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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서 만난 시와 백과사전 ㅣ 지식 보물창고 4
윤동주 외 지음, 마술연필 엮음, 손호경 그림 / 보물창고 / 2012년 3월
출근길,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해 조금씩 떨어지는 빗방울을 머리로, 얼굴로 맞으며 걸었다. 비 오는 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오늘따라 유난히 이 비가 반가운 것은 봄이 오고 있다고 속삭이는 듯 보슬보슬 내렸기 때문이었으리라. 매섭고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어느 새 봄이 오고 있다. 높은 빌딩과 바삐 달리는 자동차로 계절이 오고가는 소리와 향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서둘러 보내곤 했는데, 오늘 유난히 계절의 변화에 눈과 귀를 쫑긋 세우게 되었다. 버스에서 읽다가 가방에 넣어둔 <<자연에서 만난 시와 백과사전>> 덕분인가보다.
간혹 담벼락 좁은 틈새에 아무도 몰래 조용히 피어있는 노란 민들레를 보면 아이들은 너무도 신기해한다. 비 오는 날 등굣길, 꿈틀꿈틀 기어가는 지렁이 주위에는 으레 아이들이 몰려있다. 우리 어린시절에는 너무도 흔하디 흔한 자연의 모습이 이제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구경거리가 되고 있나보다. 아이들은 자연의 향기를 맡고,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자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속에서 감성을 키우고, 자연과의 조화를 배우며 자라야 할텐데, 삭막한 시멘트투성이의 도시에 사는 아이들에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대부분의 자연을 담은 백과사전은 풍부한 사진자료와 폭넓은 지식을 담아내고 있다. 자연에 대해 이처럼 완벽할 수 있는 책은 결코 없으리라. 그러나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그 감성을 배우기는 역부족이다. 왠지 작디작은 글씨가 빼곡히 써 있는 걸 보면 더 삭막해지는 기분이다.
그런데 <<자연에서 만난 시와 백과사전>> 요 책 구성이 참 특이하다. 어떻게 백과사전 속에 '시'를 담아낼 생각을 했을까?
자연을 보며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이 시 속에 담뿍 담겨져 있다. 백과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는 '마음'을 여기서는 찾아 볼 수 있다. 오늘 비를 맞으며 봄 기운을 느낀 것은 자연을 담은 그 시 속에 담겨진 그 마음 때문이었나보다.
봄에는 온통 -손동연-
실비 오고,
실바람 불고,
실햇살 내리고...
봄에는
온통 가느다란 것뿐이야.
새싹,
제비꽃,
보드라운 나비 날개........
고 작고 여린 것들
다치면
큰일일 테니 말이야.
오늘 맞은 실비는 이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이제 곧 움추린 몸을 활짝 피고 일어난 새싹, 제비꽃, 보드라운 나비 날개가 다치지 말라고 조용히 살짝 내린 비였나보다. 오늘 날씨에 제법 잘 어울리는 시라 담아본다. 이 시 속에는 '나비 박사' 석주명 선생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리고 전국 방방곡곡을 뛰어다니며 지금까지 알려진 251종의 우리 나비 중 246종을 혼자서 밝혀낸 우리 나비 연구의 개척자인 석주명 선생이 찾은 '봄처녀나비'를 소개한다.
이 책에는 총 12편의 예쁘고 아름다운 시가 수록되어 있고, 총 12종류의 자연을 소개하고 있다. 물총새, 봄처녀나비, 민들레, 은방울꽃, 담쟁이덩굴, 달팽이, 엉컹퀴, 올빼미, 괭이갈매기, 봉선화, 까치 그리고 참새 등이 예쁜 삽화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문득 여기에 수록된 자연들 중에는 높은 빌딩으로 둘러싸인 이 도시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눈여겨 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눈길이 닿지 않으면, 아무리 가까이 있어도 자연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랍니다. 우리가 마음에 담지 않으면, 아주 멀리까지 가서 멋진 풍경을 보고 오고도 금세 잊어버리는 것처럼 말이에요.
우리가 언제든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때로는 손끝으로 만져 보며 생생히 느낄 수 있는 자연이 바로 우리 곁에 있어요. (머리글 中)
과학의 발달로 자연이 훼손되고 있음에 안타까워하고, 환경 보호에 다같이 참여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자연을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시인이 자연에서 시를 만나고, 작가가 자연을 담은 이야기를 쓰고, 생물학자가 자연을 연구(머리글 中)하여 담은, 자연을 만나는 색다른 느낌을 전해주는 <<자연에서 만난 시와 백과사전>>을 통해서 우리 곁에 있는 자연을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겠다.
오늘 시를 통해서 봄을 느끼고, 이야기를 통해서 자연을 만나고, 백과사전을 통해서 자연을 알아가는 뜻깊은 시간을 가져보았다. 지금까지 자연을 보지도, 느끼지도 못했던 마음이 이 책을 통해서 활짝 열리는 기분이다.
(사진출처: '자연에서 만난 시와 백과사전' 본문,표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