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사이드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수영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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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우리는 인간끼리 서로 죽이고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표지에서 발췌)

 

요즘 눈에 자주 띄는 작품이라 눈여겨 보았다. 작품의 경력 또한 대단한터라 꼭 읽어보고 싶었던 작품이었다. 일본 서점 대상 2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1위, 주간문춘 미스터리 베스트 1위 등 수상경력이 많은 작품은 유난히 시선을 끈다. 처음에는 잘 몰랐던 표지 또한 이색적이다. 단순히 초록빛의 얼굴이라 생각했는데, 온 몸은 사람의 해골로 가득하고, 눈에서는 하얀 눈물이 흐른다. 무엇일까? 이 삽화가 뜻하는 의미는. 왠지 두려움, 불안함이 엄습한다.

제노사이드. 이는 특정 집단을 말살할 목적으로 대량 학살하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제노사이드>> 제목의 의미를 알고나니 이 삽화가 뜻하는 의미와 표지에 수록된 글귀가 이해가 된다.

역사를 되돌아보면 제노사이드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은 이러한 인류사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미국, 일본, 콩고를 넘나드는 블록버스터급 스케일은 액션, 공포, 미스터리를 통한 긴박함으로 한시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다.

 

이야기는 미국 대통령인 번즈가 '인류 멸망의 가능성''아프리카 신종 생물 출현'에 대한 보고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콩고 민주 공화국 동부의 열대 우림의 신종 생물 출현. 이 생물이 번식하게 될 경우, 미국 국가 안정 보장에 중대한 위협이 될 뿐만 아니라 전 인류 멸망이라는 위험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 사태는 1977년에 슈나이더 연구소가 제출한 『하이즈먼 리포트』에서 이미 경고되었다. (본문 11p)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인해 번즈는 이 사건을 하찮은 이야기로 치부하고 만다. 2004년 어느 여름밤에 시행된 이 회의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전 세계에서 열 명도 넘지 않은 채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폐포 상피 세포 경화증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아들의 치료비를 위해 조너선 예거는 작전 수행을 참여하기 위해 콩고로 가게된다. 반면 겐토는 아버지의 죽음 뒤에 도착한 한 통의 이메일로 아버지가 아무도 몰래 연구하고 있던 일에 참여하게 된다. 겐토는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연구를 시작하게 되지만 경찰과 의문의 여성에게 쫓기는 위험에 말려들게 된다.

겐토의 연구에 도움을 주는 인물로 저자는 한국 유학생인 정훈을 등장시켰다. 스토리 중에 조센징이라는 단어가 수록되어 있어 사실 살짝 기분이 상했던 터였는데, 정훈의 비중이 적지 않음에 사실 놀랐다. 이 스토리를 엮어가는데 정훈의 역할이 단단히 한 몫하고 있기 때문인데, 책 소개에 수록된 글을 보니 저자는 작품을 구상할 때부터 '고 이수현'씨의 숭고한 정신을 담아낼 생각을 했다고 한다. 특히 작품 속에 한국의 '정'에 대해 상당부분 할애하고 있는 점을 볼 때,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서 한국과 일본 사이에 놓여진 깊은 골에 대해 펜을 통해 그 간극을 좁히려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본다.

 

이 작품에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는 인물은 미국의 대통령 '번즈'이다. 자유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뒤에서는 합법적으로 독재자를 만들어 내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번즈 정권은 제노사이드를 행하는 유일한 동물인 인간의 극악무도한 본성을 너무 잘 묘사하고 있다.

"인간은 자신도, 다른 인종도 똑같은 생물종이라고 인식하지 못하네. 피부색이나 국적, 종교, 경우에 따라서는 지역사회나 가족이라는 좁은 분류 속에 자신을 우겨넣고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이라고 인식하지. 다른 집단에 속한 개체는 경계해야 하는 다른 종인 셈이야. 물론 이것은 이성에 의한 판단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습성이네. 인간이라는 동물의 뇌는 태어나면서부터 이질적인 존재를 구분하고 경계하게 되어 있어. 그리고 난 이거야말로 인간의 잔학성을 말해주는 증거라고 생각하네." (본문 473,474p)

 

700페이지에 달하는 두께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읽어내려가는 일이 어렵지 않았다. 과학, 의학, 인류의 진화 등 방대한 영역으로 접근하며, 미국, 콩고, 일본 등 공간적 스케일과 다양한 인물의 등장으로 인해 다소 산만할 수 있을지 모르나, 예거와 겐토의 공통분모가 생겨나면서 이야기는 더욱 긴박함있게 진행되면서 놀라울 정도의 짜임새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어 다소 어두운 스토리로 진행되지는 않을까하는 우려를 가졌지만, 생생함을 전달하는 묘사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겐토와 정훈과의 관계구도 등을 통해 어두운 면에 감동, 재미를 더하여 흥미로운 작품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신인류가 등장한다면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번즈와 같은 인간의 본성인 잔학성에 따라 우리 존재를 지키기 위해 그 잔악성을 보여주게 될까? 아니면 악보다 선의 성향이 근소하게 웃도는 인간이 '서로 돕는 사람'으로서의 면목을 지키게 될 것인가? 서로 돕는다는 것 자체가 돈을 벌기 위함이라는 경제 활동의 결과라는 하이즈먼의 이야기 속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악한 본성은 간혹 선함을 가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에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제노사이드>>가 영화화된다고 하면 굉장한 블록버스터 한 편이 탄생될 듯 싶다. 그러나 결국 세계의 권력자인 미국의 도발을 그려내고, 한국인의 큰 역할이 있다손 치더라도, 모든 것이 일본의 '선'으로 결말되어지는 것을 볼 때, 세계적인 흥행작품으로 우뚝 서기는 어렵지 싶다. 결국 인간은 이 작품에서 보여준 것처럼 다른 종을 경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굉장한 매력을 가진 작품이다. 긴장감과 놀라운 흡입력을 갖추고 있으며, 방대한 스케일을 가지고 있음에도 읽기에 어렵지 않았던 <<제노사이드>>의 놀라운 완성도로 인해 이제 다카노 가즈아키 저자를 기억해두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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