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아이 - 제1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48
이은용 지음, 이고은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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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아이는 내게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학원 하나 다니지 않으면서도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딸을 두고 주위 사람들은 부러운 듯 이야기했고, 딸 덕분에 나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갔다. 어린시절부터 고분고분한 큰 아이는 숙제해라, 책 읽어라, 라는 엄마의 말을 너무도 잘 들어왔기에 그 자랑스러움은 더했다. 그러나 초등5학년 무렵부터 시작된 사춘기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절정을 맞이했고, 쉽게 말해 엄마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게 되었다. 어린시절 실패를 경험했고, 선택의 오류를 경험했기에 내 아이만은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엄마 아빠가 원하는 바대로 커줬으면 하지만, 딸아이는 그런 부모의 마음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 하다. 그런 딸아이를 보면서 그동안 고분고분했던 어린시절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자식 농사 부모 뜻대로 안된다는 옛말을 절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부모가 읽는 <<열세 번째 아이>>는 너무도 불편하다. 특히나 요즘처럼 아이가 내가 원하는대로 커주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는 더더욱 불편한 책이다. 내 생각이 범하고 있는 오류를 너무도 잘 짚어내었기에, 내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부끄러움 등이 날 불편하게 했다. 나 역시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애써 외면하며, 이것이 내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 변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아이에 대한 욕심과 집착을 가진 부모인 나에게는 불편하지만 고마운 책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를 조정하고 싶어하는 리모콘을 선뜻 내려놓치 못하는 것에 대해 나는,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행어처럼 1등이 아니면, 1%가 아니면 안되는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탓으로 돌려본다. 그래야만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내 마음의 불편함을 덜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한국 최초의 맞춤형 아이로 태어나 유전공학의 새로운 장을 연 김선 박사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최연소 수상자이다. 그런 김선 박사를 따라다니는 타이틀은 첫 번째 아이다. 그리고 김선 박사의 옆집에 사는 주인공 시우는 열세 번째아이다. 이제 곧 시우는 진로가 결정 될 것이다. 그 진로는 시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시우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시우에 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통계를 내고,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해 주는 것으로 결정된다. 로봇 연구원인 엄마는 말했다.

'자신에게 맞는 일이 무엇인지 몰라서 고민하는 아이들에 비하면 얼마나 효율적인 일이니?' (본문 18p) 라고.

 

즐거운 감정이 입력된 감정 로봇 시아는 1년 전 시우의 동생으로 온 로봇이다. 그런 엄마는 이번에 인간이 갖고 있는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아이(엄마는 '로봇'이 아니라 '아이'라고 말했다.)인 레오를 데리고 왔다.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경험에 대한 기억이 필요하기 때문에 레오의 기억에는 시우가 있다. 2075-819. 2075년,819번째로 생산된 로봇. 이것이 바로 레오다.

시우는 레오가 불편하다. 시우가 자신의 어린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반면, 레오는 시우의 어린시절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은 시우의 기억이 아닌, 엄마의 기억일게다. 시우가 행복했었다, 라는 레오의 기억마저 엄마의 느낌이겠지. 혹은 거짓일지도.

 

"인간처럼 감정에 따라 신경 작용을 일으키며 감정을 표현하는 거지. 인간 같은 로봇은 유용하게 쓰일 거라고."

"그래서 겪지도 않은 경험의 기억을 입력시켰군."

"세상에 나오려면 뭐든 완벽해야 해. 사람이든, 기계든." (본문 56p)

 

레오의 등장은 시우에게 갈등을 주는 요인이 되었고, 레오와 같은 감정 로봇의 생산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다. 이 문제는 엄마의 친구이자 동료이면서 시우를 담당하는 민 박사와 엄마의 갈등을 초래하기도 했는데, 이를 계기로 시우에게도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한다.

 

시키는 대로 하면 돼, 라고 하는 엄마의 말은 연구실에 도착할 때까지 내 귀를 떠나지 않았다. 다른 때는 그냥 흘려들었던 말이다. 나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고 한 번도 엄마의 말을 어기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오늘따라 그 말은 머릿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혹시 민 박사 때문일까? (본문 81p)

 

열세 번째 아이 시우는 마치 로봇같다. 눈물을 흘릴 줄도 모르고,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도 할 줄 모른다. 비록 로봇이었지만 동생이었던 로봇 시아의 칩을 과감히 빼버리기도하고, 폭력을 당하는 같은 반 친구 차니를 도와줄 생각도 하지 못한다. 첫 번째 아이인 김선 박사의 자살로 시우는 감정의 변화를 갖게 되는데, 그동안 궁금해했던 '장시우 프로젝트'의 진실과 마주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한다.

 

"머리는 짙은 갈색으로 해 주세요. 눈동자도 같은 색이 좋겠네요....판단력이 뛰어나야 해요. 뭘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성격은 딱 질색이에요. 그리고 냉철한 게 좋겠어요. 아무에게나 쉽게 마음을 열거나 측은한 감정을 느끼지 않게 말이죠. 마음이 약해 빠져서 뭘 할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물론이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성적인 부분이 강화되면 감정적인 부분은 자연스럽게 억제되거든요. 본인 스스로 조절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만들어 드리죠." (본문 206p)

 

2075년 12월 - 성격 유전자 변이 발견. 감정 제어 물질 투여 결정. (본문 210p)

 

로봇의 반란이 시작되면서 엄마는 로봇의 감정을 조절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모든 감정 로봇에게 무료로 이 프로그램 칩을 삽입해 줄거라고 말했다. 시우에게 투여된 감정 제어 물질과 로봇에게 삽입되는 감정 조절 프로그램과는 무엇이 다를까.

'맞춤형 아이'와 '로봇'은 다를 바 없었다. 이제 시우는 '시키는 대로 해'가 아닌 스스로 선택하게 되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끼게 된다.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치열한 경쟁구조의 사회 속에서 아이들을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부모의 프로젝트에 따라 움직인다. 조기교육의 시작으로 원하지 않는 학원을 다녀야하고, 원하는 않는 진로를 결정해야한다. '놀이'를 통해서 대인관계를 배우고 감정을 배우던 예전과 달리, 교과서 속에 수록된 이론적인 감정을 배운다. 이 프로젝트는 요즘 우리 사회에 큰 문제를 낳게 되었다. 아이들은 명석한 두뇌를 가지게 되었지만, 기쁨이나 슬픔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면서 공감능력이 사라지고 있다. 이로 인해 청소년들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는데,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은 공감능력의 부족으로 미안함이나 죄책감마저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경쟁에서 이기고자하는 지나치게 높은 학구열과 과욕으로 사람다운 사람으로서가 아닌, 로봇다운 사람을 키워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

 

<<열세 번째 아이>>는 부모가 원하는 아이, 경쟁 사회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는 아이, 그로인해 명석하고 이성적이지만 감정을 모두 배제시킨 '맞춤형 아이'와 인간의 심리 치료를 위해 만들어낸 '감정 로봇'을 통해서 인간다운 삶과 행복 그리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SF 형식의 흥미로운 소재 속에 잔잔한 감동으로 녹아내고 있다.

자식에 대한, 일에 대한 과욕을 보여주는 시우의 엄마와 민박사와의 갈등 속에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었으며, 민선 박사의 자살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종종 접할 수 있는 성적과 진로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학생들을 대변하고 있어 그 또한 의미가 크다. 보다 인간다운 '나'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시우를 향한 연민의 정이 느껴졌는데, 시우 엄마에게서 나의 모습을 엿보게 되는 거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 작품은 경쟁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의지보다는 부모가 원하는, 사회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자신의 의지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 수 있도록 권유한다. 또한 이런 큰 줄기 속에서 인간의 감정이 사라져가는 요즘 사회에 대한 일침과 자녀에 대한 과욕과 지나친 학구열을 가진 부모에 대한 쓴소리도 잊지 않았다.

 

"물론 너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원하는 일이 있으면 얘기를 해 주면 좋겠구나. 맞춤형 아이라고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건 아니니까." (본문 138p)

"다른 사람이 아니라 네 인생이잖아. 이제부터 선택은 네가 해. 내 몫까지, 우리가 하고 싶었던 것까지. 넌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어. 넌 인간이고,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이 너한테 있으니까." (본문 260,261p)

 

시우 엄마의 말이 여전히 내 머릿 속에 맴돈다.

"스트레스는 왜 받은 거니? 그래. 너도 사람인데..........." (본문 110p)

나는 혹 내 아이를 말 잘 듣는 로봇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가? 진실을 대면하기가 무섭고 섬뜩하지만, 지금이 바로 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때인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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