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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 제1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8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8년 3월
평점 :
이 책을 이제야 일게 된 것에 대해 어찌나 땅을 치며 후회했는지 모른다. 몇 해전, 큰 인기를 끌며 서점가를 휩쓸었던 <<완득이>>를 읽어보겠다, 마음먹었지만 왠일인지 내게는 쉽게 읽을 기회가 없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2011년 충무로에서 다시 한번 <완득이>가 핵폭풍을 몰고 나타났다. 사춘기 딸아이가 영화를 보러 가자며 졸랐고 나 역시도 너무너무 보고 싶은 영화였지만, 나는 왠지 소설을 먼저 읽어보고 싶었다.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온 딸래미는 재미있었다며 하루종일 완득이 이야기로 정신을 쏙 빼놓았는데, 영화를 먼저 볼 걸 그랬나, 싶은 후회를 하긴 했지만, 소설 <<완득이>>를 다 읽은 지금, 소설을 먼저 읽어보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영화도 꼭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기 하지만.
정말 오랜만에 내 스타일에 딱 맞는 작품을 만났다. 재미있고 유쾌하고 웃을 수 있는 작품이지만 그 속에 담겨진 의미는 결코 웃기지 않고 진지한 작품,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 이 작품은 정말 제대로였다.
읽으면서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른다. 그러면서도 많은 부분에 대해 생각하게 작품이었다. 나 아무래도, 완득이와 똥주에게 푹 빠진 듯 싶다.
'똥주한테 헌금 얼마나 받아먹으셨어요. 나도 나중에 돈 벌면 그만큼 댄다니까요. 그러니까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 벼락 맞아 죽게 하든가, 자동차에 치여 죽게 하든가. 일주일 내내 남 괴롭히고, 일요일 날 여기 와서 시도하면 다 용서해주는 거예요? 뭐가 그래요? 만약에 교회 룰이 그렇다면 당장 바꾸세요. 그거 틀린 거예요. 이번 주에 안 죽여주면 나 또 옵니다. 거룩하시고 전능하신 하느남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본문 9p)
시작부터 이렇게 웃겨주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똥주는 완득이의 담임으로 조폭 스승이다. 자기가 조폭으로 키운 건 아닌데 제자들이 알아서 조폭이 되었며 스스로 조폭 스승이라 말하는 똥주는 학생들에게 공부하지 말라고 하지를 않나, 학생에게 나온 수급품을 얻어 먹지를 않나, 한마디로 정말 대책이 안선다. 완득이가 이사한 옥탑방 앞 건물 옥탑방에 이런 똥주가 살고 있었으니, 완득이가 하느님에게 이런 황당한 기도를 한건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겠다.
완득이의 아버지는 흔히 말하는 난쟁이로, 아주 작은 키로 카바레에서 춤을 추었는데 늘 사람들의 비웃음의 대상이 되었다. 아버지를 놀리는 말을 하면 주먹이 먼저 나가는 완득이는 사람들 속에서 멀리 떨어져있었다.
그런 똥주가 어느 날, 완득이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니 어머님, 베트남 분이더라?" (본문 41p)
어머니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완득이에게 똥주는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고, 완득이도 그 느낌이 싫지 않았나보다.
어머니라는 게 도대체 뭔데 이렇게 가슴이 뛰는지 모르겠다. 한 번도 궁금한 적 없었는데 왜 갑자기 궁금하게 만드는 건지. 사기결혼 당한 거 눈치채고 도망쳤으면 자기네 나라로 빨리 갈 것이지. 나는 어머니라는 말 할 줄 모르는데....(본문 76,77p)
그런데, 그렇게 죽이고 싶도록 미운 똥주가 경찰서에 잡혀들어 가게 되고 똥주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완득이는 죽여달라는 기도를 잠시 보류시킨다. 완득이는 똥주가 다니는 교회(똥주를 죽여달라고 기도하던 교회)의 전도사를 통해 킥복싱을 배우게 되고, 처음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시작하게 된다. 생전처음으로.
대학을 가서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치지만, 자신을 응원해주는 어머니와 처음 사귀게 된 여자친구로 완득이는 사는 것이 즐거워진다.
개천에 얼음이 얼었다. 그래서 그런지 자꾸 웃음이 났다. 아니 무슨 물도 별로 없는 개천이 얼고 그래. 아이참, 저거 얼어도 썰매 못 타잖아. 아이고 배야, 개천이 자꾸 나를 웃겼다. 계집애가 겁도 없지 무슨 종군기자야, 하하하. 아우, 왜 오늘따라 종군기자라는 말이 다 옷겨. 오다가 꽃 냄새 나는 껌을 씹었나? 이히히 (본문 214p)
너무 유쾌하다. 읽는내내 몇 번을 웃었는지 모른다. 기분이 좋아 괜히 웃는 완득이가 개천에 언 얼음을 보고 헤벌쭉 웃는 것처럼, 한줄 한줄의 문구가 너무 재미있어 낄낄낄, 이히히히 웃게된다. 그런데 왠지모르게 그 안에 따뜻함이 배어난다.
세상 뒤에 숨어있던 아이가 세상 밖으로 나오려는 몸부림이, 하고 싶은 것을 찾아 꿈을 키우는 모습이, 여자친구가 생겨 풋풋한 사랑을 하는 모습이, 엄마에 대한 사랑을 알게 되고, 엄마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완득이의 모습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완득이가 조금씩 변화되는 모습이 너무도 따뜻하게 다가온다.
완득이 뿐만 아니다. 조폭 스승 똥주는 처음에는 밉상이더니 점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깊은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니, 이런 교사가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사람이다. 걸죽한 욕을 쉴새없이 내뱉고, 성격도 드럽지만(?) 왠지 인간적이다.
내가 가진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숨기게 급급했던 완득이가 세상으로 나오고 있다. 잘 알지도 못했던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사랑을 주는 똥주 선생과 어머니가 이끌어주는 손을 잡고 한발 한발 내딛고 있다.
"완득이 운동하게 놔두세요."
"완득이마저 세상 뒤에 숨어 살게 할 생각 없어."
"여태 세상 뒤에 숨어 있던 완득이가, 운동하면서 밖으로 나오고 있잖아요. 자기가 하고 싶은 거, 제일 잘 할 수 있는 거, 하게 놔두세요." (본문 171p)
<<완득이>>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친다. 똥주도 그러하지만, 밤마다 완득이를 향해 소리치는 똥주에게 욕지꺼리를 하는 이웃 아저씨도, 모두 아이처럼 대하는 아버지를 어른으로 대하는 말더듬이 삼촌, 외국인근로자를 부려먹는 똥주의 아버지, 조폭될 놈이라고 구박하는 완득이 관장님도 모두 개성넘치고 리드미컬하다.
모두 재미있는 캐릭터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네 이웃들이 가진 아픔이 녹아져있다. 그래서 웃기면서도 뭉클하다.
가볍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인데, 따뜻한 감동과 눈물을 함께 준다.
성장소설에서 늘 보여주는 '희망''꿈''소통''가족' 등의 주제이지만, 전혀 식상하지 않는 내용으로 다가왔다. 결말을 예상할 수 있을만큼 뻔했고, 식상한 주제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은 너무도 컸다.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소설을 만난 느낌이다.
아무래도 한동안 <<완득이>>에서 빠져나오기 힘들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