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국
반도 마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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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은 추리소설의 대부분은 살인에 대해 많이 다루고 있었더 탓에, 귀신에 대해 다룬 작품은 실로 오랜만이다. 사실 귀신을 잘 믿지 않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무서운 귀신 이야기나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한 섬뜩함이 들면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못하게 된다. 누구나 한번쯤은 사후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가족의 죽음, 가까운 지인의 죽음으로 인해 사후세계에 대한 궁금증을 여러 차례 가져보았다. 어린시절에는 제사를 지낼 때 할아버지, 할머니가 먼저 드시고 나서 먹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알 수 없는 이야기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합해보면 우리는 오랫동안 귀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던 거 같다.

 

빨간 글씨, 앳된 느낌을 주는 표지 삽화가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묘진 히나코가 아버지의 일 때문에 간토로 이사하기 전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야쿠무라에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어린시절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지 몰라 두꺼운 껍데기 안에 틀어박혀 있는 우둔한 거북이 같았던 히나코는 이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었다. 히나코는 부모님을 대신해 고향의 집 문제를 해결하고, 애인과의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마음의 상처를 달랠 겸 이십 년 만에 고향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히나코는 초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였던 사요리가 십팔 전에 물에 빠져 죽었다는 소실을 접하게 된다. 이곳에서 선조들의 혼령이 집에 내려와 사흘간 머물다 간다고 믿는 일본의 명절인 오봉을 맞이한 그녀는 동창회에 참석하게 되고,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사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휩싸이게 되는데, 이후 초등학생 시절 좋아했던 후미야를 만나면서 시간을 보내면서 애인 히데로 인한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나간다.

 

이 작품에서는 히나코의 이야기 외에도 순례자인 나오로의 이야기가 또 하나의 스토리로 등장하게 되는데, 아내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아픔을 간직한 채 순례 중이었던 그는, 후반부에 히나코와 합류하게 되면서 사건의 클라이맥스를 함께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시코쿠는 사국. 이 세상에서 죽음의 나라와 가장 가까운 장소가 시코쿠라고. 왜냐하면 먼 옛날, 시코쿠와 사국은 하나였거든.

난 사국으로 가버린 사요리를 데려올 거야. 순례를 떠나 시코쿠를 왼쪽으로 돌면 돼. 왼쪽으로 도는 것은 사국 방향. 사국에서 사요리의 영혼을 데려올 거야." (본문 249,250p)

 

죽은 사요리를 불러오기 위해 88개의 절을 사요리의 나이만큼 거꾸로 순례하는 사요리의 엄마 데루코, <시코쿠의 고대 문화>라는 책을 남겼지만 혼수상태로 병원에 입원 중인 사요리의 아버지 야스다카, 곳곳에서 느껴지는 사요리의 시선과 흔적 등 작품 곳곳에는 음산하면서도 섬뜩한 느낌을 잔뜩 배어져있다.

 

예기치 못한 결말은 섬뜩함과 동시에 당황스러움, 아쉬움을 주고 있지만, 더 살고 싶었던 죽은 자들의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배어져나오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의 특권을 가벼이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거다. 산적한 문제를 짊어지고 가기. 그것이 거북이의 등껍데기. 히나코는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주먹을 꽉 쥐었다. 사람은 모두 의식하건 하지 않건 그 껍데기를 짋어지고 살아간다. 껍데기를 감싸안는 것 자체가 살아 있다는 표시, 산 자의 특권이다. (본문 382,383p)

 

요즘은 껍데기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살아 있다는 증거임을 우리는 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죽은 이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우리는 너무 쉽게 놓아버리고 있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그 문제들과 맞닥뜨리고, 상처입고, 이겨내고, 고민하는 것이 바로 산 자의 특권임을 히나코는, 그리고 독자들은 죽은 자들에 의해 비로소 느끼게 된다.

산 자와 죽은 자가 공존하는 <<사국>>에서 그 경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통해 구분되어지는 것은 아닐런지.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는가? 사자는 우리 옆에서 우리를 보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불러낼 날을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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