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쌉싸름한 첫사랑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5
엘렌 위트링거 지음, 김율희 옮김 / 보물창고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첫사랑'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을까? 얼마전 읽은 보물창고의 <두근두근 첫사랑>을 떠올리며, 이 봄과 어울리는 첫사랑의 순수함과 풋풋함 등을 느낄 수 있을거라는 기대로 책을 펼쳤는데, 이야기는 생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

생각해보면, 첫사랑이 그다지 달콤하고 풋풋하지만은 않았던 거 같다. 이것이 사랑이라는 걸까? 라는 느낌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한 채 다가왔다가 아픈 이별을 선사하는 것이 바로 첫사랑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밝혀둔다.) 훗날 시간이 흐른 뒤 사랑이 무언가를 어렴풋이 알아갈 때 즈음, 그때 그 감정이 사랑이었구나~ 참 순수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에, 아픔보다는 달콤함과 풋풋함 등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시간이 지난 뒤의 먼 훗날 이야기일 뿐, 첫사랑을 경험하던 그 시기는 참 힘들고, 아팠던 거 같다. 나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감정에 대한 혼란스러움과 나와 다른 이성의 생각과 감정이 다툼 등 처음 접하는 감정들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 첫사랑을 통해 성숙해진다. 그것이 달콤했던 쌉싸름했던 간에.

 

나는 감정 결핍이다. 내 기억으로는 쭉 그래 왔다. 그래서 사람들이 감정에 호소해도 나는 끄덕없다. 어쩌면 나는 감정이 전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본문 9p)

 

<<달콤쌉싸름한 첫사랑>>은 스스로 감정 결핍이라 생각하는 존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이쯤되면, 감정이 메마른 존이 사랑을 통해서 감정을 느끼게 되는 내용을 담은 이야기라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단정지을 수 있는 책이 결코 아니다.

첫사랑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는 달달함에 대한 기대를 가차없이 무너뜨리는 아쉬움을 주는 책이지만, 성찰을 통한 성장이 감정 결핍을 가진 주인공을 통해 치유해가는 과정으로 잘 드러나있다.

물론 이 과정에 '사랑'이 큰 힘을 주었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로맨스 소설하고는 극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달콤함이 배제된 첫사랑 이야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내가 한창 성장 중인 딸을 둔 부모 입장에 서 있기 때문에 존이 감정 결핍을 갖게 된 원인, 이혼한 부모에 대한 존의 감정에 더 치중하여 책을 읽게 된다.

존이 가진 분노에 공감해보고, 속상해하기도 하며, 존의 엄마가 가진 상실감을 이해해보기도 하는 한편, 레즈비언임을 당당한 밝힌 마리솔의 부모가 보이는 서로 다른 반응을 보며 나라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부모의 입장에서 읽는 성장소설은 이렇게 등장인물을 통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그들을 통한 반성으로 내 아이를 인정할 수 있는 방편이 된다. 그렇게해서 내린 결론은 누구에게나 '사랑'은 명쾌한 해답이 된다는 것이다.

 

주인공 존과 마리솔은 1인 잡지를 만들고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수록하고 있는데 글을 쓰다보면 자신에게 좀더 솔직해지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감정 결핍인 존은 그 나이에 느끼게 되는 이성에 대한 감정을 전혀 갖지 못하는데, 마라솔의 글을 읽은 뒤 그녀에게 관심을 갖게 된다. 마라솔이 레즈비언임을 알면서도 존은 그녀에게 끌리게 되는데, 그동안 진실되지 못했던 존은 마라솔을 통해서 진심을 드러내는 법을 배우고, 마라솔과의 진심어린 우정을 나누게 된다. 비록 처음 느낀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픔으로 다가왔지만, 첫사랑을 통해서 존은 감정을 채우게 되고, 부모에 대한 분노를 치유하게 된다.

반면 레즈비언임을 밝힌 마라솔은 부모로부터 탈출하고 싶어하고, 레즈비언을 선언 이후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친구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어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지만, 레즈비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좋아해주는 존을 통해서 자신의 마음을 열게 된다.

 

또한, 이혼 이후 자신을 만지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엄마에게 심한 상처를 받은 존은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담은 엄마가 읽지 않을 편지를 쓰게 된다. 엄마는 이 편지를 읽게 되고, 존이 가진 진실을 알게 되면서 이혼으로 얽매었던 자신의 틀에서 나오게 된다.

이를 통해 갈등의 해소, 상처 치유의 가장 근본적인 치유는 바로 '소통'임을 다시 한번 인지하게 된다.

 

이제 감히 말할래요. 우리가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를요. 그러니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엄마는 나를 만지는 걸 견딜 수 없어 했죠. 내가 엄마를 만지는 것도. 우연히 손이 스치는 것도, 어깨가 부딪히는 것도, 식탁 밑에서 무릎이 닿는 것도.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그런 경험을 하지 않죠. 보통의 엄마들은 열이 나는 이마에 손을 엊어주고, 간지럼 태우며 놀아주고, 잘 자라고 키스해 줘요. 몇 년 동안 엄마는 나를 위해 변명거리를 만들었고, 엄마가 아빠를 미워하는 만큼 나를 미워하지는 않는다고 납득하려 애썼어요............그래서 나는 이혼의 모든 고통을 짊어졌고, 에전에 두 분에게 받았던 모든 사랑과 혼자 남겨졌다는 모든 두려움을 벽 뒤로 숨겨 버렸어요............나는 감정 결핍이에요. 그래서 엄마를 증오해요. (본문 158p)

 

존은 힘든 사랑을 했지만, 그의 삶은 더 이상 힘들지 않으리라. 이제 존은 자신에게 다가올 어떤 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고, 이제 겁을 내기보다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이야기가 끝나고 수록된 밥 프랑케의 Hard Love (힘든 사랑)의 노랫말은 존이 겪은 아픈 사랑의 의미를 잘 표현해주고 있는 듯 하다.

 

그래 힘든 사랑이야, 하지만 그래도 사랑이야

그저 그런 환상은 아니지만 게임도 아니야.

기적이라 이름 붙여도 좋은 것은 이것뿐.

우리의 인생을 치료해 주는 사랑은 힘든 사랑이니까. (본문 中)

 

존은 비록 이루어지지 못할 힘든 사랑을 했지만, 그동안 감정 결핍이라 생각하며 스스로를 억눌러왔던 감정들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한층 성장하게 된다. 이 책은 그렇게 존이 글을 쓰면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일어서는 과정이 잔잔하게 묘사되었다.

이처럼 글쓰기는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데 좋은 방법이 된다. 이에 사춘기 딸에게 글쓰기를 권해본다. 편지, 일기 등 어떤 방식이든 진실과 대면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중요할 듯 싶다. 그 과정을 통해서 진실과 마주하는 일, 그것이 바로 성장의 발판이 아닐까.

 

"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고 있잖아. 아빠한테 편지를 써. 꼭 보내라는 건 아니고, 그냥 쓰라고.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써 내려가는 거야. 나쁜 말이든 좋은 말이든."

"왜 그래야 되는데?"
"..........편지에서 엄마한테 말을 걸어 봤더니, 진짜처럼 느껴지고 화가 났어. 또 너도 알겠지만...엄마를 용서하게 됐어." (
본문132p)

 

존과 마라솔은 서로 다른 고민, 서로 다른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글쓰기라는 공통점 외에도 진실과의 대면,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사랑의 힘, 소통의 힘 그리고 글쓰기의 힘이 가진 마법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깨달음은 두 주인공을 통해 완성되어가는 느낌이다. 아픈 사랑이었지만 두 주인공의 상처를 치유했던 힘든 사랑을 보여주는 <<달콤쌉싸름한 첫사랑>>은 훗날 두 주인공의 인생을 채워준 첫사랑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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