기 위해 후견인을 기다리던 하 가족은 앨라배마에 사는 후견인을 따라 미국으로 가게 된다. 하는 그를 카우보이라고 불렀고 그의 도움으로 앨리바마에서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하가 사는 곳은 카우보이네 집 맨 아래층으로 창문이 너무 높아 해와 달을 보려면 의자에 올라간 다음 차 탁자 위에 올라서야 할 정도였다. 설상가상 엄마는 영어에 완전히 숙달할 때까지 영어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하지도 말고, 생각지도 말고, 바라지도 말라고 한다. 엄마는 나쁜 일을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하고, 아버지도 떠나온 고향도 옛날 친구도 생각하지 말라고 하지만, 절망과 아픔 속에서 남몰래 우는 엄마를 보면 하는 마음이 아프다.
카우보이는 프린세스 앤 가에다 집을 구해 주고 세 달치 월세를 미리 내 주었는데, 엄마는 주소가 생기자마자 아버지 형제들이 조상들의 고향에서 뿌리를 내리고 사는 곳, 북베트남으로 편지를 쓰지만 이렇다할 아버지 소식은 듣지 못했다.
이제 가족들은 엄마는 공장에서 재봉 일을 시작하고, 꾸앙 오빠는 자동차 수리 일을, 나머지 식구들은 학교에 가서 각자 마무리하지 못한 학년 과정을 다시 공부하면서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드디어 학교 가는 날은 하에게 생애 최고로 길었던 날이었다. 머리카락도 희고 눈썹도 희고 속눈썹도 흰 분홍색 얼굴의 핑크 보이가 놀림으로 하는 탓에 하는 영어를 빨리 배우고 싶어졌다. 언젠가 핑크 보이를 영어로 한껏 비웃어 주기 위해서.
영어로 대꾸할 수 있을 때까지 투명인간이 되고 싶은 하는 수업 시간에는 자신의 신발만 쳐다보며 숨어 있고, 점심 시간에는 저녁때 남겨둔 딱딱한 빵을 먹으며 화장실에 숨어 있고, 운동장에 나가 노는 시간에도 똑같은 화장실에 숨어 있다. 하지만 하는 부 리 오빠에게 호신술을 배우며 투명인간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시작한다.
나는 지금
투명인간에서 벗어나는
연습 중이다. (본문 174p)
다행히 이웃인 과부이며 은퇴한 교사인 워씨-잉턴 아주머니에게 영어를 배우게 되지만, 핑크 보이의 놀림을 알아 듣게 되니까 못 알아듣던 때가 그립다. 그래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워씨-잉턴 아주머니가 있어 기분이 좋고, 팸, 씨-티-반이라는 친구가 생겨서 학교에서 제일 마음이 놓인 날을 맞게 된다.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때때로
평화로운 앨라배마보다
전쟁 중인 사이공에서
살고 싶을 때가 있다. (본문 210p)
핑크 보이에게 되받아치고, 부 리 오빠가 있어 든든해진 하는 이제 살맛 난다. 무엇보다 친구의 놀림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할 줄 알게 되었다. 이제 하 가족은 새해를 맞아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아버지가 어디에 계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에 감사해 한다. 가족은 새해가 시작되면서 새로운 행운을 기다린다. 그리고 하는 더 싹싹한 딸이 되겠다고 맹세한다. 1년동안 슬프고 아프고 절망 적인 순간도 있었지만,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하의 당찬 용기가 커다란 희망을 느끼게 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 다음
다시 눈을 감았다.
올해는
날아차기를
꼭 배우고 싶다.
사람을 걷어차고 싶어서가 아니라
공중을 날아 보고 싶어서. (본문 279p)
평화로운 앨라배마보다 전쟁 중인 사이공이 그리운 하에게 이방인으로서의 일상은 너무도 힘들었다. 그 힘들었던 하루하루를 딛고 일어선 하는 진한 여운과 감동을 선물한다. 살아가다보면 느끼게 되는 절망, 하지만 밑바닥에 떨어져버린 것 같은 시간도 언제까지나 계속되지는 않는다. 그 시간을 이겨냈을 때야 나중에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오는 법이다. 언젠가는 날아 오르는 날이 오리라.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화장실에 숨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용기를 내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법을 하는 몸소 보여주었으며, 그로인해 용기라는 큰 선물을 준 셈이다.
<<사이공에서 앨라배마까지>>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결코 암울하거나 슬프지 않았다. 절망을 이겨내고 희망을 품어내고, 씩씩하게 낯선 세상 밖으로 나가기 위해 용기를 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기 때문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