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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리 편지 ㅣ 창비아동문고 229
배유안 지음, 홍선주 그림 / 창비 / 2006년 9월
평점 :
[초정리 편지]를 읽으면서 [책과 노니는 집] 동화책을 떠올렸다. 역사 속에 창작을 가미하여, 즐거운 이야기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역사가 주는 의미를 전달하고자 함이 닮아서 일게다.
[책과 노니는 집]이 필사쟁이 장이를 통해서 천주교가 탄압받던 조선시대의 역사적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초정리 편지]는 석공이 되고자하는 장운이를 통해서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반포한 시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어머니의 죽음, 석공이던 아버지의 병환으로 장운이와 누나 덕이는 나뭇짐과 품팔이로 끼니를 해결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간 장운이는 토끼를 쫓다가 눈이 빨갛고 눈꺼풀이 부어 있는 근심이 많은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 만남을 계기로 장운이는 할아버지에게 글자를 배우게 되고, 엄마의 약재값을 갚지못해 남의 집 종으로 일을하러 간 덕이 누나와 편지를 주고 받게 된다.
거북같이 생긴 생긴 돌을 발견하면서 장운이는 뛰어난 석공이였던 아버지에게 돌 깍는 법을 배우게 되고, 장운이가 돌 만지는 솜씨가 있음을 간파한 석공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석공의 길로 들어선다.
장운이는 누이와 틈틈이 편지를 주고 받았으며, 아저씨들에게 배운 기술을 잊지 않기 위해 할아버지에게 배운 글로 적어 둔다.
근심 많은 할아버지에게 배운 글자는 말로 하는 건 뭐든지 쓸 수 있어 배우기도 쉬웠다.
쉬운 글을 쓰는 장운을 보면서 석공 아저씨들은 장운에게 글자를 배우게 되고, 장운이는 할아버지께서 예전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글자를 가르쳐주라던 당부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임금께서 온 백성이 다 쓸 수 있도록 만든 새글자가 반포되었고, 장운은 중전 마마의 명복을 비는 절을 짓는 일로 궁궐에 가게 된다.
초정에서 할아버지가 남겨 준 편지를 간직하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될 거라는 기대감을 갖던 장운은 궁궐에서 임금님과 마주친 후, 자신에게 글을 가르쳐 준 할아버지가 임금님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면서 가졌을 근심이 장운을 통해서 눈이 빨갛고 근심이 많은 할아버지로 창작되었다. 훈민정음 반포로 시끄러웠던 시대의 정황을 느낄 수 있었으며, 노비였던 장운을 통해서 그 시대 신분제도가 가지고 있는 폐해 또한 엿볼 수 있었다. 또한 장운이 석공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통해서 독자들은 꿈을 향한 도전과 희망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훈민정음]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더욱 깊이 되새길 수 있는 책은 아니였나 생각해 본다.
"할아버지, 무슨 말이든 다 쓸 수가 있습니다. 정말 신기합니다."
"허허, 그래. 말로 하는 건 뭐든 다 쓸 수 있지." (본문 32p)
"이제 누이도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제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냐? 누이도 쉽게 익히더냐?"
"예, 저하고 마당에서 글자 놀이를 합니다. 그런데 누이는 할아버지가 부자이고 양반인데도 근심이 있는 게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허허, 너와 네 누이가 내 근심을 많이 덜어 주었느니라." (본문 35p)
신조어와 은어 등으로 점점 퇴색되어가는 한글의 의미가 [초정리 편지]를 통해서 다시금 되살아 나기를 기대해본다.
신분제도, 훈민정음 반포로 힘들었던 그 시대의 모습은 다소 무거운 주제였을지도 모르나, 장운과 임금의 아름다운 만남을 통해서 이야기는 예쁘게 담겨졌다. 읽는 내내 즐거울 수 있었던 것은, 말로 하는 건 뭐든지 쓸 수 있는 훈민정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일게다.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리뷰를 쓰면서 늘 사용해왔던 ’한글’에 대한 소중함과 훈민정음 창제를 통한 세종대왕의 백성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깨달아 본다.
(사진출처: ’초정리 편지’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