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연인들 - 김선우 장편소설
김선우 지음 / 민음사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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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다......하지만, 암울하지는 않았다. 희망은 존재하는 법이니까.

문제를 제기한다.......그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유령이었다.

어느 날, 우연히 블로그에서 보게 된 책 제목이 물이 아닌 눈물로 내게 각인되어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을 읽은 내 느낌을 묻는다면 딱 두 줄로 말하리라. 짧은 두 줄이지만, 내게는 아주 강렬했다. 서정적이면서도 현실적인, 그러면서도 조금은 몽환적인 느낌으로 다가온 책, 이렇게 이 책은 한동안 뇌리에 남아 있을 듯 하다. 그리고 기억하겠지. 물.의.연.인.들 그리고 김.선.우

 

너는 내 몸 곳곳에 각인된 타투. 이것은 질기고 끔찍한 감옥.

이토록 이상한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나를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너를 만난 4년이 한순간의 꽃처럼 피었다 졌다. 그후 7년이 흐르는 동안, 네가 나오면 내가 들어갈 수 있었던 계절은 다시 오지 않았다. 나는 세상에 없었던 것이다. (본문 14p)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지울 수 없는, 온몸 구석구석에 남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 때문에 지옥 같은 7년을 보내고 있는 유경에게 흙탕물이 조금도 가라앉지 않은 채 뿌연 상태 그대로의 유리병이 배달되었다. 와이읍 무위리 11번지 무위암.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서 사라졌던 주소지가 적혀 있었지만 모든 7년 전의 이야기로 유경의 의식에서 밀려나 까마득히 잊혀진 곳이다. 뿌연 흙탕물에는 분노, 저주, 그런 말이 떠오르는 뭔가가 부글거리는 독기 같은 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실감이 없는 유경은 컴퓨터 포탈 사이트 N의 메인 화면에 뜬 아이슬란드 화살 폭발에 대한 실시간 뉴스를 보면서 계속되는 악몽, 음산한 유리병, 그리고 갑작스러운 화산 폭발 뉴스가 뭔가 암시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곧 그녀는 자신의 가슴속에 봉인했던 감옥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다음날 또다시 무위암 주소가 적힌 수린이 죽어가니 도와달라는 해울의 편지가 도착한다. 자신이 아닌 그에게 보낸 편지었으리라. 그렇게 그녀는11년 전, 스톡홀름 호숫가에서 그를 만났던 기억 저편으로 날아갔다.

 

운명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거잖아, 이런 거. 나는 네가 기억하는 그 강에 엄마를 뿌렸어. 그리고 여기에 조금 데려왔고. (본문 49p)

 

와이강에 엄마를 뿌리고 무작정 스톡홀름행 비행기에 오른 건 교도관에게서 전해 받은 엄마의 유품이었던 일기 속에 쓰여진 위그드라실이 보고 싶다는 글 때문이었고, 스톡홀름에 도착한 지 여덟째 날, 그를 만나 사랑하게 된다. 그는 와이 강변에서 발견되어 서울의 입양 기관에 의해 입양되었다. 유경은 그가 운명이라 생각되었고, 이제 완전히 엄마를 보낼 수 있었다. 내 소년. 내 운명.

이제 유경은 자신의 차 칼리를 와이읍으로 몰면서 엄마와 그를 떠올린다. 그가 죽었다는 전갈을 받고고 살아남아 있는 자신, 그러나 살아 있다는 것이 별 의미기 없었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지만, 이제 그렇게 사는 것이 싫어졌다. 몸은 그를 기억하지만, 쓸쓸한 아름다운 소년의 이름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그녀는 엄마를 뿌린 곳, 그와 함께 지냈던 곳,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곳, 아이들이 도와 달라고 한 그 곳 와이강 가까이 가고 있다.

 

남자는 힘이 세기 때문에 때리다가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그 경우 고의가 없어 과실치사이고, 반대로 여자가 힘센 남편을 살해하기 위해서는 준비, 계획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살인죄가 성립되는 식이었다. 남편에게 학대받은 사실이 인정되지만 무엇보다 한지숙이 오래 품어 온 남편에 대한 살해 의지를 고백했기 때문에 변론의 여지는 그만큼 적었다. (본문 94p)

 

엄마와 함께 자매처럼 예쁘게 늙어 갈 자신이 있었던 유경은 설령 10년 구형 그대로라도 나쁘지 않다고, 10년 후라도 점점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폭력은 스무 살의 한지숙을 죽였고, 죽은 채로 살던 그녀는 기어이 자살했으며, 그 남자의 폭력은 열세 살의 유경을 짓밟았고, 유경의 신과 엄마를 죽였으며, 유경은 그 남자를 죽였다. 그리고 유경 또한 죽은 채로 살았다.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사랑했던 와이강에 도착한 유경은 '생명이 강 살리기' 공사로 인해 산산이 파괴된 자신의 모습과 닮아 있는 강을 보게 된다. 유령이 되어가고 있는 강, 그로인해 유령이 되어가는 수린과 해울과 함께.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니까...........외롭지 않겠네, 엄마........

그런데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본문 135p)

 

유경은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수린과 해울을 만난다. 강을 파헤치는 공사를 한다는 이야기가 떠돌기 시작할 때부터 시름시름 기운을 잃기 시작했고, 공사가 시작된 후부터 급격히 상태가 나빠져 먹는 것마다 토하고 자주 쓰러지게 된 수린, 그런 수린이 안타까워 어떻게든 공사를 막기 위해 죽이게 될 거 같은 해울, 그리고 그곳에서 찾은 그의 이름 요나스 노드스트롬, 이연우.

오래 전 유경이 연우를 만나고 함께 하지 않은 시간은 연우가 혼자 와이강을 다시 찾을 때였다. 유경은 해울의 담임선생 유명희를 통해 그녀가 알지 못했던 그 시간의 일을 알게 되고, 수린의 죽음과 수린을 위해 댐 공사를 막으려는 무모한 해울을 통해 유령의 시간에서 깨어나려 한다.

 

살리기라고? 물 것들 날것들 땅의 것들 이리 숱하게 죽어 가는데 살리기라고? 내 아무리 못 배워 먹은 늙은이라도 순리가 그렇지 않은 거라. 억만금이 있어도 살아 있는 송사리 한 마리는 돈으로 만들 수 없는 법이다....돈으로 만들지 못하는 거, 그게 목숨인 것인데, 살리기라고? (본문 199p)

 

하늘이 하는 일을 사람이 제 잇속만 차리느라 금 긋고 둑 쌓았다 무너지는 게 사람 잘못이지 하늘 잘못이냐? 두고 봐라. 물길 막은 저놈의 댐 때문에 언젠가 사방에서 피눈물 흘리는 날이 올 거다. (본문 200p)

 

유경의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와이강을 통해 시작된다. 엄마 그리고 그녀의 사랑 그리고 삶. 유경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은 자연 속에서 시작되고 있다. 대자연의 아주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 우리이기에. 그런 자연을 작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 인간이 훼손함으로써 스스로의 삶, 기억을 파괴하고 있다. 애절한 사랑 이야기지만 4대강 사업을 자연스레 연상하게 된다. 긍정적인 성과를 제시하고 있지만, 문화재가 파괴되고 멸종위기종이 폐사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잃어가는 문제점도 야기되고 있다.

애절한 사랑으로 인한 상실감으로 유령이 되어버린 유경이 강을 통해서 다시 살아보고자 의지를 깨닫게 되는 과정을 통해 저자는 환경 문제를 거론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네 모습, 자연이 있기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소신있게 그려낸 이야기는 작가만이 할 수 있는 펜의 힘이었으리라. 그저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치부할 뻔한 이야기에 저자는 묵직함을 실어주었다.

 

그렇지....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그렇지, 엄마? 그리고........요나스! (본문 258p)

 

유경을 통해서 느낀다. 우리가 가슴 속에 담겨진 아무리 커다란 상처라 할지라도 끄집어내어 조우할 때, 비로소 상실감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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