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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 프라미스 - 아빠와 함께한 3218일간의 독서 마라톤
앨리스 오즈마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내가 아이를 위해서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던 첫 날을 떠올려본다.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 후 '엄마, 나 여기 있어요'라는 의사표시를 하듯 꼬물거리는 아이를 위해 동화책을 구입했다. 매일 저녁, 뱃속의 아이를 위해 남편과 내가 번갈아가면서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하루종일 누워 잠자는 아이에게도 나는 하루에 한 번씩 꼭 책을 읽어주었다. 그런 모습이 석연치 않았던 부모님의 잔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그런 탓인지 아이는 언어 면에서 뛰어남을 보여주었고, 4세에 한글도 쉽게 떼었다. 그와 더불어 나의 책 읽어주기는 막을 내렸다. 이제 글을 읽을 수 있으니 혼자 책을 읽어라, 라는 말과 함께. 간혹 문장이 긴 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남편과 나는 서로 미루기에 바빴다.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어야 하는 나의 의무가 마치 끝났다는 듯이.
내가 다시 아이를 위해서 책을 읽어주기 시작한 것은 그 뒤로 한참이 지나 큰 아이와 6살 터울이 나는 둘째가 4살이 되었을 때다. 임신 때부터 책을 읽어주었던 큰 아이가 책읽기를 무척 좋아하는 것과 달리, 둘째 아이는 책 읽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책이라도 읽어주려고 하면 제목을 읽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는 아이가 걱정스러워 매일 밤 책 한 권씩을 읽자는 약속을 하게 되었고,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라는 나의 의무는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한 권씩 책을 읽어주는 일이 습관화가 되면서 아이는 책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와 함께 또다시 나의 책 읽어주기 의무는 끝났다.
아이가 책을 읽을 줄 안다해도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 좋다는 것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나의 의무(?) 밖 일에 대해서는 어쩐 일인지 시도해보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아빠와 함께한 3218일간의 독서 마라톤 <<리딩 프라미스>>를 읽으면서 비로소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책을 읽어주는 것이 다른 아이보다 뛰어난 아이로 기르기 위한, 책 읽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시간과 오롯한 관심이다. (중략) 아이들은 쉽게 속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모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무엇인지 눈치로 알아차린다. (본문 12p)
딸에게 책을 읽어준 저자의 아버지 짐 브로지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책을 읽어주기 위한 목적과 그가 딸에게 책을 읽어준 목적이 사뭇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딸에게 책 읽기를 통해서 관심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었던 것이며, 딸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세상을 좀더 잘 들여다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이다.
몸이 아파서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 날에도, 어떤 문제로 딸과 다투어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 않는 날에도 책 읽기를 거르지 않았다. 이런 노력이 있었기에 엄마의 부재와 언니의 독립이라는 외로운 시간 속에서도, 일탈을 꿈꾸려는 사춘기에도 그녀는 세상을 좀더 잘 들여다보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던 거 같다.
그즈음 깨닫기 시작한 사실이지만, 허구의 이야기가 담긴 것이라도 책에는 늘 아주 훌륭한 지식과 정보가 있었다. 완벽한 진실이든 아니든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알려주었다. 정말로 유용할 때도 많았다. (본문 65p)
책을 읽는동안 나는 아버지 짐과 딸 앨리스가 처음에 그러했듯이 '100일간의 독서마라톤'을 꿈꾸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기였던 의무에서 완전히 벗어나 세상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그리고 아이에게 오롯한 시간과 관심을 내어주기 위한 책 읽기로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독서 마라톤이라고 불렀지만 실제로는 약속에 가까웠다. 서로에게 한 약속, 우리 자신에게 한 약속이었다. 항상 그 자리를 지킬 것이며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희망이 없던 시절에 맺은 희망의 약속이었다. 모든 게 불안하던 시절에 맺은 안정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본문 322p)
어느 새 큰 아이가 자라서 사춘기를 맞이했다. 딸아이의 성장통이 내게는 버거울 때가 있었고, 미울 때도 있었다. 저자에게는 책 속의 주인공들을 통해서 딸아이가 성장할 수 있도록 책을 읽어주는, 응원해주는 아버지가 있었다. 그러나 내 아이는 지금 혼자 세상과 소통하기위해, 세상을 자신만의 언어로 보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다. 저자가 독서 마라톤과 함께 했던 3218일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참 많이 부러웠으며, 또한 아쉽고 안타까웠다. 그러나 아직 나에게도, 딸아이에게도 그리고 작은 아이에게도 수많은 시간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아본다. 부모와 자식은 참 가까운 사이지만, 아이가 자랄수록 서로 간의 작은 벽이 생겨난다. 세월에 따라 조금씩 두터워지는 벽으로 나중에는 가깝고도 먼 사이가 되는 것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독서 마라톤으로 서로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이들의 모습 속에서 나와 아이들간의 소통을 위한 작은 발걸음을 시작해보려 한다. 그 작은 발걸음이 이들 부녀처럼 큰 발걸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을 담아서 말이다.
아버지 짐 브로지나는 말한다. 아이의 성장과 행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마음을 몇 번이고 증명해 보인 부모라면 아이들이 살아가며 어떠한 길을 걷게 될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아이는 감수성이 풍부하고 생산적인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가 장애물을 또 하나 극복했다는 기쁨과 자부심. 그때는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막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독서 마라톤이 우리에게 던진 난관을 가볍게 이겨냈다. 우리는 두려울 게 없는 천하무적이었다. 아버지가 힘없는 속삭임으로 읽어준 어린이 책은 가장 맛깔스럽게 읽은 셰익스피어보다 훨씬 더 근사했다. (본문 216p)
(사진출처: '리딩 프라미스'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