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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 콩고
배상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1월
평점 :
"콩고는 말이야 아프리카 가운데 있는 땅의 이름이야. 그곳에서 갖가지 인류와 영장류가 생겨나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들 해. 항상 새로운 인류가 시작되었던 곳이라고나 할까. 나는 여기서 우리 진화된 인류가 생겨나고 퍼져나가길 바라. 그래서 여기를 콩고라고 이름 지은 거야." (본문 323p)
저자는 세상에는,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분노로 그 세상을 바꾸기 위해 벼랑 끝에서 한발을 더 내딛는 똑똑한 바보와, 똑똑한 바보의 뒤를 따라 그냥 따라다니는 바보(본문 363p), 이렇게 두 종류의 바보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두 종류의 바보가 부조리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허나 당대에는 실패하고 후대에 성공한다고 하니,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전대에 두 바보가 이루어놓은 것은 아닐런지. 생각해보니 남들은 YES를 외칠 때, 혼자 NO를 외치는 바보(?)들이 있었기에 세상은 계속 진화를 해왔다. 군사력으로 정권을 장악하려던 사람들 앞에서 목숨을 내걸고 민주주의를 외치던 이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 사회에 자유가 보장되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 가끔 뉴스를 통해서 현 사회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바꾸기를 외치는 이들이 있다.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어차피 이기지 못할 것을 왜 저러고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로 인해 후세는 좀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누구나 YES를 외친다면 세상은 절대 바뀔 수 없으므로.
튼, 저자는 두 종류의 바보로 부조리한 세상과 정면 돌파한 똑똑한 바보 '부'와 그 똑똑한 바보를 무작정 따르는 '담'을 만들어냈다. 개성이 강한 두 주인공의 이야기는 슬픈 현실에 씁쓸한 웃음을 제공한다.
이야기는 A.D. 10000에서 시작된다. 발굴단장이 아프리카 오지의 콩고 내륙으로 와서 발굴을 시작하게 된 것은 단 하나의 손가락뼈 때문이었고, 이 때문에 팔천년 전에나 존재했던 고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유전자를 연구하던 그는 거의 모든 현생 인류의 X염색체 군(群) 일부분에 현생 인류의 것과는 다른 진화 계통을 가진 유전자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팔천 년 전, 전 지구를 휩쓴 바이러스로 인해 대폭발이 일어난 후에 살아남은 인류, 그러니까 지금까지 스스로를 '로제타스톤'이라고 칭했던 집단 외에 또 다른 집단이 있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발굴단장은 이 손가락 뼈의 주인공에게 '끼어든 유전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이제 이야기는 A.D.2011년 손가락 뼈의 실마리를 찾아 떠난다. 취조실에서 담은 입을 굳게 다물었지만, 수사관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담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둘 떠올리기 시작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가 되어 있는 아이큐 78의 담, 그리고 새로 전학 온 아주 똑똑한 아이큐 158인 부가 짝이 되었다. 부의 엄마, 엄마의 엄마, 그 엄마의 엄마 그리고 그 엄마의 엄마 모두 사창가의 탄생과 함께해온 유서 깊은 매춘 집안의 딸 부는 엄마의 죽음으로 인해 이모와 살게 되지만, 창녀였던 이모는 부를 골동품상의 노인네에게 넘긴다. 부는 영감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담은 자신에게 걸맞는 콤비였다.
부는 자신을 구워해주지 않는 세상이 역겨웠고, 과학 잡지 책에서 인류의 진화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게 된다. 양쪽 새끼발가락의 발톱이 두 개로 갈라지고 있는 것은 진화의 징조였고, 현생 인류보다 조금 진화된 인류인 자신이 모든 인간들에게 미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그러나 부와 담의 콤비는 얼마 가지 못했고, 그 후 10년이 흐른 뒤에 두 사람은 재회를 하게 되고, 세상과 맞서는 싸움이 비로소 시작된다.
<<콩코, 콩고>>는 부와 담을 통해서 현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힘없는 자에게 세상은 너무도 불공평하다. 돈이면 죄도 없앨 수 있으며, 돈이면 조카도 버릴 수 있는 세상, 자본주의의 병폐가 낱낱이 드러난다. 힘들게 노동하지 않아도 엄청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지배자들에게 좋은 것을 더 많이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들은 경제체계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바이러스다. 물질적 풍요 시대에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한 인간의 자발적 노예노동이 바로 이 사회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물질만능주의와 자본주의의 병폐는 현 사회를 지속시키는 힘이었던 게다. 우리는 그 규칙을 지키며 스스로를 자발적 노예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어차피 현대 인류의 문명이란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고 또 노동에 대해 터무니없이 적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노예노동에 가까운 자발적 노동을 이끌어내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다고 믿고 있었다. 어쨌든 그 결과 인류가 탄생 이래 가장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물질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었다. (본문 319p)
이 작품에서 저자가 '행복바이러스'를 꺼내 든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심으로 인해 사회의 부정부패를 더욱 부추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무소유'와 '일상이 주는 소소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세상은 더 살만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행복 바이러스'는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름대로 결론을 내본다. 그렇다면 세상을 바꾸고 싶어했던 부, 그러나 무력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였던 그녀의 노력은 의미가 없었던 걸까?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독자의 몫일게다. 그저 세상이 만들어 놓은 규칙에 맞추어 살 것인지, 그 불합리한 '규칙'을 깰 것인지는 스스로 판단할 부분이 아닐런지.
이 작품은 작가 배상민의 첫 소설이라고 하는데, 구성이나 내용면에서 신인작가답지 않은 탄탄한 면모를 갖추고 있다. 부조리에 대한 부와 담의 활약이 조금은 허황된 듯한 느낌을 주지만 SF장르에서는 가능한 일이니, 구태어 짚고 넘어갈 필요도 없을 듯 싶다. A.D.10000년 A.D 2011년 그리고 과거로의 회상 등 시간적, 공간적 배경이 뒤엉켜있어 조금은 어수선한 느낌을 주지만, 나에게 <<콩고, 콩고>>는 저자 배상민 이름 석자를 기억해 둘만한 충분한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