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세스 바리 -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정윤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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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에 따르면, 오구대왕이 딸만 낳다가 일곱째도 딸이 태어나자 버린다. 버리진 바리공주는 한 노부부에 의해 키워졌는데, 후에 왕과 왕비가 죽을 병이 들자 저승의 생명수로만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하자, 여섯 공주 모두가 싫다고 했으나, 버려진 바리공주가 기꺼이 부모를 위해 저승길에 나섰다. 바리공주는 저승의 수문장과 일곱 해를 살고 일곱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조건을 이행한 후에 생명수를 가지고 이승에 돌아왔고, 마침 왕과 왕비의 상여와 마주쳐 부모를 살렸다. 저승 수문장은 장승이, 일곱 아들은 칠원성군이 되었고, 바리는 한국 무당의 조상이 되었다고 한다.

 

바리공주의 설화는 아이들의 그림책으로 여러 번 접했던 터라 익숙하다. 몇 해전 바리공주의 설화를 모티브로 한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재미있게 읽어보았는데, 이번 <<프린세스 바리>>는 바리공주의 설화를 어떤 이야기로 탄생되었는지 무척 궁금했다. 더군다나 제1회 혼불문학상 <난설헌>에 이은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역시 작품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설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지만, 설화 속 바리와 작품 속 바리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설화 속 바리공주가 부모를 살리기 위해 저승으로 갔다면, 작품 속 바리는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인도하고 있다. 설화 속 바리는 부모를 만났지만, 작품 속 바리는 끝내 부모에게 버림받았다. 그렇게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제대로 교육도 받지 못한 바리는 자신만의 느낌 하나만 믿고 살아간다.

 

"....저는 배운 것도 없고 세상 일에 대해 아는 것도 없어요. 제 느낌 하나만 믿고 살아가요. 잘 살고 싶은 욕심도 없어요. 잘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지만." (본문 175p)

 

<<프린세스 바리>>는 현재, 과거를 오가며 구성되는 작품으로, 1. 굴뚝을 시작으로 과거와 현재를 돌고 돌아 17. 다시 굴뚝으로 돌아온다. 열차가 수인선을 달릴 때는 호황을 누렸으나, 노선이 폐지된 이후로 한순간에 몰락해버린 수인곡물시장 속 문을 열고 두 걸음만 걸으면 철길이 닿고, 바로 앞에 닿아 있는 산에서 흙이 흘러내려오는 일곱 가구가 모여사는 이곳에는 바리와 아홉 살 때, 중국에서 양아버지에 의해 참깨가 든 포대 속에서 5일 동안 웅크린 채 건너온 중국인 나나진과 굴뚝 청소부 청하가 살고 있다.

바리는 산파 할머니와 토끼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다섯 명의 계집아이를 낳은 연탄공장 사장 부인이 다섯 번째 딸을 받을 때 '엉터리 나무뿌리 달여주곤 돈 받아먹는 주제에. 아기도 안 낳아봤으니 내 고통을 알 리가 없지. 당신 손길 징글징글해. (본문 23p) 라며 악담을 퍼붓자 산파는 '쌓은 연탄만큼 흔하게 계집만 낳아라, 마지막 아이는 내가 데려간다.' (본문 23p)라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 탓이었던가? 부인은 일곱 번째도 딸을 낳았고, 산파는 결국 일곱 번째 딸아이를 데리고 어릴 적 친구였던 토끼에게 찾아간다. 두 사람의 순탄치 않았던 결혼 생활,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공통점이 바리의 운명을 좌우했다.

그렇게 산파 할머니와 토끼 할머니에게 길러진 바리는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두 사람의 이기적인 사랑으로 자랐고, 옐로하우스의 몸을 파는 유리들을 상대하며 돈을 벌었던 산파가 죽자, 토끼는 바리를 가족에게 돌려보내려고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산파의 죽음 이후 바리가 좋아하던 유리였던 연슬언니의 죽음, 그리고 청하의 할머니의 죽음이 뭔가 석연치 않음을 토끼는 직감하고, 그 탓에 바리의 삶은 바리를 '마녀, 귀신'이라 놀리던 남자애들에 의해 철길까지 따라온 갈매기가 몸을 움직이려 발을 버둥거렸던 것처럼 흔들어 놓았다.

청하의 청혼으로 조촐한 결혼식을 올리며 청하의 아이를 임신하면서 이제 겨우 행복한 삶을 누리려 했던 바리는, 산파에 의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법을 배우게 된 탓 그리 평탄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산파가 미워진다.

 

나는 갈비뼈 사이에 손끝을 깊숙하게 찔러넣고 폐를 눌렀다. 숨이 흐트러지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폐를 눌렀다. 영감의 눈동자가 커졌고 두려워하는 눈빛이었다. 두려워한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강렬한 의지였다. (본문 9,10p)

 

인천 변두리 지역을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들의 삶을 디테일하게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이 작품은 몰락한 수인곡물시장을 배경으로 한 탓에 등장인물 모두가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일곱 번째 딸로서 행복한 삶을 누렸을지도 모를 바리, 불임탓에 이혼을 하고 아버지로부터 약초를 배우고 산파일을 하게 된 산파, 책읽기를 좋아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에 학교를 그만두고 일을 해야했고, 불임과 남편의 죽음으로 혼자 되고, 산파와의 결별로 끝내 혼자가 되었던 토끼, 엄마의 죽음과 의붓아버지와의 석연치 않은 관계를 보이는 나나진, 유리로서 힘든 삶을 살다가 결국 죽음을 원하게 된 연슬 언니, 굴뚝 청소를 하며 행복을 꿈꾸었지만 끝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청하...이들의 이야기는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비참하고 힘든 삶으로 인해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두려운 죽음을 편안하게 인도하고자 하는 바리는 굴뚝에서 안타까운 죽음으로 맞이하게 된 남편 청하를 인도하고자 굴뚝을 헤매인다.

 

"어, 나나진 청하는 아직 저기 있어. 가봐야 해. 얼마나 놀랐을까. 더 늦기 전에 내가 청하는 인도해줘야 해." (본문 322p)

 

<<프린세스 바리>>의 주인공 바리는 조금은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교육을 못받았다는 설정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모티브로 한 바리공주의 느낌을 살려 신화적인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가 내뱉는 짧은 대사들로 하여금 바리를 독특하거나 혹은 몽환적인 인물로 보여준다. 바리공주의 설화를 모티브로 했다는 점과 바리를 기묘한 캐릭터로 탄생시켰다는 점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으나, 전반적으로 어두운 이야기인 탓에 쉽게 읽을 수 없었다는 점이 내게는 아쉬운 부분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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