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은행
캐럴린 코먼 지음, 롭 셰퍼슨 그림, 고수미 옮김 / 미래엔아이세움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간직하고 있다. 가끔은 비슷한 상황에서 예전의 일들을 기억해내며 추억하기도 하고, 새로운 기억들로 인해 옛 기억들은 조금씩 희미해지기도 한다. 나쁜 기억은 트라우마를 남기기도 하지만, 좋은 기억은 삶을 채워주기도 한다.

좋은 기억만을 간직하고 산다면 더없이 행복하겠지만, 살아가면서 늘 좋은 일들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나쁜 기억으로 우울해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나쁜 기억과의 대면은 상처를 극복하는데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스테디셀러인 <유진과 유진>을 보면, 똑같이 나쁜 경험을 겪은 두 유진이 서로 다른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엄마에 의해 나쁜 경험을 모두 잊어버리고 살던 작은 유진과 나쁜 경험을 기억하면서 상처를 치유해가는 큰 유진의 삶은 서로 달랐다.

이 작품에서는 나쁜 경험에 관한 기억에 대한 인상적인 글귀가 수록되어 있다.

"니가 그 일을 기억 못해서, 느이 식구들은 영영 그러길 바랬지만 나는 내내 걱정이었다. 늙어서 노망난 거솓 아닌데 파릇파릇하니 자라는 것이 지가 겪은 일을 기억 못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단다. 다 알고, 그러구선 이겨내야지. 나무의 옹이가 뭐더냐? 몸뚱이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여. 그런 옹이를 가슴에 안구 사는 한이 있어두 다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유진과 유진' 본문 162p)

 

<<기억 은행>>은 바로 우리의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판타지로 담아낸 작품이다. 내가 <유진과 유진>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 것은 바로 이 작품에서 주인공 호프가 부모에 의해 기억을 잊어버릴 수 밖에 없었던 상황 때문이었으며, 상처를 잊기보다는 상처와 대면하고 기억하는 것이 오히려 그 상처를 극복하는데 효과적이라는 점이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는 너무 당황스럽게 시작되었다. 웃지 말라고 수도 없이 말한 것을 듣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빠와 엄마는 동생 허니를 차에게 내리라고 한 뒤 떠났다. 허니는 애원했지만, 아빠와 엄마는 "잊어버리라니까." (본문 24p) 이란 말로 허니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허니는 사라졌고, 호프는 심한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쯤에서 포기해야만 했다.

이 자포자기는 호프의 생활을 놀랍도록 변화시켰는데, 호프는 하루 종일 차고에 있는 간이침대에 누워 자고 또 잤다.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지만 꿈속에서는 허니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호프는 모든 꿈을 다 기억하지 못했고, 꿈속에서 보았던 허니의 여운으로 계속 꿈속으로만 빠져들었다.

그러다 허니는 택배 회사, 오블레라타와 아들들에 의해 '전세기은'으로 배달된다. 전세기은은 전 세계 기억 은행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사람의 기억이 보관된 곳인데, 허니는 은행에 예치한 기억의 잔액 부족 문제로 이곳에 온 것이다. 그러나 다행이 꿈을 꾸는 데 챔피언인 허니는 바이올렛과 함께 꿈의 궁전에서 지내게 된다. 그리고 기억을 통해서 허니를 찾을 수 있음을 알게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은 기억을 과대평가할 때가 많아, 그렇지 않니? 하지만 기억은 꿈에 영양분을 주고 기억과 꿈은 같이 작용해. 기억이 없다면 우린 꿈을 깨어 있는 세계로 가져오지 못할 거야. 그건 정말 큰 손실이지! 그래서 기억과 꿈 둘 다 중요하단다." (본문 192p)

 

호프는 이 곳에서 꿈을 통해서, 그리고 첫 기억과 허니에 대한 기억을 하나둘 떠올리게 되었고 기억의 잔고도 채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허니에게 필요할 때 부를 수 있도록 호루라기를 주었다는 중요한 부분을 생각해낼 수 있었다.

허나 전세기은은 역사를 없애기 위해 전세기은을 혼란스럽게 만들려는 새로운 시작 패거리인 '새시패'에 의해 위험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곧 새로운 기억이 생겨날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결국 허니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상처를 자포자기하듯 잃어버렸던 호프가 전세기은에서 사람들에 의해 기억을 끄집어내고 상처를 극복해나가면서 호프를 힘들게 했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었다.

 

 

 

얼마전 모 시트콤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인해 107개의 트라우마를 갖게 된 한 남자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재연한 적이 있다. 그는 어린시절의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기에 어른이 되어서도 그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는데, 웃자고 만든 재미있는 이야기였지만 당신의 몇 개의 공포증을 가지고 있냐는 마지막 문구가 의미심장하게 들렸다. 기억과의 대면은 상처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만약 호프가 허니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지 못했다면 결말은 아마 끔찍하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기억 은행>>은 상당히 많은 부분을 삽화로 할애하고 있는데, 그 삽화는 호프의 꿈과 사라진 허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이야기와 삽화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고 있다.

 

<<기억 은행>>은 기억을 통한 상처 치유라는 측면과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두 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하루 쫓기듯 살아가는 요즘 바쁜 현대인들의 기억 창고는 지금 잔고 부족은 아닐까?

기억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 중의 하나이다. 기억 속에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꿈도 있으며, 친구도 있고,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 그 기억들은 지치고 힘든 지금에 활력소가 되어주기도 한다. 가끔은 기억을 끄집어내어보면 어떨까.

 

(사진출처: '기억 은행' 본문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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