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엄마
김주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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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이름처럼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단어는 없다. 여자에게 엄마는 더더욱 그러하다. 결혼 전에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다, 라는 애증이란 감정이 더 컸지만, 결혼한 뒤에야 엄마는 온전한 울타리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엄마를 잃은지 9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 엄마는 애달픈 존재가 되고 말았다. 딸이었지만, 엄마가 된 나와 같은 여자 입장에서 엄마라는 단어는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갖게하는 대상이 된다.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나는 세상 천지에 나 혼자가 된 듯한 느낌으로 너무도 많은 울음을 토해냈지만, 남동생은 왠지 담담한 느낌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도 문득문득 복받치는 감정 때문에 울컥 눈물을 흘리기도 했는데, 남동생은 어느새 현실의 삶에 충실한 듯 싶었다. 그렇다고 오해는 하지말라. 동생 역시 엄마의 죽음에 굉장히 슬퍼했으니. 다만 감정을 표현하는 자체가 달랐을 뿐이다. 물론 그 당시 그런 감정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으나, 이 작품을 읽은 지금에서야 그 슬픔이 얼마나 묵직했음을 나는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읽으면서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많이도 울었다. 그런데 김주영 작가가 쓴 <<잘가요 엄마>>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남자에게 엄마라는 존재는 어떤 느낌일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이 작품은 <엄마를 부탁해>처럼 복받치는 오열을 주는 작품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 묵직한 슬픔은 존재했다.

 

"내려오셔야 하겠습니다."

새벽 세시에 걸려온 전화가 예사로울 리는 없었다. (본문 7p)

 

엄마의 부음을 알리는 이복 동생의 전화를 받은 후, 요란했던 전화벨소리에 청각이 마비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진 그는, 조금씩 기억의 파편을 모아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고집이 쎘던 어머니는 당신의 시간을 고집스럽게 지켜나갔는데, 어머니가 타고난 지지리도 못난 팔자를 당신 자신이 짊어지고 살아온 내력이 은연중 몸에 밴 탓일 것이리라. 집에서 이십킬로미터 이상을 벗어난 적이 결코 없는 어머니는 이십오 년 전 아들이 서울 아파트에 입주한 첫해의 늦여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울에 다녀갔던 날을 떠올렸다. 버릇없는 손주, 소원한 며느리와 지내다 이른 새벽에 함께 올라온 동생과 조심스레 내려가신 어머니.

 

아직도 잠이 덜 깬 내 이마에 어머니의 차가운 손이 가만히 내려와 얹혔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간혹 내 이마를 쓰다듬어주었던 어머니의 손바닥은 더없이 부드럽고 따뜻했다는 기억은 가슴속으로 뭉클했다. (본문 22,23p)

 

여행을 떠나고 없는 아내와는 연락할 방법이 없었고, 애당초 연락하는 사이도 아니었다. 그는 어머니 시신을 염습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아서 부음 소식을 듣고도 열여섯 시간을 하는 일 없이 보내고 말았다. 이튿날 새벽녘이 되어서야 H시에 당도한 그는 아직 입관하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에 아우에게 화를 낸 후, 어머니의 시신이 연소실로 들어가기 전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버렸다. 허나, 그는 연소실로 되돌아 온 후에야 비로소 눈물이 쏟아졌다.

 

연소실로 돌아온 나는 햇볕이 드는 벽 아래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꺼내물었다. 비로소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눈물이 먼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주제 할 수 없이 흘러내린 눈물이 입에 문 담배를 적셨다.

"엄마."

....아우의 전화 통기를 받고 서울을 떠나온 이후 비로소 흐릿하고 아득하게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지금처럼 애간장을 태울 만큼 어머니를 그리워했던 적은 없었다. (본문 74p)

 

풍광이 좋은 곳에 유골을 뿌린 곳은 초등학교 사학년 가을소풍 때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다. 아버지의 부재, 월사금 한 번 내지 못했던 가난은 그를 외톨이로 만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분노와 증오로 얼룩진 어린 시절을 이제 그는 아우의 손에 이끌려 하나둘 돌아보게 된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품팔이를 하는데도 두 식구가 끼니 걱정을 그칠 수 없었던 그 시절의 알 수 없었던 이유들이 어머니가 죽은 뒤에야 퍼즐이 하나둘 맞춰지면서 어머니의 삶을 이해하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어머니의 재혼으로 절망감에 치를 떨며, 어머니를 미워하며 아파했던 자신의 어린시절에도 어머니 안중에는 자신밖에 없었음을 그는 비로소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나의 과장과 속임수는 그 발단이 어머니를 증오하는 데서 비롯되었고 증오가 깊어갈수록 이상하게 가슴속은 편안했다. (본문 200p)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 어머니가 밉살스러웠다. 어머니가 나 때문에 속을 썩으면 썩을수록 쾌감을 느낄 만큼 어머니가 싫었지만...(본문 219p)

 

어머니에 대한 증오와 미움 속에서 어린 나이에 집을 나가 겪은 고통과 상처를 그는 고향의 모든 이들과의 단절로 풀어내려 했었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었던 그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퍼즐을 완성해나가서야 비로소 편안해지는 듯 보였다.

사람은 어리석은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한 줌 먼지가 된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부드럽고 따뜻했던 기억을 그리워할 줄 아는, 뒤늦은 후회로 땅을 치며 후회하는 존재이니 말이다.

어머니와 고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그것으로부터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어머니가 살았던, 힘들었고 고통스러웠던 어린시절의 기억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찾았으니 말이다.

 

결국 우리 인생에서 남는 것은 혼자 가만히 앉아 있으려면 딱히 누구랄 것도 없이 막연하게 그리움이 있다는 것, 그 한 가지뿐이라는 것이다. 채우지 못한 무엇이 있어서겠지. (본문 266p)

 

'엄마'라는 소재는 진부하지만,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소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 오열은 없었지만, 묵직하게 내려앉은 슬픔이 오히려 더 큰 슬픔을 자아내는 작품이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 엄마를 보낸 지 9년이 지난 지금은, 울컥 복받치는 감정에서 무뎌졌다. 그러나, 주인공이 연소실에서 비로소 엄마를 그리워하는 장면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한 줌의 재가 되어버린 엄마를 허망하게 바라보던 그날을 떠올리면서 눈가가 촉촉히 적셔졌다.

 

"잘 가요, 엄마."

안개처럼 씨앗처럼.....한평생 무겁고 가혹한 삶의 중력에서 벗어날 날 없었던 어머니는 결국 한줌의 먼지였다.....그렇게 해주 최씨였던 어머니는 끼닛거리 마련에 평생을 박해받은 이승에서 처연하게 소멸되고 말았다. (본문 88,89p)

 

자신을 향한 미움, 분노, 증오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중에는 끝내 자식밖에 없었던 박복했던 어머니의 삶이 진부하지만, 처연하게 다가온 작품이다. 이 세상 모든 누군가의 어머니들의 삶은 늘 그렇게 진부하지만, 늘 그렇게 처연하고, 또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임을 김주영 작가의 필체로 묵직하고 담대하게 적어내려 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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