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 - 잔혹한 여신의 속임수
마이클 에니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포르투나-잔혹한 여신의 속임수>>는 1502년 이탈리아에서 토막 살해된 한 여자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시작된다. 역사상 가장 유명하고 매력적인 사람들이 공존하며 학문과 예술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르네상스 시대 속에 다 빈치와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에서 함께 일했다는 사실이 역사적 기록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발동되었다. 인류가 낳은 대표적인 천재 레오나르도 다 빈치, 현재까지도 큰 영향력을 과시하는 고전 <군주론>의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 <군주론>의 모델인 체사레 보르자, 이들이 비슷한 시기에 갑자기 체사레를 떠나고, 이후 피렌체에서 함께 일했다(책 표지 中)는 역사적 기록은 서로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상상의 가치를 극대화 시킬 수 있었으리라.

<르네상스의 역사와 철학, 정치학이 정교하게 얽힌 최고의 지적 미스터리>인 이 작품은 출간 직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나, 철저한 자료 조사를 통해 방대한 시대상황과 문화를 녹여 낸 작품인지라 오롯이 이해하기에는 역사적 지식이 미흡한 나에게는 조금 난해한 작품이었다. 무엇이 진실이며 무엇이 허구인지에 대한 구분이 명확하지 않은 탓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스터리가 보여주는 긴장감이나 새로운 분야에 대한 접근만으로도 내게는 의미있게 다가온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발단이 되는 후안 보르자의 살인사건이 역사 속에서 미제로 남아 있는 실제 사건이라는 점은 작품에 대한 호기심을 발동시켰다. 다소 난해할수도 있을 작품이 흥미로운 소재 속에서 출발한다는 점은 작품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는 요인이 된다.

 

16세기 초 이탈리아보다 더 심하게 역설적인 상황은 역사에 다시없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그리고 마키아벨리가 공존했던 시대다.)의 탁월하고도 혁신적인 면이 극에 달했을 때 이탈리아는, 정치적인 배신과 혼돈의 늪 속으로 허물어져 가고 있었다. 베니스 공화국 같은 아주 뛰어난 나라들에서부터 무수히 많은 작은 도시국가들에 이르기까지 수십 개의 자주 독립체들로 조각나 있는 상태였던 이탈리아 반도는, 여러 군소 왕조들과 '콘도티에로'라고 알려진 돈벌이를 목적으로 하는 용병대장들, 그리고 외국 군대들이 서로 경쟁하는 각축장이었다.

이런 대혼란 가운데에 놓인 이탈리아인들은 신과 교회에서 치유책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대신 자신들을 운명의 여신(고대 로마 문화에 존재했던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의 재현)이 지배하는 백성이라고 여겼다.......한편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런 무정부상태적인 상황을 거부하고, 수학과 일반적인 원리들에 의해 질서가 잡힌 자연계라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비슷한 목적으로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고대사와 현대사를 분석하고 인간 행동의 근본적인 워니를 추론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는 이같이 새로운 과학을 통하여 이탈리아의 불운한 지도자들이 위기를 미리 예견하고 운명의 여신이 가할 맹공격에 대비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본문 6,7p)

 

이 작품은 두 가지의 시선으로 다가간다. 전반부는 후안 보르자의 연인이었던 고급 매춘부 다미아타가 사건을 쫓아가는 행적을 아들 지오반니에게 들려주는 편지글 형식으로 이끌어가며, 후반에는 마키아벨리가 화자가 되어 사건을 추적한다.

후안 보르자의 죽음으로 다미아타는 아들과 함께 숨어지내지만, 결국 교황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고, 교황은 아들을 볼모로 후안 보르자의 죽음의 비밀을 파헤치라고 한다. 다미아타의 집으로 가던 중 살해를 당한 후안, 그 후 5년 뒤 토막살해 된 여자의 사체의 손에서 후안의 부적이 교황이 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결국 다미아타는 이몰라로 떠나게 되고 그곳에서 서기관 마이카벨리를 만나게 되고, 이후 시신을 발굴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도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 바로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가 함께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 둘의 영혼이 공모해 우리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 같지 않나요?"

나는, 다미아타가 더 높은 천상으로 나를 인도할 단테의 베아트리체인지, 아니면 내 몸과 영혼을 마법으로 홀려 버린 키르케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네. (본문 251p)

 

역사적 사건의 줄기 속에서 레오나르도와 마키아벨리 그리고 고급 매춘부인 다미아타가 살인사건을 쫓아가는 행적은 가히 흥미진진하다. "네가 찾고 있는 진실을 조심하라"라는 경고가 담겨진 스토리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깔려져 있었으며, 16세기 초 이탈리아의 시대적 배경와 역사와 맞물려진 이야기 속에는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의 모델이 체사레 보르자가 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납득할 수 있게 된다.

 

내 영혼에 영원히 자리 잡은 그녀의 존재가 없었다면, 나는 그저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로만 남았겠지. 그 안에 필요한 인물은 발레티노밖에 없었느니까.....이쯤에서 나는 <군주론>에 영감을 주고 또 다른 내용 자체가 되어 버린 이 아름답고 무시무시한 속임수에 관한 이야기를 마치려 하네. 그리고 나는 자네에게 인류의 대소사를 모두 관장하는 이 한 가지 진실을 남겨 두겠다. 발렌티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운명의 영원한 변덕을 이길 수 있는 위대한 계획이라는 건 없다네. 오로지 사랑만이 운명을 이길 수 있을 뿐이야. (본문 592,593p)

 

<<포르투나>>는 역사적 미제 사건에 따라 사건을 해결해가는 흥미로운 소재를 쫓아가다보니 16세기 초 역사적 배경과 사상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다. 레오나르도, 마키아벨리, 다미아타를 쫓는 동안 바라보게 된 르네상스 시대의 역사와 사상 그리고 <군주론>에 대해 좀더 폭넓은 지식에 대한 갈구가 생겨난 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내개 큰 의미를 지닌다. 오롯이 이 작품을 이해하기에는 이 시대에 대한 기본 지식이 미흡했으나, 사건을 쫓아가는 동안 어느 새 세 명의 인물에 동화될 수 있는 작품의 흡입력은 실로 대단했다. 덧붙히지마녀, 이 스릴러 속에 잘 스며든 러브스토리도 단단히 한 몫 하고 있다는 점이다.

 

"치밀한 구성으로 엮어낸 미스터리소설이자 정치스릴러이면서 가슴이 찢어질 듯한 러브스토리이기도 하다. 가장 뛰어난 역사소설들이 늘 그렇듯 독자를 다른 시공으로 데려가는 책" - 타임아웃시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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