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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스터리한 일상 - 개정판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일요일 오전, 나는 <서프라이즈>를 즐겨 본다. 실화를 바탕으로 우리 일상에서 보여지는 미스터리한 일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으로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나의 구미를 당긴다. 귀신같은 영적인 존재의 이야기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간혹 우리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 어떤 추리소설이 주는 오싹함보다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 탓인지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이 주는 구성은 허구에 의한 자극적이고 긴장감 넘치는 추리소설에 비해서는 건조적인 느낌이 들 수 있겠지만, 우리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다가옴으로써 서서히 밀려오는 오싹함에 오히려 짜릿함을 느끼게 한다.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의 와카타케 나나미가 선배 사타케 노부히로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시작된다. 사내보를 만들게된 와카타게는 업무나 훈화 같은 딱딱한 내용이 아닌 오락성을 강조하여 소설을 실어보라는 지시를 받게 되고, 소설을 쓰는 선배 타케에게 단편을 써달라는 제의를 한다. 이에 사타케는 창작해 내는 재능은 없는 대신, 어디까지나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어느 정도의 각색을 하여 미스터리풍 이야기를 쓰는 친구를 소개하게 되는데, 작가의 신원과 이름 등을 일체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이렇게 해서 사나다 건설 컨설턴트 사내보 <르네상스>는 4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익명 작가의 연작 단편소설' 12편을 수록하게 된다. 이 12편의 작품은 모두 '나'라는 일인칭 시점에 의해 일상 속에서 만나게 되는 미스터리한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벚꽃이 싫다는 말에 도코는 벚꽃이 싫다는 또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네에서 제법 이름난 명물인 '벚나무 연립'은 ㄷ자를 돌려놓은 모양으로 그 중앙에는 거대한 벚나무가 있었다. 벚꽃이 한창인 봄, 6호 집에서 일어난 방화사건이 발생하고, 나는 방화사건의 범인을 추리해간다는 4월 [벚꽃이 싫어].
5월 [귀신]은 공원에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거대한 전지가위를 들고 돈나무 가지를 억지로 비틀어대며 자르려는 여자가 들려주는 섬뜩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15년 전 스물두 살이던 유코는 열여덟 살 때 부모님을 잇달아 여의고 열일곱 살이 되는 여동생 사나에와 단둘이 살고 있다. 여자들끼리 사는 것이 무서웠던 유코는 동생에게 집 단속을 단단히 일러두었지만, 자신이 집을 비운 동안 사나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만 하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러던 중 유코는 돈나무로 인해 사나에의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범인이 잡혔다고 했지만, 나는 절분에 귀신을 쫓을 목적으로 돈나무를 문에 끼워두는 풍습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 이야기에 숨겨진 새로운 부분을 추리해나간다.
청과물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가와는 다다마키 상가 사람들이 다다마키 파이터즈라는 야구팀을 결성해 다른 상가팀에 도전장을 내밀고 원정을 나가곤 하는데, 모모야마 샤이닝하고의 시합에서 작전 사인이 유출되었다는 의혹에 그 증거를 잡기 위해 유력한 용의자인 보험 판매원인 다카기가 자주 간다는 프랑스 식당에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털어놓음으로써 그 증거를 찾아내게 되는 6월 [눈 깜짝할 새에], 사촌인 나쓰미가 들려주는 고등학교 시절의 하코네 여행 이야기를 담은 7월 [상자 속의 벌레], 나팔꽃 여인이 꿈에 나온다는 친구 다키자와의 이야기, 그리고 그 뒤로 죽음을 맞이한 다키자와에 대해 듣게 된 다른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8월 [사라져가는 희망], 9월의 어느 이른 아침, 고야산의 A라는 절에 머물게 된 나는 함께 머물게 된 기시모토 가즈코로가 겪은 일을 듣게 되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 절에는 나 혼자만 머물고 있었음을 알게되는 9월 [길상과의 꿈]. 선배의 회사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나는 부장의 딸 이름을 알아맞히는 내기에 참여하게 된다는 10월 [래빗 댄스 인 오텀], 도둑 누명을 쓰게 된 마쓰타니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선배의 결백을 밝히게 되는 나의 이야기 11월 [판화 속 풍경]에 이어 10여 년 전에 있었던 케이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12월 [소심한 크리스마스 케이크], 1월 [정월 탐정], 2월 [밸런타인, 밸런타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3월 [봄의 제비점]이 수록되어 있다.
일상의 이야기에서 '나'가 추리해가는 결말은 5월 [귀신]처럼 오싹함이 느껴지는 이야기도 있지만, 11월 [판화 속 풍경]처럼 조금은 허무하고 황당한 결말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이야기를 듣고 추리해나가는 과정은 여느 추리소설 못지 않은 임팩트를 보여주고 있다. 단 하나하나의 단편이기에 여타의 추리소설에서 보여주는 스케일이 부족하다는 점이 아쉬움을 갖게 되는데, 여기서 독자의 허점을 찌르는 반전이 나타난다. 열두 편의 단편이 끝나고 와카타케 나나미는 [조금 긴 듯한 편집후기]를 통해서 그동안 익명으로 활동했던 작가를 만난 일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 야기를 통해 열두 편의 조각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멋드러진 추리소설로 재탄생된다. 이 편집후기를 읽고서야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이 추리소설로서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매력을 엿볼 수 있었다.
사실 하나하나의 단편들이 미스터리 소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내용을 모두 담아내고 있지만, 조금 2%로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추리, 오싹함, 자극적인 부분들이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조금 긴 듯한 편집후기]를 통해 그 부족함이 메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이 작품은 마지막 페이지까지 놓치지 않고 읽어야만 그 작품의 진가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자극적이지 않지만, 추리소설로서의 그 맛을 제대로 살린 작품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