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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집
폴 앙드뢰 지음, 정미애 옮김 / 솔출판사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건축가 폴 앙드뢰의 이름은 낯설어도, 프랑스 샤드를골공항과 오사카 해양박물관, 상하이 체육관 그리고 북경 국립대극장은 그리 낯선 이름이 아니다. 이 낯설지 않은 곳, 이 건축물들을 설계한 이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폴 앙드뢰이다.
<<내 마음의 집>>은 세계적 건축가 폴 앙드뢰의 자전적 소설이다. 건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내가 이 책을 꺼내든 것은 순전히 '얇다'는 것 때문이었다.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이지만, 이 정도 두께면 읽어볼만 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에서였다.
큰 맘 먹고 새로운 분야를 탐닉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읽은 이 책은 나의 예상을 완전히 깨고 말았다. 이 작품은 잠시 기억속에 묻어두었던 유년시절의 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독자들을 자신의 유년시절의 집으로 초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릴 적 살았던 집은 단독주택이었다. (본문 7p)
첫 구절로 인해, 나는 유년시절 내가 살았던 집을 잠시 떠올려보게 되었다. 지금 내가 가정을 꾸리며 살아가고 있는 이 곳은, 어린시절 내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진 동네이다. 아주 잠시잠깐도 이 곳을 떠나본 적이 없는 나에게 유년시절을 떠올리는 일은 너무도 쉬운일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어린시절의 '집'을 떠올려 본 적이 별로 없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살던 집 터에는 지금 슈퍼가 들어서있고, 중학생시절 살던 집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4~7살무렵까지 살았던 집은 전혀 다른 모습의 집이 들어서있지만, 한번도 아쉽거나 그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첫 구절로 인해 그리움이 물밀듯 밀려왔다.
그는 문이 닫혀 있는 유년 시절의 집 앞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자유를 갈망하게 하고, 권위에 반기를 들도록 이끌어주었던 집, 탈출구와 혼자 고독하게 지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 주었던 집에 대한 기억은 나이가 든 한참 뒤에 일이었다. 그 기억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왔고, 혹여 집 안으로 들어가 추억을 확인한다면 유년시절의 추억은 더 이상 떠올리기 힘들어졌을 것이다. 그가 발걸음을 돌렸던 그 순간의 아쉬움, 그리움 그리고 추억을 간직하고픈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은 여전히 닫혀 있고, 우리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집으로부터 멀어져가는 길을 뒤돌아보지 않고, 그 주위 풍경을 바라보지 않은 채 추억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본문 115p)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시절의 추억은 또 하나의 동반자가 된다.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또 다른 모습의 나를 볼 수 있으며, 지금의 나를 찾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기도 한다. 저자는 유년시절을 보냈던 집의 구조와 향기, 그리고 집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가족들의 모습을 하나둘 풀어냈다. 추억을 하나둘 정리하듯, 추억을 통해 지금의 자신을 찾아보듯 그렇게 나즈막한 목소리로 읋조리고 있다.
잔잔하게 유년시절을 써내려간 저자의 글은 잃어버린 과거를 찾도록 도와주었다. 오늘만큼은 되찾은 이 추억 속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고만 싶다.
이제 우리 자신만의 꿈과 기억의 집 안으로 들어가볼 시간이다. 잃어버린 과거의 시간을 비춰줄 램프에 불을 밝히고, 옛집에 잠들어 있는 아름다운 기억들을 불러내보자. 이 시간들이 따뜻한 위로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본문 126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