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일용이 - 30년 동안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만난 아이들 이야기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 엮음 / 양철북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두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매년 학기초에 되면 마음 속으로 기도하는 일이 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쏟아져 나오는 해괴한 뉴스 속에서는 교사의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도 포함되어 있는데다, 선생님에 따라 내 아이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가는지 겪어본 터라 그 바램은 해가 갈수록 더욱 간절해진다. 어쩌면 해괴한 사건 속에 몇몇 교사들로 인해 교사에 대한 편견이 점점 굳어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곧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나의 바람이 더욱 간절해질 즈음 <<우리 반 일용이>>를 만났다. 교사에 대한 쓸데없는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든 이 작품이 그동안 가졌던 쓸데없는 기우를 사르르 녹아냈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부모의 마음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으며,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반 일용이>>는 1983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글쓰기교육연구회에서 다달이 펴낸 <우리 말과 삶을 가꾸는 글씨기> 회보에서 가려 뽑은 교실 일기를 수록한 작품으로 글쓰기회 선생님들이 30년 동안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했던 이야기들이다. 뭉클한 이야기에 가슴 찌릿찌릿함 느끼기도 했고, 때로는 어린이들에게서 가르침을 받기도 했으며, 그들의 이야기에 웃음을 짓기도 했다. 각각 43편의 이야기 속에서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배우기도 하고, 성찰하기도 하면서 교사로서의 마음을 다잡아 가고 있었는데, 최고의 선생님은 부모라는 말처럼 나 역시도 선생님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부모로서의 그릇된 행동에 대해 반성해 보게 되었다. 조금은 느리지만 제 갈길을 오롯이 찾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은 기다림임을 깨달아간다.

 

부모를 잃고 먼 친척 할아버지와 가난 속에서 단둘이 살면서도 한 번도 엄마를 원망하지 않으며 상수리를 따서 팔아 할아버지에게 내복 한 번 사드리고 싶어하는 속깊은 남수는 "저는 부모가 없다고 해서 남에게 기대고 싶지 않았어요. 앞으로는 조금이나마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어요."(본문 19p) 라는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에 남아있는 온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이 새끼 불량품이야" (본문 34p) 라는 말, 선생님의 단 한 마디에 아이는 불량품이 되었다. 승준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교사, 부모가 우리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히고 있는지를 보았고, 그런 어른들에게 상처입으면서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오히려 선생님을 위로하는 승준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른들보다 나은 아이의 모습에 내 자신이 참 많이 부끄러웠다.

독감 예방 주사도 맞으면 안되는 고3의 현실을 담은 이야기와 자율 학습과 보충 수업에 대한 김명길 선생님의 이야기는 현 교육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져 있다. 고3은 사람도 아닌 현실, 너무도 씁쓸하다. 그들에게 현재의 시간은 미래에 저당잡혀 있을 뿐이다.

 

이상석 선생님이 아이들은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나는 이런 형편없는 선생 노릇을 언제까지 하려는지. 부끄러운 일이다. (본문 74p)

 

가정의 폭력으로 마음도, 몸도 상처입은 아이가 선생님에게 던진 욕설에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 보기도 전에 애를 다그쳤다고 스스로 자책하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눈길을 끌었다. 선생님을 때리고 성추행까지 하는 요즘 아이들, 그 잘못의 시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생각하보면 그들을 탓할 수 있는 자격이 어른들에게 있는가를 되짚어보게 한다. 결국 어른들의 그릇된 행동과 말에 아이들은 상처입고 아파하고 또 어긋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죄를 누구에게 묻고 있었던가? 이내 마음이 저려온다.

[부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느끼는]에서는 마음도 아프고 몸도 고달프게 살아가지만 그래도 가족에 대한 사랑, 끈끈함이 있기에 행복할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가족에게 감동 받은 일을 풀어낸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가족이 있어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를 깨닫는다. 그 행복을 어른인 나에게 알려주는 학생들, 그들에게 고마움을 이렇게나마 전해본다.

2부 달팽이 편에서는 조금 느린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느린 아이들을 보듬어가는 선생님들, 쉽지 않지만 자신을 다독이며 그들과 함께하는 것을 받아들여가는 과정이 참 애틋했다.

 

아아, 나는 정말로 우는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넓고 따뜻한 가슴을 가진 선생이 되어 우는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하지만 금세 나는 현숙이가 밉다. 공부 시간에 아무렇게나 행동해 놓고, 내가 그 쪽지를 보냈다고 날 탓하며 저렇게 서럽게 우는 현숙이가 밉다. 약속을 못 지켜 미안한 마음과 미운 마음이 뒤섞인 채 현숙이 손을 잡는다. 그리고 들썩이는 어깨를 안고 토닥인다. 가슴이 짠하면서도 여전이 미운 이 마음. 나는 언제쯤 진심으로 우는 것들을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본문 282p)

 

하루에도 몇 번씩 '빨리빨리'를 외치며 두 아이를 다그친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저녁에 잠들기까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빨리빨리'이리라. 큰 보폭으로 걷는 엄마를 따라가기 위해 작은 발걸음으로 뛰다시피 하는 아이들, 나를 따라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다그치며 재촉하는 엄마. 나는 달팽이 친구들을 따라 함께 같은 속도로 걷기로 한 선생님들을 보면서 잠시 발걸음을 늦춰본다.

힘겨워하는 선생님, 그러나 다시 자신을 다독이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기꺼이 무릎을 굽히는 선생님들에게 나는 감사한 마음과 쓸모없는 편견을 가진 것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죄송함을 담아내본다. 어른들의 그릇된 행동에도 괜찮다며 맑게 웃는 아이들에게도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해본다. 차가운 바람에 잔뜩 웅크렸던 어깨가 따뜻한 이야기에 기지개를 켠다. 달팽이 친구들의 이야기가 봄을 재촉하고 있는 듯,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따뜻한 마음과 순수한 동심으로 그릇된 어른들의 행동을 기꺼이 용서하는 아이들이 있고, 아이의 등짝을 내리친 후에 마음 아파하는 선생님이 있고, 학생에게 욕설을 듣고도 스스로를 자책하는 선생님이 있고, 가난 속에서도 희망을 갖고 가족에 대한 애틋함을 가진 아이들이 있는 <<우리 반 일용이>>는 내게 좋은 선생님이었다.

이제 나는 아이들을 위해 걸음을 늦추는 연습을 시작하려 한다. 그것이 아이들과 선생님이 내게 내준 숙제였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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