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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위만왕은 고조선을 계승했다고 할까? - 준왕 vs 위만왕 ㅣ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1
송호정 지음, 조진옥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평점 :
역사를 어려워하는 딸을 위해 다양한 역사책을 접해보았다. 재미와 흥미 위주의 역사 학습만화, 감동을 곁들인 역사동화 등 다양한 구성을 가진 책들을 접해보았는데, 이번에 접하게 된 역사책은 지금까지 접해본 책과는 차별화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역사의 통사개념이었다면, 이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시리즈는 역사 속 라이벌이 재판을 벌이는 구성으로 사건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고 있다. 통사로 접근한 역사를 배울 때는 사건에 드러난 부분만을 배우기 때문에,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이 어려운데, 이 시리즈는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균형있는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데 의의를 둘 수 있겠다. 라이벌은 서로의 입장에서 사건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를 다각도에서 보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현 교과서에 수록된 역사가 왜 그러한 기록으로 남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는 <<왜 위만왕은 고조선을 계승했다고 할까?>>로, 준왕 VS 위만왕의 법정 재판을 다루고 있는데, 바로 우리 역사상 만주 일대와 한반도 서북지방을 배경으로 세워진 최초의 고대 국가 고조선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준왕과 위만왕은 어떤 사건으로 재판을 하게 되었을까?
역사공화국은 역사 속 영혼들의 나라다. 고조선의 역사를 왜곡한 배은망덕한 자에게 소송을 걸기 위해 준왕은 나현명 변호사를 찾아온다. 고조선하면 단군왕검과 위만밖에 들어보지 못한 나현명은 준왕이 누군지 잘 알지 못하지만,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역사 속 억울한 자들의 주장을 대변하기 위해 나현명 변호사는 사건을 접수하게 된다.
위만왕은 단군조선 왕의 입장에서 보면 어디까지나 배신자에 불과합니다. 무엇보다 그는 위만조선의 업적을 크게 부풀리기 위해 단군조선의 역사를 왜곡하고 축소하고자 했습니다. 이에 나는 위만왕과 그의 후손들에게 단군조선과 나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퍼뜨려 명예를 손상시킨 것에 대한 정신적 손해 배상을 청구하고자 합니다. (본문 18p)
이에 원고 준왕과 피고 위만왕의 재판이 시작된다. 재판은 총 3일에 걸쳐 열리게 되는데, 올바른 판결을 내리기 위해 첫째 날은 고조선은 어떤 나라였는지를 알아가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둘째 날은 위만조선은 어떤 나라였으며 위만은 누구이고, 위만조선은 어떻게 세워졌으며, 어떻게 나라를 다스렸는지에 주력한다.
셋째 날은 위만조선이 세워진 후 고조선의 발전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준왕은 정말 나약한 왕이었는지를 파헤쳐본다.
그렇다면 이 재판의 중요 요점은 무엇일까? 단군조선의 왕조가 시작된 후로 준왕까지 평화롭게 이어져 내려온 고저선은 중국 연나라 왕인 노관의 부하였던 위만이 고조선으로 내려오면서 바뀌게 된다는 점이다. 위만을 보살폈던 준왕은 허무하게 왕위를 빼았겨 버린데다, 위만이 왕위에 오른 뒤 업적을 많이 세우고 고조선을 정복 국가로 발전시켰다는 이유로 위만왕을 칭찬만 하는 것에 대한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에 준왕은 무능했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
위만왕은 순수 혈통의 토착 조선인은 아니였지만, 중국의 문화를 고조선에 억지로 심으려하지 않았으며 기존의 체제를 뒤엎으려 하지 않았다는 점, 청동기 문화에서 진화하지 못하고 있던 고조선 사회에 철기 문화를 전하여 농업 생산량을 증가시키고, 정복 국가의 면모를 갖출 수 있었다는 점으로 변호한다. 만약 스스로가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고조선 사회를 발전 시킬 수 있었을까에 대해 자신의 진심을 전달한다.

변호사님, 그가 조선 사람이냐 아니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변호사님은 지금 정치와 국가의 운영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시는 듯 보입니다. 위만이 없었다면 한국사의 첫 국가인 고저선이 역사에 그 이름을 당당히 내세울 수 있었을까요? 단군조선도 위만조선만큼 한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는 못했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렇게 성립된 고조선의 역사가 고려, 백제와 같은 고대 국가의 출현 배경이 되었고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연나라 땅에서 나와 위만조선을 세운 위만의 공은 진실로 크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위만이 단지 출신이 불분명하고 왕위에 오르는 과정이 자연스럽지 못했다고 해서 이렇게 비난받는 것은 그에게는 좀 억울한 일 같군요. (본문 77,78p)
위만조선이 세워진 뒤 조선이 사방 수천 리의 영토를 가진 국가로 성장한 것에 대해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위만조선이 세워지는 바람에, 우리 한민족의 첫 국가인 단군조선의 역사가 단절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엄연히 단군조선의 것임에도 위만조선의 것으로 둔갑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단군조선의 영향을 받았는데도 위만조선은 마치 그들의 문화인 양 행세했습니다. (본문 79,80p)
3차에 걸쳐 원고와 피고 그리고 관련자들의 진술을 통해서 재판과정을 살펴보게 되는데, 이제 그 판결은 독자의 몫이 된다. 준왕과 위만왕의 최후 변론까지 살펴보면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고조선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들이 상당수 있었다. 기원전 2333년 건국된 줄 알았던 고조선은 사실 그보다 한참 뒤인 기원전 8~기원전 7세기 무렵에 존재했다는 점과 만주 벌판을 휘젓던 대제국이 아닌 유적과 유물을 통해 볼때 한반도 서북부와 요동 지역에 이르렀다는 점 등이다.
한국사에서 단군조선과 위만조선이 가지는 의의와 관련 인물들을 통한 고조선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재판을 소재로 한 독특한 구성을 갖추고 있는데, 재판이라하여 딱딱하거나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던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이해하기가 용이했던 거 같다.
준왕의 입장에서 보는 위만조선, 위만왕이 세운 위만조선의 업적에 대한 평가 등 고조선을 이렇게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던 작품이다. 무엇보다 라이벌 형식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게 되는 과정은 역사를 접하는데 흥미를 느끼게 한다.
첫번 째 이야기를 접했을 뿐인데도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높아졌다. 역사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잡아주고, 역사에 대한 흥미를 자극하는 이 시리즈가 보여주는 다음 이야기가 너무도 기대되는 작품이다.
자기 민족의 역사를 돋보이게 하려고 있지도 않은 진실을 부풀리는 것이야말로 쓸데없는 열등감이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 겨레의 뿌리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지요. (본문 29p)
(사진출처: '왜 위만왕은 고조선을 계승했다고 할까?'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