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의의 이름으로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0
양호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1년 12월
평점 :
<꼴찌들이 떴다!>의 양호문 작가의 책이라 주저없이 선택했다. '성적에만 관심있던 엄친아 고등학교 모은표, 역사적 심판에 발벗고 나섰다'는 표지문구도 흥미를 자극하는데 단단히 한 몫했다. 표지삽화에서 비롯되었던 걸까? 다소 가볍고 재미있는 소재라 생각했는데, 읽어내려 갈수록 예상밖의 진행이 의외였다. 어두운 주제인 역사적 심판을 위한 그들의 모험은 긴장감이 넘쳤고, 결말은 다소 슬프지만 왜곡된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이끌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심판에 대한 그들의 행동이 '정의'였는지는 독자들 스스로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였으며 이 외에도 많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작품이었다.
우리나라 근현대사 중 해방 직후 정치 혼란기를 다룬 담임 된장의 설명에 "그게 말이 됩니까?" 라는 말로 교실을 박차고 나간 지항구는 끝내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얼굴도 폭삭 늙어 교장 선생님보다 나이가 더 들어 보이고, 작달막한 키에 뚱뚱한 체격, 불룩 나온 배가 마치 된장항아리를 연상케하는 담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은표는 사사건건 담임 역성을 드는 문지와 티격태격한다. 이 사건으로 문지는 담임 된장이 자신의 아빠이며, 어릴 때 교통사고로 친부모를 잃고 큰외삼촌인 된장을 아빠로 알고 자랐음을 알려준다. 이 날, 은표와 문지는 교실을 박차고 나간 후 자퇴를 한 지항구를 만나게 되고 담임의 역사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항구와의 다툼으로 얼떨결에 항구를 따라 종로3가에 위치한 허름한 건물 지하의 '민족정기수호회'에 가게 된다. '민정수'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아 민족정기를 되살리자는 모임으로 한때는 200명이 넘는 단원이 있었으나 현재는 반대세력의 여러 교묘하고 음흉한 방법-경제 활동을 못하게 앞길을 막아 놓은 뒤 거금으로 회유를 해 탈퇴시키거나, 돈을 주고 포섭해서 첩자를 만들고 심지어 핵심 단원들을 살해하고 사고로 위장하는 등의 압력-으로 인해 조직은 붕괴 직전이 되었다고 한다.
"저 벽에 붙어 있는 맨 위쪽 사진이 바로 을사오적이란다. 그 밑으로 죽 붙은 건 일제에 적극 협조를 했거나 동조를 했던 자들이고. 일제 때는 물론 해방 후에도 대대로 떵떵거리며 살았던 자들이지. 아직도 저자들의 자손들은 사회 가계각층에서 지도자로 행세하며 호위호식을 하고 있단다. 나를 팔고 민족을 팔아 챙긴 자기 선조들의 막대한 부로 말이다." (본문 110p)
은표는 그 사진 속에서 집안의 가장 큰 자랑거리였고 아버지가 제일 먼저 내세워 말하던 분이며, 정부로부터 금관문화훈장과 국민훈장모란장까지 받았던 고모할머니를 보게 된다. 이후 항구의 아버지가 그들에 의해 힘들게 살았던 이야기와 주요 친일파들에 대해서 상세한 설명을 들은 문지와 은표는 강력한 흡입력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으로 매일 종로3가를 찾아가 이야기를 듣는다.
그 중 민정수에 대항하기 위하여 홍일회라는 비밀단체를 만든 반대세력의 초대회장이며 만주에서 독립군 토벌대를 이끌었던 이조일의 손자 이무형은 민정수의 간부들과 핵심 단원들의 살해를 직접 지시한 놈으로 민족의 정기를 끊어 놓으려는 의도를 갖고 있어 각별히 경계를 해야 했지만, 놈에게 대항할 힘이 없어 민정수는 매우 안타까워한다.
기말고사를 불과 사흘 남겨 놓은 어느 날, 은표는 이무형의 행방을 찾았다는 항구의 연락을 받게 되고 문지와 함께 찾아나서는데, 뜻밖에 담임 된장도 합류하게 된다. 이들은 어렵게 이무형이 살고 있는 풍도를 찾아가게 되고 정의의 심판을 내리기 위한 위험을 감행한다. 이 과정에서 넘치는 긴장감으로 가슴을 졸이게 되는데, 우여곡절 끝에 그들이 내린 정의의 심판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흘러 은표는 세상을 바로잡고 싶다는 마음에 법대에 입학하게 된다.
"자넨 정의가 대체 뭐라고 생각하나?"
"제가 어느 책에서 봤는데, 힘이 곧 정의라 하던데요." (본문 260p)
친일파 문제는 우리에게 손에 박힌 가시와 같다. 그동안 친일파를 소재로 다룬 아동, 청소년 작품을 접해본 적이 없었는데, 기성세대가 바로잡지 못한 역사 왜곡에 대해 청소년들에게 문제를 제기한 것은 다분히 필요했던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참 부끄럽게 느껴졌다.
이렇듯 <<정의의 이름으로>>는 고등학교 1학년인 은표, 민지, 항구를 통해 민감한 사안인 친일파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데, 이 작품에서 선보이는 주제는 비단 이것 뿐이 아니었다.
좋은 대학, 좋은 성적이 전부가 되어버린 교육 현실 속에 은표의 관심과는 달리 오로지 아버지의 뜻대로 움직여야하는 학생들의 현실이 드러나 있으며, 이무형을 처단한 방식을 통해서 과연 정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는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 안두희의 죄를 물어 죽인 박기서는 "쓰레기를 치우는 청소부의 심정으로 거사를 했다."라고 표현하며 그의 정의감을 선보였고, 그는 살인죄로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출소했다고 한다. 정의롭지 못한 세상에서 정의를 위해 누군가를 살해한다면 그것은 정의가 될 수 있을까?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정의의 이름으로>>는 바로 그 정의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게 한다. 힘이 곧 정의가 되어 버린 이 세상에서 과연 우리가 바라는 정의로운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해 독자 스스로가 자문할 수 있도록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다소 무겁고 의미있는 작품이지만, 유쾌한 진행과 긴장감 넘치는 소재를 통해서 조금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에서 기성세대인 우리에게 던지는 수많은 질문들(역사,정의,교육)에 대해 우리는 무슨 답변을 할 수 있을까?
다만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청소년들이 역사의식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고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