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로스 & 토르소
크레이그 맥도널드 지음, 황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표지의 그림이 난해하게 다가온 것처럼 스토리 역시 내게는 조금 난해였던 작품은 아니었나 싶다. 투우(corrida de toros)에 열광하던 20세기 전반에 걸친 예술, 문화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탓인지도 모르겠다. 목과 팔이 없는 조각 작품을 뜻하는 토르소(torsos)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TOROS & TORSOS>>는 엽기적인 살인극을 다룬 작품이다.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책 제목은 알고보면 스토리를 가장 잘 함축한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은 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지적 엔터테이먼트 소설이지만, 사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는 진정한 맛(?)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

르네 마그리트와 살바도르 달리, 만 레이로 대표되는 초현실주의 미술을 모티브로 한 살인'이라는 설정과 헤밍웨이, 오손 웰스, 존 도스 파소스 등 20세기의 예술가들이 주인공 헥터의 친구들과 등장한다는 점이 이 작품만이 보여주는 색다른 재미라고 할 수 있으리라.

 

태풍 볼라벤이 한반도를 휩쓸고 있을 무렵 나는 이 책을 읽고 있었다. 1막에서 주인공이자 범죄 스릴러 작가인 헥터 라시터가 스물서너 살의 레이첼을 꼬시기 위해 작전을 수행할 때도 책의 배경이 되는 키웨스트 섬은 폭풍 전야의 어수선할 때였다. 이는 1930년대 실제 많은 생명을 앗아간 최악의 허리케인이 불던 상황을 배경으로 했다고 한다. 헥터가 레이첼을 유혹하는데 성공할 무렵, 여자의 배 속을 몽땅 비우고 그 안에 기어, 자전거 체인, 보트에 다는 작은 프로펠러 등으로 채워놓는 초현실주의를 쫓는 기이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헥터는 레이첼과의 깊은 관계를 맺게 되지만, 키웨스트 섬에 불어닥친 폭풍과 살인 사건은 많은 사람 뿐만 아니라 레이첼 마저 잃고 만다.

2막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스페인으로 이주한 헥터는 스파이로 오해를 받는 위험한 상황에서 레이첼을 닮은 동생 알바를 만나 새로운 사랑을 하게 된다. 레이첼의 복수를 하지만, 또 다시 사랑하는 여인 알바를 잃게 되는 헥터는 그 후 10년 후를 배경으로 한 3막에서 레이첼의 아버지를 만나 새로운 진실과 대면하게 되는 한편, 예술가 집단과의 대립 등을 통해 긴장감 넘치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토로스&토르소>>는 사실 스릴러의 가장 흥미로운 요소인 '반전'에서는 조금은 미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릴러를 즐겨읽는 독자라면 반전 요소를 아마 쉽게 눈치챘을 것이다. 반전의 요소를 숨겨 놓거나, 독자로 하여금 혼선을 두게 하였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조금 남는다.

세상이 무서워질수록, 예술은 추상적이다. -파울 클레

본문에 앞서 적혀져 있던 이 글귀는 책 띠지에 쓰여진 '누군가가 죽어야 예술이 된다'는 말의 의미와 일맥상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현실주의 미술을 모티브로 한 살인사건에 걸맞는 글귀였는데, 예술이라는 명목하에 범죄를 저지르는 예술가들의 광기어린 모습은 스릴러에 잘 어울리는 주제로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또 하나의 쏠쏠한 재미는 책 전반에 걸친 비중있는 인 물 헥터의 친구 헤밍웨이의 등장이다. 작가로서의 모습이 아닌 인간 헤밍웨이의 모습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인데, 나에게는 신념있는 남자다운 모습과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주인공 헥터 라시터의 캐릭터가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헤밍웨이를 비롯한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의 실제 삶이 버무려진 작품 <<토로스 & 토르소>>는 초현실주의 미술을 모티브로 한 살인사건을 쫓는 범죄 소설가 헥터 라시터를 통해 긴장감 속에 펼쳐지는 20세기의 예술과 신념, 욕망과 광기를 맛보게 될 것이다.

 

(사진출처: '토로스 & 토르소'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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