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선비들의 국토 기행
원영주 지음, 이수진 그림, 권태균 사진 / 주니어김영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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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아이들이 처음 기행문을 접하는 시기는 중학교 교과시간일 것이다. 교과시간 외에 기행문을 접하는 일은 거의 드문데, 특히나 기행을 통한 고전 수필을 읽을 기회는 많지 않다. 다양한 구성, 다양한 소재를 가진 어린이 도서가 많이 출간되고 있지만, 고전 수필을 담은 도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고전 수필이라는 특성상 어린이들에게 호기심이나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소재도 아닌데다, 어려운 문체 탓에 읽기도 수월치 않은 탓 일게다. 그런데 주니어김영사에서 이번에 굉장한 모험을 감행했다.

바로 쉽게 접하기 힘든 고전 수필을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풀어낸 <<옛 선비들의 국토 기행>>을 출간한 것이다. 과연 아이들에게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걱정은 기우였으며 그동안 접하지 못한 분야에 대한 신선함이 흥미로움을 자아냈다.

 

 

옛 선비들은 경치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시를 읊거나 그림을 그리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풍류를 즐겼으며, 여행을 하며 나라와 인생을 걱정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기행을 통한 수필에는 사색을 담은 철학적인 느낌을 주는 근엄한 작품도 있지만, 기행을 통해 친구와의 어린 시절을 추억을 되돌아보고, 어린이가 된 듯 썰매를 타는 등의 유쾌함이 묻어나는 수필도 있는데, 이 책은 고려 후기와 조선 시대에 살았던 양반들이 우리나라의 여러 곳을 여행한 20편의 옛 기행문을 모아 읽기 쉬운 글로 번역하여 수록하였다.

[발해고]의 저자 유득공은 친구들과 도성 안을 돌면서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하였는데, 조상들의 깊은 뜻을 담아낸 경복궁의 석상을 보며 왜구의 침략을 막지 못한 점을 안타까워했다.

실학자, 철학자, 과학자인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인 정약용은 <유세검정기>를 통해 1791년 친구들과 비오는 날 세검정을 다녀온 일을 기록하였다. 비오는 날의 세검정 계곡의 굽이치며 흐르는 계곡물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김상헌의 <유서산기>에는 인왕산에서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기록하였다. 바위로 이루어진 돌산인 인왕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과 함부로 나무를 베어 가지 못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을 지키는 않는 사람들에 대한 탄신 그리고 기울어져가는 나라에 바른말을 해 줄 충신이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나라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는데, 이 나라를 일으킬 인재가 보이지 않는구나."

"임금님에게 바른말을 해 줄 충신이 없으니 정말 큰일이로세." (본문 30p)

 

 

푸른 학이 산다는 청학산에 오르는 이이의 <유청학산기>에는 청학산을 너무도 잘 묘사하고 있어 마치 멋진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경전의 <노호승설마기>는 신나는 느낌을 주는 기행문이다. 1631년 겨울 큰 눈이 내리던 예순다섯의 이경전은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노량강변에서 이들을 전송하던 차에 꽁꽁 언 강에서 눈썰매를 타 보게 되는데,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즐거움 속에 벗들과의 돈독한 우정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정범조의 <설악기>는 그야말로 기행문으로서의 느낌이 진하게 베어나는 작품이며, 허균의 <유범천사기>는 법천사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에 대한 자문을 하게 되는 여행기가 기록되어 있다.

부여 여행길에 오른 이곡의 <주행기>는 백제의 역사를 알아가는 즐거움이 담겨진 기행문이기도 하지만, 좋은 구경 속에서 농사일로 바쁜 사람들을 보면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지금 이 글을 남기는 것도 내 행동을 반성하고 앞으로의 경계로 삼기 위해서야. (본문 95p)

 

 

그 외에도 한라산에 올라 백록담을 본 최익현의 <유한라산기>, 귀경대에서 일출을 본 것을 기록한 의류당 남씨의 <동명일기> 등을 통해서 기행을 통한 고전 수필을 엿볼 수 있다.

어렵고 따분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분야에 대한 흥미로움이 더욱 컸던 독서였다. 기행문을 읽다보니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이 생기기도 하고, 여행지를 자세히 묘사한 글을 통해서 간접 체험의 경험도 생겼다. 특히 기행문은 단순히 여행지를 묘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행을 통해 느낀 점을 함께 기록하고 있어, 선조들의 생활과 생각 그리고 시대상을 엿볼 수 있었다.

<<옛 선비들의 국토 기행>>에서는 각 기행문마다 그때와 달라진 여행지에 대한 사진과 설명을 곁들여 놓았는데, 시간이 되면 아이들과 둘러보면 좋을 성 싶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하루하루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끔은 이 책 속의 선비들처럼 여행을 통해 마음의 안식을 주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옛 선비들의 국토 기행>>은 우리 어린이들이 처음 접하게 되는 고전 수필이 아닌가 싶다. 읽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접근하기에 다소 어려웠던 분야를 이 책은 읽기 쉽도록 접근하였다. 편독이 심한 딸에게는 독서 영역을 넓혀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었나 싶다.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사색이 곁들여진 고전 기행문을 통해서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독서의 이로움이 아닐런지.

 

(사진출처: '옛 선비들의 국토 기행'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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