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영화포스터 커버 특별판)
줄리언 반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연예인의 자살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그들의 자살의 대부분 이유는, 악성 댓글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글 한줄에 상처를 받고, 그 버거움에 목숨을 끊는다. 안타깝고 슬프다. 다행히 악성댓글을 단 적이 없음에 스스로 안도의 한숨을 쉰다. 스타의 죽음으로 인해 각종 루머는 진실 속에서 사라졌다. 자살이 단 하나의 진실한 철학적 문제(본문 29p)라고 했던 카뮈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앞으로 내 말 한마디, 내 글 한 줄에 좀더 신중해야겠다는 것과 내 자신의 역사를 진실을 외면한 채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기억하지 말아야겠다는 것을 절감하게 한 것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읽은 후부터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혹여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떤 말로 인해 누군가 심한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의 거짓된 기억으로 누군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처음 표지로 인해 눈길을 끌었던 책이다. 저자 줄리언 반스는 수상경력도 화려하며 다양한 책을 출간하였으며 영국 문단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높다고 하는데, 사실 나는 저자의 책을 처음 접한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굉장히 섬세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터라 남자라는 사실에 살짝 놀라움도 들었다.

이 작품은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와 2부는 그 느낌이 확연이 다르다. 1부는 책에 굶주려 있었고, 섹스에 굶주려 있었고, 성적표에 연연하는 아나키스트(본문 22p)들이었고, 허세덩어리였던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1부는 흡사 성장소설을 보는 듯한 기분이다.

2부는 주인공 토니 웹스터가 생이 저물어가는 무렵에 과거를 회상하는 부분으로 아주 잔잔하면서도 강렬하게 흘러간다. 2부는 그렇게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내용으로 흘러간다.

 

이야기는 주인공 토니 웹스터 '나'가 화자가 되어 흘러간다. 원래는 콜린과 앨릭스와 '나' 이렇게 셋이었지만,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눈을 내리깔고 생각을 입 밖으로 내놓지 않는, 키가 크고 조용한 녀석(본문 13p)인 에이드리언 핀이 합류하면서 이들은 넷이 되었다. 에이드리언은 총명했으며 선생님들의 관심을 받았는데, 특히 역사 교사인 조 헌트 영감은 더욱 그러했다. 어느 날, 과학반 6학년생인 롭슨이 자살을 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이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라는 궁금증을 가졌지만,정작 알고 싶었던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이 자살을 두고 에이드리언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카뮈는 자살이 단 하나의 진실한 철학적 문제라고 했어."

"단 하나의 진실한 문제. 다른 모든 게 걸린 근복적인 문제인 거지." (본문 29p)

 

이제 이들은 졸업을 통해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다. 총명했던 에이드리언은 케임브리지 대학 장학금을 받았으며, 나는 브리스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게 되었고, 콜린은 서식스 대학에, 앨릭스는 아버지 사업에 뛰어들었다. 졸업 후 이들은 편지를 주고받음으로써 관계역학을 재조정하게 되었는데 세사람은 에이드리언의 관심을 받고 싶어했고, 그의 인증을 받고 싶어했다. 각자가 그와 가장 친하다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본문 38p) 시간이 흘러 토니는 베로니카라는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지만, 결국 헤어지고 만다. 졸업반이 된 토니는 에이드리언으로부터 베로니카와 데이트를 해도 되냐는 편지를 받게 되고, 나는 '이십일자로 온 자네의 서신을 수령하면서, 본인은 모든 것을 유쾌하고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명시하고자 상찬과 기원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치네, 벗이여.'(본문 77p) 라는 덜떨어졌을진 몰라도, 모호한 구석은 없는 답장을 보낸다. 그후 토니는 앨릭스로부터 에이드리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시간이 흘러 토니는 결혼을 했고, 이제 은퇴를 하게 되었다.

 

나는 살아남았다. '그는 살아남아 이야기를 전했다.'.....역사는 살아남은 자, 대부분 승자도 패자도 아닌 이들의 회고에 더 가깝다는 것을. (본문 101p)

 

그렇다. 1부는 에이드리언이 역사에 대해 말했던 것처럼 '뭔가 일어났다'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리고 2부는 살아남은 자의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역사(개인의 역사)를 되짚어보게 된다. 토니는 잠깐 만난 적이 있는, 오래전 사귀었던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 포드 부인에게 오백 파운드의 유산과 포드 부인의 딸 소유로 되어 있는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유품으로 받게 된다. 그러나 베로니카는 토니가 유품으로 받게 될 일기장을 넘겨 줄 생각이 없다. 대신 토니는 베로니카로부터 오래전 에이드리언에게 답장으로 보냈던 자신이 쓴 편지를 받게 되는데, 그리고 이 편지로 인해 모든 사건이 일어났음을 깨닫게 된다. 에이드리언의 자살, 사라 포드의 죽음을 통해 진실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게다.

 

나는 안다, 이제는 바꿀 수도, 만회할 수도 없음을. (본문 254p)

 

에이드리언은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본문 106p) 라는 말을 인용했었다. 바로 이는 이 책에서 줄곧 이야기하고 있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와 맞물려진다. 우리 자신의 소소하고 사적이고 기록되지 않은 태반인 단편들(본문 107p)에 대해서 우리가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리라. 우리는 나 자신, 혹은 타인의 역사에 대해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하곤 한다. 후에 이 왜곡은 마치 진실인 듯 역사 속에 쓰여지고 있는데, 토니는 그렇게 왜곡된 자신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진실을 찾아간다.

토니가 과거를 되짚어가는 과정에서 나 역시도 (책을 읽는 독자들은 모두 같은 경험을 하게 되리라.) 과거를 되짚어가게 되었다. 나를 감추기 위해서 나 스스로의 역사를 거짓으로 쓴 과거를 생각해보고, 혹여 나로 인해 상처받은 이는 없을까?도 되짚어 보았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부정확한 기억으로 기록된 역사는 나 자신의 왜곡이 어디에 있는 조차 모른다는 사실로 나를 더 절망스럽게 했다. 되돌릴 수 없다는 그 절망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거기엔 축적이 있다.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본문 255p)

 

잘 기억할 수 없는 과거의 그릇된 왜곡으로 인해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혼란이 야기되었을지도 모른다. 바꿀 수 있고,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감사할 따름이리라. 책을 읽는내내 공허함이 느껴졌다. 토니가 느꼈을 절망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나 역시도 넋을 잃게 되었다. 분명 나는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한 적이 있을 것이고, 그로 인해 그는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 역사 속에서 그 사건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타인의 잘못에 촛점을 두고 기록했을 게다. 모든 것이 내가 유리한 방향으로 기억되고, 왜곡되고 있을테니...그 왜곡된 역사 속에서 나는 망연자실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지금 토니가 느끼는 회한과 절망의 감정을 오롯이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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