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그놈 마음이 자라는 나무 34
세실리아 에우다베 지음, 성초림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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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딸아이의 모습 속에서 간혹 내가 알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착하디 착했던 아이가 보여준 이면의 모습에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들이 그렇듯 그들의 내면에는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괴물이 있음을 경험탓에(?)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 청소년들은 무시무시한 괴물에게 자신을 온전히 내어준 채 폭력을 일삼는 경우가 많다. 외로운 존재인 괴물은 이렇게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고, 청소년들은 자신 안에 존재하는 괴물에 대한 혼란스러움을 어찌하지 못한 채 그들에게 사로잡히고 만다. 외면받을수록 더욱 강해지는 괴물이지만, 그 괴물을 사라지게 할 방법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사춘기, 그놈>>은 사춘기 소년의 막막한 심정을 '괴물 같은 그놈'이라는 실체에 비유해 판타지 기법으로 담아낸 작품으로, 저자는 멕시코에서 인기 많은 작가로 미국 북엑스코아메리카(BEA)에서 라틴 도서상을 두 번이나 받았으며, 이 작품은 멕시코에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겸비하고 잇는 수작이라는 언론의 극찬을 받으며 '베스트셀러 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판타지 기법을 이용해 사춘기 청소년의 심리적 갈등을 너무도 잘 표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괴물이 자라게 된 배경이나 어른들의 잘못된 대처방법 등을 통해서 혼란스러운 그들에게 '제대로 된 소통'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공포를 불러일으킨 그놈은 거울 속에 숨어서 나를 지켜보다가 방심한 틈을 타 내 마음속으로 파고 들었다. 내가 어쩔 줄 몰라하며 당황하는 사이에 내 마음속 깊숙이로 스며들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내 머릿속을 주체하기 힘든 욕망으로 가득 채워 이상한 행동을 하도록 몰아세웠다. (본문 7p)

 

어느 날 아침, 파블로는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는 게 싫어 충동적으로 거울에 비친 나를 향해, 아니 거울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흩어진 거울 조각들에 비친 분노와 공포가 서린 자신의 얼굴도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엄마의 목소리에 거울 속의 미로를 빠져 나와 현실 세계로 돌아온 파블로는 자신 바로 뒤, 사방으로 흩어진 거울 조각들 사이에서 창백한 혀로 자신의 피를 핥고 있는 그놈을 보았다. 뭔지 모를 사악한 기운이 느껴지는, 왠지 자신을 조롱하는 듯한 그놈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모습을 본 부모님은 그저 놀람과 슬픔으로 자신을 볼 뿐, 그놈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손을 치료해준 응급실 의사는 자신을 도와주려 하는 듯 했지만, 정작 자신을 믿어주기보다는 설교만 늘어놓으며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척 할 뿐이었다. 무엇보다 파블로가 거울 속에서 튀어나온 그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은 응급실 당직 의사가 아닌 바로 아빠였다.

하지만 그놈에 대한 이야기를 할라치면 아빠는 괴물이 있다고 말하는 것을 금지 시킬 뿐이었고, 파블로는 집 안에 자신의 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망망대해에 혼자 버려진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땅에 홀로 남겨진 것처럼 혼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뿐이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놈을 잡으려던 파블로는 마약 중독자라는 의심을 받게 될 뿐만 아니라, 성질을 잘 내는 성격 때문에 학교에서도 원래 인기가 없기도 했지만 이 일로 친구들의 따돌림과 학교의 문제아로 낙인이 찍힌다. 더 이상 그놈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게 된 파블로는 스스로 그놈을 잡기 위해 수첩을 가지고 다니면서 그놈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다 적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사라지는지 세세하게 적어두면서 그놈을 자신의 생활에서 떼어 놓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은 정보는 모조리 긁어보았다. 하지만 학교 생활은 더욱 엉망진창이 되었고 결국 싸움에 휘말리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파블로 일로 부모님은 계속 다투었으며, 오래전부터 모든 것이 아빠 마음대로였던 이 집에서 파블로는 집 전체가 감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결국 그놈이 또다시 벌인 끔찍한 사건으로 파블로는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그곳에서 자신의 편이 되어주고 자신을 믿어주는 덴치 박사를 만나게 된다. 청소년들이 겪는 장애 중에서 희귀한 사례를 연구하는 심리학 전문가인 덴치 박사는 파블로가 말하는 그놈에 대해 믿어주었고 그놈을 멀리 떼어 놓을 수 있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기로 한다.

 

"넌 귀신에 들린 게 아니고, 그저 쫓기고 있을 뿐이야. 그놈은 너랑 놀고 있는 거지. 너무 외로워서 관심이 필요하거든. 같이 놀 친구가 필요한 거야. 녀석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네가 자기와 닮았다고 생각해. 그래서 너를 선택한 거고." (본문 67p)

 

이제 파블로는 덴티 박사의 조언에 따라 그놈을 쫓기 위해 노력한다. 앞선 내용에서 알 수 없었던 거울을 향해 주먹을 날리게 된 원인을 알게 되고, 아버지와의 갈등, 부모님의 다툼, 아웃사이더같은 학교 생활을 통해서 섬이 되어버린 외로웠던 파블로는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거울 저편의 녀석들은 사악하진 않아. 다만 애착을 필요로 한다는 점, 또 너무나 외롭다는 점이 녀석들을 위험한 존재로 만들지. 아무도 녀석들을 봐 주지 않고, 보이지 않는 세계에 고립되어 살고 있기 때문에 버려진 거나 마찬가지야....아무도 없으니 다른 존재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큰 거지...다른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 말고 다른 방법으로는 소통할 줄을 몰라. 그러니 녀석들을 미워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른 척하는 편이 나아." (본문 108,109p)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놈의 정체가 드러나고 모두 파블로가 말한 그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엄마는 비로소 파블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지만 아빠는 여전히 파블로를 인정해주지 못했다. 그렇게 그놈을 잡기 위해 그놈과 정면 대결을 하게 된 파블로는 결국 승리하고 만다. 비로소 그놈의 정체를 알게 된 아빠는 자책하고 혼란스러워했지만 그 고통스러운 시간이 가족을 연결해주는 끈이 되어주었다.

 

여기서 괴물은, 사춘기 소년의 외로움, 분노, 가족과 친구와의 소통의 부재 등을 대변하고 있다. 그놈이 나타났을 때 파블로는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도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고 파블로는 더더욱 고립되었다. 스스로 헤어나오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그것마저도 무시되고 상황이 더욱 악화되자, 괴물 즉 파블로의 분노는 더욱 커져만 갔다. 믿어주는 척 하지만 진심으로 다가와주지 않는 엄마, 강압적이며 파블로의 재능을 인정해주지 않았으며, 대화를 하고자 다가가지만 파블로를 외면하는 아빠, 대화하는 척 하지만 설교만 늘어놓는 의사로 인해 파블로는 더욱 외로워진다.

파블로가 처한 상황은 바로 현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청소년이 처한 상황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소통의 부재와 자신들의 잣대로 평가하는 어른들 속에서 점점 고립되는 청소년들은 폭력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말하려고 하고 있었다.

 

청소년들의 이러한 문제 속에서 가장 필요한 해결 방법은 관심과 대화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어른들은 그들의 문제점을 알아내고 함께 풀어가자며 대화를 요구하지만, 사실 어른들은 '대화'가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응급실 의사처럼 우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척하지만 결국 설교만을 늘어놓고 하기 때문이다. 이에 덴티 박사는 그들과의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사춘기, 그놈>>은 사춘기 소년의 정신적 갈등을 섬세하게 다룸으로써 청소년들 스스로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그렇게 공감과 위로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괴물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작품이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안의 또 다른 모습인 괴물과 함께하고 있있으며, 죽을 때까지 그런 자신과 싸우면서 두 개로 나뉜 자아를 가지고 사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 안에 또 다른 자아가 있음에 혼란스러운 사춘기의 청소년들은 그렇게 살아가는 법에 아직 서툴다. 그런 청소년들에게 어른들은 그런 자신을 뛰어넘으라고 강요한다. 자신들의 잣대로 그들을 보면서 그들을 평가하여 그들을 고립시킨다. 손을 잡아주는 척,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척, 그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다.  이 작품은 파블로의 부모, 선생님, 의사 등을 통해서 어른들의 그릇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줌으로써 어른들에게 돌직구를 날리고 있는 게다.

 

책을 덮은 뒤 청소년과 어른들을 위한 힐링이 될 수 있을 법한 <<사춘기, 그놈>>에 대한 언론의 찬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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