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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아버님께 ㅣ 진경문고 1
안소영 지음, 이승민 그림 / 보림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잔잔하지만 깊이가 있는 책이다. 다산 정약용에 대한 글은 역사서나 위인전을 통해서 많이 접해왔다. 그만큼 정약용은 조선을 대표하는 문신이며, 정조와 함께 조선의 문화를 꽃피웠던 인물이다. 서양의 학문인 서학에 매료되어 한때 공부를 하긴 했지만, 유교 사상과는 거리가 있었으며, 바쁜 업무로 인해 서학은 자연스레 그와 멀어져 있었다. 그러나 왕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은 서인들의 목표물이 되었고, 그는 18년이라는 오랜 유배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배지에서 방대한 저서를 남긴 그는 지금까지도 칭송받는 인물로 남아있다. 이렇듯 우리는 정약용이 남긴 업적과 저서를 통해서 그에 대한 많은 부분을 알고 있지만, 아버지로서의 그의 모습이나 몰락한 집안에 대해서는 생소하다.
정약용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는 <농가월령가>를 지은 인물로 유배중이었던 정약용을 도와 <주역심전>을 정리하여 완성시킨 인물이기도 한데, <<다산의 아버님께>>는 정학유를 통해서 바라보는 아버지 정약용과 그의 유배생활 그리고 조선시대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1801년 그해 겨울, 한강 동작 나루에서 헤어진 아버지를 뵙기 위해 7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아들의 심정을 담아내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열여섯 철부지 소년이었던 그 시절, 이제는 상투 머리에 갓 쓴 도포 차림의 스물 셋이 된 그는 그 시절 유배지를 떠난 아버지의 길을 쫓아가고 있다. 아버지를 찾아 유배지를 가는 동안 서학을 공부했던 집안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1791년 정약용의 외사촌형님이 사형을 당한 뒤로 둘째아버님과 아버님은 서학을 멀리 했으나, 천 사람을 죽이고도 정약용을 죽이지 않으면, 아무도 죽이지 않은 것과 같다 (본문 61p)며 아버지를 제거하려고 애쓰던 무리들로 인해 그 어떤 증거도 드러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학은 끝내 아버지를 옭매게 되었다. 아버지와 헤어질 준비조차 할 수 없었던 시간, 먹고 살아갈 일도 걱정이었던 그 시절과 무기력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다.
내가 밤낮으로 빌고 바라는 것은 오직 학유가 열심히 독서하는 일뿐이다. 그리하여 선비다운 마음을 갖게 된다면 내가 무슨 여한이 있겠느냐. 부디 이 아비의 애절한 마음을 저버리지 말거라. (본문 57p)
학유는 이렇게 아버지를 찾아뵈러 가는 길 속에서 끔직한 지난달을 딛고 일어섰으며, 유배중인 아버지와 함께 2년여 시간을 보내게 된다. 오랜 사색과 탐구를 통해 근원까지 더듬어 올라간(본문 77p) 아버지의 강의는 가슴을 두드리며다가오는 울림이 있었으며, 유배기간을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스로의 것을 채워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학유 자신도 스스로를 채워나간다.
하늘은 사람에게 시련을 내리기 전, 그의 삶에서 빛나는 시간도 아울러 마련해놓는다. 단지 사람이, 그 순간이 소중하고 빛나는 시간이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아채지 못할 뿐. (본문 107p)
유배지에서 아버지와의 2년여 시간을 보내고 다시 돌아와 아버지의 유배를 풀기 위해 노력했던 일, 절박했던 생활 등 힘겨운 시간들이 잔잔하고도 깊이있게 전해진다. 아버지를 뵙고 돌아온 뒤 10여 년이 흐른 뒤에야 아버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세상과 사람을 똑바로 보게 된 학유는 아버님께 한 통의 편지를 보내게 된다. 아버지는 오랜 유배 생활에서 18년만에 고향에 다시 돌아오게 되고, 학문에 몰두하다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 이제 학유는 회갑을 맞이하였고, 아버지를 다시금 생각한다.
"좋을 때는 웃는 벗들은 많이 만날 수 있었을 것이나,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저의 처지를 이해하는 초당의 벗들은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려움과 결핍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무궁한 사색과 그에게서 비롯된 뛰어난 창조물을 낳는다는 것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본문 195p)
힘겨웠던 시간이었지만 자신을 단단히 잡아주었던 아버지가 있었기에 학유는 성장한다. 이 책은 그 시대의 모습과 불우했던 정약용의 일생 속에서 다소 힘들었던 학유가 아버지를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되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잘 드러나있다.
후세에서 정약용은 뛰어난 인물로 손꼽고 있지만, 그의 삶은 그다지 평탄하지 않았으며 그의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그들의 모습이나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스스로를 단단히 채워나갔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힘겨웠던 시간 속에서도 가족을 사랑하고, 걱정하던 정약용의 모습이 온전히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곳곳에 수록된 정약용의 글귀는 그 시절을 살아냈던 정약용의 안타까움과 애절함이 드러나 있어 이야기와 잘 어우러진 듯 싶다. 그의 업적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을 통해서도 우리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음을 그의 아들 정학유를 통해서 알게 된 셈이다.
(사진출처: '다산의 아버님께' 본문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