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나의 삼촌 브루스 리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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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뵤오~를 외치고 특유의 인상을 쓰며 쌍절곤을 휘둘렀던 이소룡, 이쑤시개를 입에 물고 바바리코트를 휘날렸던 주윤발은, 남자라면 이들을 따라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6살 차이가 나는 나의 막내 삼촌 역시 이들을 따라했다. (여자들은 한때 유행을 선도했던 김희선을 따라 하곤했다.) 이들을 따라했던 사람들 중에는 이들을 우상으로 삼아 배우가 되기를 꿈꾼 사람도 있을테고, 이소룡처럼 되고 싶어 쿵푸를 배운 사람도 있을 것이다(왠지 개그맨 이경규가 떠오른다). 누군가 말했다. 제2의 누구누구라는 호칭은 제1의 누군가를 따라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므로, 제2의 누구라는 호칭이 나쁜 것만은 아니고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렇게 제2의 이소룡, 제2의 주유발이 되고자 했던 사람들은 꿈을 좇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 좌절을 맛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제2의 이소룡이나 제2의 주윤발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을 봐서는. 인생은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너무도 가혹하다. 제 2의 브루스 리가 되고 싶었던 주인공 브리스 리처럼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이소룡을 흠모했던 평범한 사내들 중 하나인 권도운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야기는 주인공 권도운을 정면에 내세운 것이 아니라, 그의 조카 상구가 화자 '나'가 되어, 삼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끌어간다. 이소룡은,

산다는 것은 그저 순전히 사는 것이지, 무엇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본문 10p)

라는 말을 했다. 이소룡을 흠모하는 삼촌은 이소룡의 말처럼 바로 꾸역꾸역 순전히 살아내야 하는 삶을 보여주었다. 여기 삼촌의 삶을 제대로 표현한 글귀가 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삼촌의 삶을 표현한 이 글은, 책을 다 읽은 후에야 비로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표절과 모방, 추종과 이미테이션, 나중에 태어난 자 에피고넨에 대한 이야기이며 끝내 저 높은 곳에 이르지 못했던 한 짝퉁 인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것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말이다. (본문 11p)

 

권 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던 농촌마을인 학촌에 삼촌이 등장한 것은 10여 년 전 가을, 삼촌의 나이가 여덟 살때였다. 동네에서 매우 신망이 두터운 어른이었던 할아버지의 서출로 단둘이 살던 할머니의 죽음으로 오갈데 없던 그가 친부를 찾아 온 것이었다. 이미 할아버지는 갑작스럽게 사망한 뒤였지만, 할머니는 삼촌을 받아주었고, '나'에게는 다섯 살 차이가 나는 삼촌이 생겼다. 함께 살면서 삼촌은 말을 더듬게 되었고, 흔히 말하는 눈칫밥을 먹었다. 그러던 삼촌은 이소룡에 열광했고, 이소룡처럼 무도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수련을 했다. 삼촌은 제2의 이소룡이 되기 위해 오디션을 보겠다는 꿈을 가졌지만, 삼촌을 사랑한 오순이의 헛된 욕망에 그의 꿈은 좌절되고 결국 서울로 도망쳐야했다. 중국집에서 배달원이 되었던 그는, 다시 한번 홍콩에서 이소룡의 유작 '사망유희' 오디션을 보고자 했지만, 그의 꿈은 홍콩을 눈앞에 두고도 이룰 수 없었다. 그는 단순히 꿈을 이루지 못한 좌절을 맛본 것은 아니었다. 그를 둘러싼 인물들은 그의 삶을 좌지우지했으며,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상구가 삼촌의 삶을 들려주는 방식으로 흘러가지만, 삼촌의 삶 뿐만 아니라, 삼촌을 둘러싼 인물들과 자신의 이야기도 함께 곁들여진다. 특히 삼촌을 우상으로 삼은 상구의 친구 종태의 삶 역시 녹록치 않았는데, 종재와 '나' 그리고 종태와 삼촌의 어긋난 삶 역시 볼거리다. 특히 이 소설을 읽는 또다른 즐거움은 애써 감추려하지 않는, 애써 미화하지 않으려는 표현력에 있다. 가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한 글은 맛깔스러움이 묻어나는데, 남성 독자들에게는 공감과 유쾌함을 선사할 듯 싶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이소룡을 좇으려던 한 남자의 희극 혹은 비극이 되는 삶을 담아낸 이야기가 전부일까? 답은 NO다.

1권에서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중후반을 사회적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 삼촌의 삶은 이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있으며, 역사적 소용돌이가 가장 심했던 이 시기의 정권이나 사회적 부조리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권 씨가 모여 사는 집성촌인 학촌은 관습을 꼬집는 장소적 배경이 되었고, 서출이라는 점은 편견을 꼬집는 그럴싸한 소재가 되었다. 또한 무도인이 되고자했던 삼촌의 경력 또한 편견의 한 장애물이 되었으니 그의 삶이 녹록치 않을거라는 것은 인물 묘사에서 이미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뿐인가. 조직원이 되고 싶은 도치, 삼청교육대의 교관이나 서 형사 등은 권력에 대한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삼청교육대와 광주민주화 운동 등 그 시대에 행해졌던 사건들이 주인공과 그들을 둘러싼 등장 인물을 통해 서술되어, 단순히 이소룡을 좇았던 한 인물의 삶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부분은 너무도 많다.

이 때문인지 이소룡을 좇는 삼촌에 대해 열거하고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중반부까지는 너무도 유쾌하게 흘러가지만, 그 시대상을 배경으로 문제점을 꼬집어가는 과정에서 이야기는 살짝 지루하게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권에 대한 궁금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작가의 필력에 대한 믿음, 그리고 삼촌의 삶에서 희극을 보고픈 독자로서의 바람 때문은 아닐까 싶다. 화자가 되는 상구, 그리고 종태의 새로운 모습 그리고 브루스 리가 되고픈 삼촌은 과연 어떤 삶을 보여주게 될까.

 

그것은 언제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으나 절대로 다가갈 수는 없었다. 허겁지겁 달려가면 저만치 멀어지고 다시 달려가면 그만큼 더 멀어지는 안타까움에 삼촌은 꿈에서 깨어날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 엄청난 상실감에 허겁지겁 담배를 찾아 급하게 빨아대곤 했다. (본문 3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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