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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 아기 키우기 - 1992 카네기 상 수상작 ㅣ 일공일삼 9
앤 파인 지음, 노은정 옮김 / 비룡소 / 2013년 2월
평점 :
카네기 상을 수상한 <<밀가루 아기 키우기>>는 독특한 책 제목으로 시선을 끄는 작품이었다. 책 제목만으로는 어떤 내용일지 감이 오지 않았는데, 초반부 머리다친 모기들 수준밖에 안 되는 맹한 아이들이 모인 4C반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나 연구 발표회로 밀가루 아기를 키우게 되는 배경이 사뭇 코믹한 느낌과는 달리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의외의 감동에 뭉클해지는 작품이었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몰랐지만 부모가 되어 두 아이를 키우면서 알게 된 사실은, 부모는 너무도 큰 희생과 사랑으로 자식을 키운다는 것이다. 그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희생과 사랑이 나를 키워냈고, 나 역시도 그러한 마음으로 두 아이를 키웠다. 내 아이들이 그 노고(?)를 꼭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와 자식이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부모의 그러한 노고를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리라. 이 작품은 바로 이러한 부모의 자식간의 관계에 대한 성찰에 주목해서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이혼가정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의 혼란은 사회적인 문제로까지 대두되고 있는데, 부모의 이혼이 결코 자식들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부모 두 사람 사이의 문제로 인한 것임을 일깨우고 있다는 점 또한 기억하면 좋을 듯 싶다.
덜떨어진 녀석들과 못된 녀석들, 지난 이 년 동안 뻔질나게 교무실을 시끄럽게 만들며 싹수가 노랗다는 소리를 들었던 열아홉 명의 아이들이 모인 4C반. 아이들 가운데 절반은 집에 뇌를 두고 온 것 같았고 나머지 절반은 아예 뇌라는 게 없는 듯싶어 카트라이트 선생님은 갑갑하기만 하다. 설상가상 연구 발효회 주제 목록인 섬유 공예, 영양학, 가정생활, 아동 발달, 소비자 연구 중 한 개를 선택하는 일에도 아이들은 소란스럽다. 그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 선택된 연구 과제는 아동 발달로, 이 과제로 선택된 실험은 바로 밀가루 아기 키우기다.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애들을 모아 놓은 반에서 6파운드짜리 밀가루 포대는 아이들 손에서 무사하지 않을 것이기에 100파운드가 넘는 흰 밀가루가 터져서 풀풀 날리게 될 것을 걱정한 선생님은 펠트햄 박사에게 건의를 해보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우연히 이 대화를 엿들은 사이먼 마틴은 밀가루 아기 키우기에 대해 회의적이었으나, 밀가루 버섯구름이 교실이라는 지긋지긋한 감옥을 깡그리 뒤덮는 모습을 상상하는 엄청난 기쁨에 도취되어 반 아이들을 설득한다. 결국 연구과제를 바꾸고 싶었던 선생님의 시도는 물거품이 되고 아이들은 각자 밀가루 아기를 하나씩 맡아서 삼 주 동안 꼬박 육아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문제와 태도에 대해 분석하는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
"밀가루 아기 키우기 프로젝트는...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대한 단순하고 간단한 과제입니다. 학생들이 각자 밀가루 아기를 하나씩 맡아서 삼 주 동안 꼬박 육아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문제와 태도에 대해 분석하는 겁니다. 결과가 아주 흥미로울 거요. 학생들은 자기들 자신과 부모 노릇에 대해 상당한 경험을 하게 되어 있어요. 가치 있는 실험이 될 테니 두고 보세요." (본문 35p)
밀가루 아기는 항상 깨끗하고 뽀송뽀송해야하며, 너덜너덜해지거나 더러워지거나 밀가루가 새는 곳이 있으면 안된다. 밀가루 아기들은 일주일에 두 번, 공식적으로 체중을 재어 심각한 방치나 학대를 뜻할 수도 있는 체중 감소가 없는지, 혹은 함부로 밀가루를 더 넣거나 물에 젖게 했음을 나태낼 수 있는 체중 증가가 있는지 관찰하게 된다. 또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낮에도 밤에도 혼자 두어서는 안되며 육아 일기는 완전한 문장으로 최소한 세 문장은 되어야 하며 날마다 써야 한다. 학생들은 밀가루 아기를 받게 되는데 주인공인 사이먼은 밀가루 아기를 받으면서부터 자신과 부모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을 하게 된다.
사이먼은 엄마와 단둘이 살았는데, 아빠는 사이먼이 태어난지 6주가 지난 어느 날 집을 나갔기 때문이다. 밀가루 아기를 키우면서 사이먼은 엄마와 어린 시절의 자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사이먼이 태어나면서 엄마가 많은 것을 포기해야 했으며 부모라는 사람들은 자식에게 좋은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달아간다.
늘 아빠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던 사이먼은 엄마에게 아빠에 대해 묻게 되지만 엄마는 매번 어물쩍 농담으로 때우곤 했다. 아빠에 대한 부재로 마음의 허전함을 가지고 있던 사이먼은 아빠와 같은 아빠가 되지 않기 위한 연습으로 밀가루 아기를 잘 보살피게 되는데, 아기를 돌보는 것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면서 아빠의 입장을 헤아리게 되고, 자신의 잘못으로 아빠가 떠난 것이 아님을 이해하게 된다.
아빠가 어떻게 그렇게 하루아침에 휘파람을 부며 자기 인생에서 벗어나 버렸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기가 밀가루 아기도 아니고 진짜 아기였는데 아빠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대체 사이먼에게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 (본문 145p)
"난 그사람이 누군지 통 몰라. 그 사람도 내가 누군지 모르고. 그러니까 엄마랑 할머니 말이 꽤 맞는 거지. 아빠가 나를 버리고 갔다는 사실은 나하고 진짜 아무런 상관이 없어.....겨우 삼 주 동안 이 밀가루 아기를 끌고 다녔지만 난 이제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어. 나는 그 일이 더 이상은 나한테 큰 문제가 아니어야 한다는, 아니 큰 문제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야.(본문 263,264p)
사이먼은 이제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모든 일로부터 홀가분해졌으며, 밀가루 아기를 돌보는 동안 엄마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가슴 깊이 알게 되었다. 밀가루 아기를 키우는 과정 속에서 사이먼은 엄마와 선생님의 잔소리가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고, 마음먹고 숙제를 해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을 하는 등 내면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밀가루 아기 키우기>>는 사이먼이 밀가루 아기를 키우면서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과정을 담아냈지만,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아기를 키울 때와 달라진 부모의 마음이다. 아기를 위해 무한한 사랑과 희생도 기꺼워하던 부모는 아이들이 자라면서 기대와 욕심을 갖는다. 밀가루 아기를 키우면서 사이먼이 엄마의 마음을 느끼게 되는 과정에서 나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가졌던 조건없는 사랑에 지금 너무도 많은 욕심과 기대를 첨가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이 작품은 부모와 자식 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이끌어냈으며 그렇게 서로간의 관계를 개선하고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볼 수 있었다.
유쾌한 소재를 통해 진지한 성찰을 이끌어간 <<밀가루 아기 키우기>>는 부모와 아이가 꼭 함께 읽어보기를 권한다. 유쾌함, 감동이 모두 담겨진 정말 괜찮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