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17
박선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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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내 안에서 이성과는 다른 목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이미 안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쪽에서는 악마의 속삭임이 들린다. 늘 이성이 우세하여 내 안의 다른 목소리를 무시하곤 하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존재하고 있음을 무시할 수는 없다. 흔히 우리는 이를 인간의 양면성이라 부르곤 하는데, 여기 이 양면성에 관한 묘사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이 있다. 바로 <<그놈>>이다. 내 안의 다른 그놈의 이야기.

주인공 독고단은 열일곱 살의 아이큐 152이라는 천재적 수치를 가지고 있지만, ADHD(집중력과잉행동장애)와 우울증 진단을 받은 소년이다. 단은 게임 중독이라는 심각한 증세도 보이는데, 반 친구들은 몬스터로 표현하고, 학교나 집 등을 던전이라 부르곤 한다.

 

단은 어머니 이미란을 애칭인 란이라 부르며, 란보다 여섯 살 연하인 새아버지인 독고민수는 수라고 부른다. 단이 공갈젖꼭지를 물고 있던 때 재혼했던 탓에 낯선 느낌은 없었지만, 완벽한 수의 강압적인 교육와 훈계에 단은 거의 미칠지경이다. 9개월 전 심각한 정도의 주의력결립과잉행동장애에 우울증, 게임 중독 진단으로 소아청소년정신과 안정병동에서 석 달을 입원했던 기억은 단을 몸처리치게 했다.

담배가 없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숨이 막혀 300번도 더 뒈졌을 것이다....웬만한 중딩, 고딩들은 다 가지고 있는 증상들을 그는 죽을병이라도 되는 양 과장해 말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안정병동. 이름만 들어도 끔찍하다. (본문 20p)

 

퇴원하면서 학교에 무단결석 하지 않기와 PC방에 절대 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담배를 허락하고, 보충수업과 야자를 빠지는 데 동의해주었지만, 단은 학교라는 던전과 엄마들이 키우는 몬스터들과 같은 아이들 사이에서 견디지 못해 무단 조퇴를 반복하고 PC방도 자주 드나든다. 단은 자신의 이런 행동들이 자신 스스로가 아닌 모두 '그놈'이 시키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놈'이 본격적으로 정체를 드러낸 것은 내가 여덞 살 때였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누구나 받게 되는 의무교육을 받으러 나도 학교라는 곳엘 들어갔다....어떻게 40분 동안 꼼짝없이 한자리에 앉아 있고 고작 10분을 쉰단 말인가. 선생님의 지적질이 날아들자 나는 가슴이 답답해 숨 쉬기도 힘들었다. 내 안의 그놈이 꿈틀거리며 자기 존재를 드러낸 것은 바로 그즈음이었다. 그놈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 (본문 63,64p)

 

'그놈'이 내 안에 살게 된 것은 어쩌면 내가 란의 배 속에 있을때부터였는지 모른다. (본문 50p)

 

단은 아이큐가 높을 뿐만 아니라 피아니스트 못지않는 피아노 연주 실력을 가지고 있으며, 재활용품을 이용해 무기 아이템을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천재와 문제아 두 부분을 모두 가지고 있는 단은 늘 혼란스럽다. 독립심을 길러준다며 돌이 지나자마자 독방을 마련해주었던 친부에 대한 기억, 란과 수 사이에서 태어난 독고찬과 자신은 다르다는 느낌이 주는 외로움, 교수이자 완벽해보이는 수 앞에서 늘 작아지는 단. 이런 모든 상황 속에서 단의 '그놈'은 점점 커져만 갔다. 수 앞에서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던 '그놈'은 결국 겉잡을 수 없이 성장해 수를 밀치는 행동까지 보였으니 이제 단도 그놈을 억제할 수가 없다.

 

단이 가장 싫어하는 몬스터는 바로 사사건건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몬스터 D다. 몬스터 D에게 휘두른 폭력으로 늘 강했던 수가 D의 부모에게 무릎을 꿇는 것을 보며 목구멍으로 뜨겁게 넘어오는 무언가를 느끼지만, 점점 겉잡을 수 없는 그놈과 수와의 충돌로 결국 가출을 감행한다. 가출 후 몬스터 D에 대한 복수심으로 찾아가지만 오히려 흠씬 두들겨 맞고 병원에 실려가게 된 이후 단의 생활은 조금씩 변화하게 된다. 단은 외로웠다는 것을, 가족과 함께이고 싶다는 것을 비로소 느끼게 된 것이다.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조금 나은 응원단이 퇴장한 것처럼 마음이 허전했다. 미운 정이라도 들었나? (본문 227p)

 

단은 친부에 의한 그리고 새아버지에 의한 환경적 요소로 늘 외로움을 많이 느꼈던 듯하다. 처음 사귀게 된 친구 134340과는 어떻게 놀아야할지 알지 못하는 그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것보다는 혼자 지내는 것이 더 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할 수 있는 상대가 동생 찬 밖에 없었던 단이 찬을 화풀이 대상으로 삼은 것은 소통하는 법을 알지 못했던 때문일지 모른다. 그런 자신에게 아부(?)를 하며 가까이 다가오는 찬이 가족과 연결해주는 끈이라는 것을 너무도 늦게 알게 된 셈이다.

 

요즘 우리 사회 문제의 면면을 살펴보면 사람들의 폭력성이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화를 억누르지 못해 우발적으로 저지르게 된 행위들은 바로 이렇게 내 안의 '그놈'을 이성이 이겨내지 못함인데, 이는 세상과의 소통, 외로움 등이 만들어낸 '화'일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 아이들 사이에 ADHD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조기교육을 비롯, 가족과의 대화 단절 등으로 인해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가족의 응원, 사랑 속에서 성장하는 우리 아이들은 천재다. 그러나 잘못된 부모의 양육은 간혹 아이들의 마음 속에 '그놈'을 살게 하곤 한다.

 

빌어먹을, 나는 아직까지는 천재다. 내 안에서 그놈이 힘없이 킥킥 웃는 소리가 들렸다. (본문 313p)

 

<<그놈>>은 천재와 문제아라는 양명성을 가진 단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단을 통해서 내 아이일수도 있을 청소년들의 내면을 들여다보았으며, 그들이 겪고 있는 아픔을 보았다. 가족이라는 따뜻한 울타리 안에서 자신감을 갖게 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과 악을 이겨낼 수 있는 가치관을 가질 수 있게 된다는 불면의 진리를 새삼 경험하게 된다. 가족에 대한 믿음과 관심을 느끼게 되면서 조금씩 자신감을 찾아가는 단의 모습 속에서 희망이라는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흔히 문제아라고 부르는 아이들은 분명 천재라는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를 문제아라는 선입견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단의 담임 주머니곰처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그것이 희망을 보여주는 시작이 될 수 있을테니.

 

내 인생의 고난이 여기서 끝날 리야 없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죄충우돌 맞서다가 안 되면 피해 가고, 피해도 안 되면 누구에게 구원을 요청하면 된다. 십중팔구는 또 란을 부르겠지만. 나는 밑도 끝도 없는 믿음으로 마음이 편안했다. (본문 3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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