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교실 - 2012 뉴베리 아너 상 마음이 자라는 나무 32
유진 옐친 지음, 김영선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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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을 받은 저자 유진 옐친은 그 시절을 배경으로 한 청소년 소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교실>>을 출간했다. 저자는 주인공 사샤처럼 소년단원이 되고 싶었으며, 공동 아파트에서 살았고, 헌신적인 공산주의자였던 아버지를 두었으며, 사샤처럼 밀고자가 되어야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야만 했다.

1923년부터 1953년까지 자신의 절대권력을 지켰던 스탈린의 케이지비(KGB, 소련의 국가 보완 위원회, 옛 소련 시절 국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며, 대외 첩보 활동을 벌였다. 본문 15p)는 많은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해서는 없는 범죄를 만들어야 했었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이 체포되지 않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었던 그 시절, 사샤를 통해서 절대권력의 허상이 낱낱히 파헤쳐지며, 선택의 기로 선 사샤를 통해서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케이지비인 아빠처럼 영웅이자 공산주의자가 되고 싶고,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위대한 지도자이자 스승인 스탈린 동지인 사샤의 꿈은 소비에트 소년단에 들어가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샤는 진짜 공산주의자가 되기 위해서 꼭 밟아야 하는 과정 중의 하나인 소년단 입단을 꿈꾸었고, 내일 소년단 발대식에서 당당히 소년단원이 되는 것에 대한 기대감에 가슴 벅차했다. 꾸준한 운동으로 몸을 튼튼하게 만들고, 공산주의자로서의 인격을 갈닦으며, 언제 어디서나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맹세(본문 10p)한 사샤의 행복은 그날 저녁 한밤중에 울린 초인종 소리와 함께 끝이 났다.

소년단에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남기고 아빠는 인민의 적이 되어 병사들에게 끌려갔고, 사샤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방을 빼앗기고, 고모의 집에도 머무를 수 없게 된 사샤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죽은 엄마를 구하지 못한 일을 두고 오래오래 스스로를 탓했던 아빠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지만, 내일 소년단원이 되면 모든 게 괜찮아질거라는 희망을 가졌다.

 

다음 날, 사샤는 소년단원이 된다면 아빠를 잡아간 실수가 바로 잡아질거라는 기대를 안고 학교에 등교를 하게된다. 하지만 눈싸움으로 눈깔 네 개라는 별명을 가진 보르카의 안경을 깨뜨리는 실수를 하게 되고, 소년단 발대식에 필요한 깃발을 가지고 가는 도중에 스탈린의 동상의 코를 깨뜨리는 중죄를 저지르게 된다. 허나 인민의 적으로 지목되어 잡혀간 부모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 스스로 죄를 뒤집어쓴 보르카와 인민의 적으로 죽은 아빠 탓에 범죄자로 낙인된 보브카가 어이없는 누명을 쓰면서 어느 누구도 사샤에게는 잘못을 묻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였던 교실에 남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에게 누명을 씌워야 하는 추악함이 존재했던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라. 그게 바로 진정한 소년단 정신이지." (본문 106p)

 

보브카는 교실에 남기 위해 평소 자신에게 엄격하게 대했던 니나 페트로브나 선생님에게 누명을 씌우는 반격을 저지르게 되는데, 한편 아빠가 인민의 적으로 지목되어 잡혀간 사실을 안 교장 선생님은 사샤를 고아원으로 보내려 한다. 교실로 돌아가려던 사샤는 국어 교사인 루즈코 선생님이 <코>(러시아의 부패한 관료 사회를 풍자한 고골의 단편 소설)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설명하는 것을 듣게 된다.

 

"<코>가 우리에게 전하려는 것은, 우리가 옳고 그름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맹목적으로 따르다 보면, 나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다간 나라 전체가, 심지어 세계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는 사실이에요." (본문 126p)

 

고아원에 가게 되는 사샤는 장교로부터 케이지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얻게 된다. 귀를 기울이고 눈을 크게 뜨고, 학교에서 일어나는 수상한 행위를 신고하는 것, 바로 아빠의 아내이자 사샤의 엄마였던 어느 외국인의 공산주의 반대 활동을 신고했던 아빠처럼 말이다. 사샤는 이제 고자질을 할 것이냐, 루비얀카 교도소 지하실에 가야할 것이냐, 라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리고 사샤는 결심했다.

 

오늘은 중요한 날이었다. 오늘은 내 삶을 영원히 바꾼 날이 되었다.......나는 더 이상 소년단원이 되고 싶지 않았다. (본문 156p)

 

공공의 목적을 위해 개인적인 희생을 강요한 공산주의, 진실여부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공산주의, 결코 어느 누구도 믿어서는 안되는 공산주의, 진짜 공산주의자가 되고 싶었던 사샤는 공산주의의 추악하기만 한 진실을 보고야 만다. 선택의 기로에서 사샤는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게 되면 반역자가 되는 사회 속에서 진실을 쫓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걷는다. 그것이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사샤, 사는 게 참 힘들지, 응? 언젠가는 좋아질까?"

"좋아질 거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기다려야 할 일이 많아. 그러니까 기다려 보자꾸나, 사샤." (본문 165,167p)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경쟁 사회 구조 속에서 누군가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우리는 옳고 그름보다는 살아남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마치 다른 누군가에게 누명을 씌우고 살아남아야 하는 사샤네 교실처럼 말이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사샤는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하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라도 희망이 있음을 우리는 엿볼 수 있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진실을 선택한 사샤에게 따뜻한 침대가 생기게 된 것처럼.

인생을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진실에 마주하여 옳다고 믿는 것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함을, 저자는 사샤를 통해서 혹은 자신의 어린시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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