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소녀 주니어김영사 청소년문학 2
이경화 지음 / 주니어김영사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재희에 대한 안타까움이 책을 읽는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너무도 무책임한 엄마의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하고, 아무말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재희에게도 화가 났다. 재희를 이용하기만 하려는 친구들, 조롱하는 친구들에게도 화가 났고, 재희를 좀더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못하는 선생님에게도 화가 났다. 어쩌면 나는, 성적과 친구 관계, 폭력과 왕따로 죽음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을 도와주지 못하는 이 사회에 대해 화를 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출판사 서평에 의하면, 청소년 자살의 동기는 가족과 갈등이 36.6%, 친구와의 갈등이 25.6%, 학업문제 등이 12.2%로 나타났으며, 가정불화, 친구와의 관계, 학교폭력 및 집단따돌림 등의 원인 때문에 자살을 결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한다. 이에 선진국들과 같이 죽음교육에 대한 시행이 절실함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영어,수학,국어,과학..등 학업 성적과 대학진학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터라,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청소년들이 서 있을 곳은 그리 많지 않다. 그들이 위로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른인 나는 그들에게 죄인이 된 기분이다.

 

슈베르트이 현악 4중주 14번 D단조, 지금 나한테 어울리는 건 바로 날카로운 현악기의 비장한 D단조다. 열일곱, 나는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소멸하고 있는 것 같다. (본문 41p)

 

(이미지출처: '네이버'_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

 

오스트리아의 화가 에곤 실레가 1915년에 그린 그림 <죽음과 소녀>는 열일곱 살 소녀가 잔뜩 겁을 먹고 불안한 표정으로 죽음을 안고 있으며, 소녀는 죽음을 끌어안고 놓지 않으려는 듯 그려진 그림이다.

또한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는 깊은 우울에 빠져 있던 슈베르트가 자신의 어두운 삶을 반영한 작품으로 영원한 잠으로서의 죽음이 주는 유혹과 안락함을 의미하는 음악이다.

열일곱 살의 재희 역시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만으로도는 부족한 그래서 마음을 끌어내리는 이 작품들에 빠져있다. 마치 소녀가 된 듯 재희는 그림에 매달렸고,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를 들으면 세상과의 소통을 차단했다. 그림 속 소녀처럼 불안해 보이는 재희는 긴 머리에 예쁜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긴머리는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 위한 방어막이었다.

고개를 약간 숙이면 머리카락이 내려와 시선이 차단되고, 세상의 모든 그들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친구의 변심과 완벽한 가정을 망가뜨렸다며 망가진 자식 취급을 하는 엄마, 학업 성적으로 선악을 구분하는 사회 속에 다른 사람 눈치 보는 법을 배운 재희는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 소외되어 위축되어 있다.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에 빗대어진 재희의 모습을 재구성한 작품)

 

엄마의 완벽한 가정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야 하는 순간에만 거론되는 망가진 자식이다. 일말의 희망을 가질 수 없도록, 죄인에 대한 낙인은 일 년에 네 번, 일제고사 때마다 정확한 숫자로 포기된다. (본문 23p)

 

하지만 자신만의 태양이 있다고 믿는, 자신만의 창을 열어 주겠다고 말하는 다정한 아빠가 있어 재희는 하루하루를 감내한다. 집안의 냉기 이후 갑작스러운 이사와 전학가게 된 재희는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자신을 피피라고 불러주길 원하는 공필순과 친구가 된다. 피피로 인해 1학년 3반에서 벌어지는 재미난 세계를 알게 되었고, 피피의 친구들이 모두 피, 돌림이듯이 재희는 재피가 된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재희는 아빠가 바람을 핀 탓에 도망치듯 이사를 하게 된 것임을 알게 되고, 욕실에 붉은 물이 흘러넘치고 눈동자가 허옇게 된 엄마를 발견하면서 모든 것이 사라진다. 잊었던 기억, 자신이 그토록 빨강색을 싫어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비로소 기억하게 된다. 설상가상 피피는 '병신같은 년'이라는 악다구니와 함께 사라지고 재희는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이 세상은 나 같은 사람이 살기엔 너무 힘들어.

나는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어. 삶의 바람이 내어놓은 구멍에 삼켜지기 전에 말이야. 그건 너무 비참하고 끔찍해. 가족들에게도 미안한 일이야. 벗어나고 있어, 벗어나고 있어, 나의 마지막 자존심으로. 삶에서 마지막으로 나에게 베푸는 배려, 나의 고통을 헤아려 너무 원망은 말아줘. (본문 142p)

 

예전에 읽은 자존감에 관한 책을 인용하자면, 자존감은 부모의 양육 태도를 통해 형성되고 기초적인 뿌리가 만들어지며 이후 학교 생활 및 또래 관계 속에서 조금씩 교정되어진다고 한다. 재희의 엄마는 재희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쓰레기 취급하였고, 재희를 완벽한 집안을 망치는 존재로 치부하면서 재희의 자존감을 짓밟았다. 이 낮은 자존감은 결국 친구와의 관계 속에서도 그들에게 내쳐질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점점 움츠러 들고 있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서 더 이상 갑갑해하고 싶지 않다. (본문 181p)

 

그래도 재희를 사랑하는 아빠와 오빠, 미안해하는 엄마 그리고 모두 아닐 것 같았지만 자신을 신경써주었던 친구가 있었기에 재희는 다시 용기를 내본다.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이야기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신기하리만치, 재희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되었고, 친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보기도 한다. 작가 김연수는 자신의 소설 속에 '1천65억 개 중의 하나라는 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니라, 아주 특별하다는 걸 뜻한다.'고 했다. 더이상 아무것도 아니라 특별한 존재로서의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찾아가는 재희의 시작에 희망이라는 불빛이 반짝이는 걸 보고서야 비로소 마음의 조바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조바심은 읽는내내 너무 암울하고 어두운 탓에 재희에게 희망이 존재할 수도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탓이다.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죽음이 주는 유혹과 안락함에 빠지게 되지만, 그로인해 잊고 있었던, 아니 모르고 있었던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아가면서 삶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는 재희를 보면서 긴장을 풀어본다.

 

창문이 닫혀 보이지 않아도 태양은 언제나 환하게 떠 있단다.

알고 있지? 사랑하는 우리 딸,

재희가 자기만의 창을 발견하는 그때 아빠도 힘차게 같이 열어 주마. (본문 21p)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죽음의 유혹에 빠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어두워보이지만 희망은 늘 존재하고 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창문 너머로 떠 있는 태양을 볼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태양을 볼 수 있는 그 마음은 서로간의 관심과 사랑에서 비롯됨을 기억해보자.

 

(사진출처: '죽음과 소녀' 본문에서 발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