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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숲으로 난 길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2
현길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삼촌의 기록은 자신에 대한 기록이면서 동시에 '모든 사람에 대한 기록'이 될 수 있다. 그분의 중학생 때 이야기에서 네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본문 233p)
<<낯선 숲으로 난 길>>은 나의 기록이었고, 내 아이가 현재 겪고 있는 아픔, 갈등에 대한 기록이며 동시에 모든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세철이 중학생 시절 겪은 사랑, 이별, 방황, 가족, 우정 등의 심리묘사가 너무도 잘 드러나 있는데, 이 갈등과 아픔이 서로 다른 시대적 배경 속에서도 공감대가 크게 형성된다. 이 성장통이 결국 십대들이 겪는 공통적 특성임을 알 수 있는데, 때로는 고통스러운 기억이지만 이 아픔들이 새싹이 되어 우리 몸 어느 구석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살아남는다는 것을 일깨운다.
작은 할아버지와 닮은 재범은 작은 할아버지 세철의 추도예배날, 작은 할아버지의 손자로 입적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재범은 할아버지로부터 작은 할아버지가 자신의 삶에 대해 남긴 기록을 받게 된다. 이 기록은 자신에 대한 기록이면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학생들에게 주는 글이라는 마지막 글귀를 담은 <<낯선 숲으로 난 길>>은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다시 찾아온 봄에 담은 중학생 세철의 1년의 기록을 보여준다. 몽골 선교사로 친구 교회의 협동 목사로, 신학교 교수로 남을 위해 봉사하면서 살면서 존경을 받는 세철이었지만, 그 역시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춘기의 성장통을 겪었다. 그 아픔과 갈등이 성장의 자양분이 되어가는 과정이 세철을 통해 잘 보여지고 있다.
세철의 기록은 6.25 전쟁 이후 제주도의 어려웠던 시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2학년 수료식에 1등을 한 성적표와 상장을 받아 들떴던 세철은 반에서 주도권을 잡아온 친구들과 시비가 붙는다. 이 사건으로 정양원 상이군인인 형은 세철의 비겁함을 꾸짖게 되고, 3학년이 되면서 그 친구와 같은 반이 되자 서로의 감정을 풀어내기 위해 일대일 싸움을 하게 되고 이로 인해 세철은 학교의 명물이 된다.
세철은 옆방에 사는 훈련소 대대장인 성 대위와 아내, 형과 보육원 보모인 정연주 선생을 통해 성에 눈을 뜨게 되는데, 보육원 원장의 딸 유원이에게 이성의 관심을 갖게 되고, 피난민 처지에도 항상 명랑하고 당당하며 유원이를 한집안 식구처럼 생각하는 보육원의 정대석에게 질투를 느낀다. 유원에 대한 감정으로 시험을 망치게 되었지만, 가족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의 몫을 찾고 내 나름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같은 학교 학생이 당하는 것을 보게 된 세철은 그를 도우려다 보육원 학생들과 싸움을 하게 되고, 그들의 보복으로 인해 크게 다치게 된다. 미군부대 병원에서 치료받게 된 세철은 그들에게 영어를 배우게 되고, 그들에 대한 보답으로 미군에서 일을 하게 되는데, 포로를 치료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사랑, 인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인연으로 세철은 영어 웅변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되고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게 되지만, 보육원 식구들이 부산으로 떠나게 되면서 유원이와의 이별의 아픔을 겪는다.
공산당을 생각할수록 이가 갈린다. 형님의 다리를 빼앗아갔다. 아버지 목숨도 빼앗아갔다. 우리 집안과는 철천지원수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하면 공산당 때문에 생긴 전쟁이 내게는 이상한 인연을 만들어주었다. 전쟁이 일어나서 피난민이 제주도에 들어오게 되어서 유원이를 만나게 되고, 다시 중학생이 되어서 보육원 아이들과 싸움을 하게 되어 미국 변원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이것은 내게 엄청난 변화이다...
그것은 고생이 되고, 어떤 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게도 했지만, 지나고 보면 그러한 고생과 불행스러운 일들이 다시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문 151,152p)
"우리는 전쟁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미움만으로, 힘만으로 전쟁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전쟁을 이길 중요한 무기는 바로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문 163p)
서울에서 공부하고 싶었던 세철은 가족의 반대에 부딪치게 되지만, 할아버지의 병환과 대학 입학시험 준비로 서울로 형이 떠나면서 세철은 가족이 가진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그렇게 가을과 겨울동안 사람들과 만나면서 사랑을 알게 되고, 이별의 아픔을 겪게 된 세철은 자신을 얽매었던 여러 일들이 나중에 모두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리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견뎌내야 할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임을 깨닫는다.
언젠가는 그 아픔이 새싹으로 내 몸 어느 구석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날 것이다. (본문 224p)
세상 사람들이 가는 정해진 그 평탄한 길에서 벗어나 누구도 가보지 않고, 가려고도 하지 않는 숲으로 들어가 혼자서 새로운 길을 찾으며 살았던 세철의 성장기록을 보면서 재범은 작은 할아버지가 자신처럼 생각되었다. 이는 청소년 독자들, 그 시기를 겪은 모든 독자들도 마찬가지라 생각될 것이다. 비록 현재와는 전혀 다른 배경이지만, 그들의 모습은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이성, 성적, 우정, 왕따, 가족 등과의 아픔과 갈등은 우리가 겪는 보편적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그들이 겪는 아픔과 갈등에 대해 극단적인 생각을 많이 하곤한다. 혹여 자신만이 겪는 고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은 스스로를 코너로 몰곤 하는데, 세철의 중학생 시절의 모습을 보면서 이는 누구나 겪는 성장통임을 알게 될 것이다. 세철을 통해 갈등과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지혜를 바라보았다면, 성장통을 통해 자신이 가고자하는 숲으로 가는 방법에 눈을 뜰 수 있을게다. 세철이 겪는 아픔은 곧 또 다른 삶의 시작이었다. 우리가 겪는 아픔이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그것이 새로운 모습의 나로 성장시켜주는 것임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좌절 속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
사계절 속에 담은 세철의 성장통은 잔잔하면서도 큰 파동을 느끼게 한다. <<낯선 숲으로 난 길>>은 독자들에게 고통 속에서 희망을 보는 법을 선물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