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
스콧 허친스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표지가 예뻐서 눈길을 끄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의 기억을 가진 로봇에게 사랑을 배운다는 기발한 설정이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기도 하다. 사랑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는 사랑으로 아파하고 그 아픔으로 성숙해지기도 하며, 사랑으로 행복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그래서 가끔은 책 속에서 사랑의 의미를 찾아보려 하지만 뾰족한 해답을 찾기는 어렵다.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 왠지 소설 제목이라 하기에는 딱딱한 느낌이 들지 모르지만, 사전적인 느낌을 주는 이 제목이 나는 전문적인(?) 느낌이 들어 좋았다. 우리가 왜 사랑을 찾는지, 사랑이 무엇인지....어슴푸레 지레짐작하는 사랑에 대해, 삼십 대의 이혼남인 주인공 닐 바셋 주니어가 깨닫게 되는 사랑을 통해서 사랑에 관한 윤곽을 잡아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조금은 설레게 했다. 그렇다고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한다면 오산이다. 조금은 묵직한 그래서 그 의미를 되새겨보기에는 적절한 작품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이 책의 주인공인 '나'는 닐 바셋 주니어로 삼십 대의 이혼남이다. 그가 다니는 회사는 거대한 언어학적 컴퓨터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아미앤트 시스템으로, 5천 페이지 분량이 되는 이십 년 치의 일기를 바탕으로 자연언어를 설득력 있게 구사할 수 있는 말하자면, 대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데, 일기를 쓴 당사자인 아칸소의 의사는 바로 주인공의 아버지다. 하지만 그에게 아버지는 스스로 권총을 쏘아 자살한 이해할 수 없는 분일 뿐이다.

닐은 전 부인인 에린과 함께 살았던 센프란시스코의 바로 그 아파트에 계속 살면서 독신자의 논리(?)를 익히곤 했는데, 아버지의 자살 그리고 이혼으로 다른 누군가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그는 다소 가벼운 만남을 갖기 위해 유스호스텔에 가게 되고 그곳에서 키 큰 금발의 레이첼을 만나게 된다.

 

아버지의 일기를 토대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에 대해 그는 죽음이라는 호박 속에서 아버지를 끄집어내는 일이 괜찮지 않았지만, 닥터바셋과 대화를 하면서 그가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이면을 엿보게 된다. 오래 전 아버지는 '아들아, 우리한테 뭔가 문제가 있는 거니?'라는 물음을 건넸고, 닐은 '아뇨, 아버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라며 회피하곤 했다. 그랬던 그는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닥터바셋과 대화를 하게 되고, 그에게 자신에 대한 많은 질문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틀에서 벗어나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시야가 좀 더 넓어지고 있었고, 이런 대화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기억 속에 진짜 아버지의 모습이 더 많이 들어가도 좋을 거라는 것을 느낀다.

 

닥터바셋: 아들아, 사람은 변해. 그건 중요한 교훈이야

친구1: 당신은 평생 단 하루도 변한 적이 없어

닥터바셋: 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유감이야

친구1: 당신의 변함없는 모습이 그리워지기 시작했어 (본문 368,369p)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에서는 아버지의 일기를 토대로 컴퓨터 속에서 살아나는 닥터바셋을 통해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되짚어보게 되는데, 그동안 알지 못했던 아버지, 어머니에 대해 알게 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알게 되면서 오랫동안 쌓여있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와 상처를 치유해 나가고, 그런 과정 속에서 만난 레이첼과의 만남은 에린와의 결혼 생활을 되짚어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닥터바셋과의 대화 속에서 얻은 치유의 힘은 그에게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지표가 되어준다.

 

쓸 만한 사랑 이론은, 결국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는 적자생존의 세상에 갇혀 있거나 아니면 위대한 신이 강림할 그릇일 뿐이다. 아니면 시장에 조종당하고 있는 수벌들일 뿐이거나. 사랑은 자기 실현이다. 사랑은 자력이다(석면이 아니라).

하지만 그렇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 나름의 영역이다. 지진 같은 일도 일어나고, 갑작스럽게 재개발이 되기도 하고, 경계에서 아무거나 오가기도 한다. 수많은 이름이 있어야 하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본문 493,496p)

 

자살한 아버지가 컴퓨터로 다시 태어났다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사랑에 대한 슬픈 기억,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라는 두 카테고리 속에서 살아가던 삼십대의 이혼남이 좀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일종의 성장통이었다. 화해, 용서, 사랑, 치유 속에서 미성숙했던 그가 성숙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은 사실적인 묘사로 그려지면서 현실감이 느껴졌다. 평소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를 닥터바셋으로 만나 사랑을 치유하고 그를 통해서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을 배우게 되는 닐을 통해서 나는 사랑에 관한 오묘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하지만 그랬다. 사랑에 관한 쓸 만한 이론은 결국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사랑은 고통을 수반함에도 불구하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가치는 진심이 수반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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