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너의 존재감 르네상스 청소년 소설
박수현 지음 / 르네상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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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회사업무에 시달리고 스트레스가 극을 달할 때, 주절주절 써내려간 블로그에 이웃 블로거들의 '정말 힘드시겠어요''속상하시겠어요'라는 짧은 댓글 하나에 왠지 위로받는 느낌이 든다.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준 것이, 내 생각에 공감해주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그 이유가 뭘까? 누군가 내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여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위안이 된다는 점을, 그 이유를 나는 <<열여덟, 너의 존재감>>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쿨샘 댓글의 마력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힘들다. 내 경우를 따져 보면, 숨이 막혀 곧 죽을 것 같을 때 가는 빨대를 통해 들여온 한줄기 공기 같다고 할까. 댓글을 읽으면 소통하는 느낌,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 하찮은 얘기를 들어 주고, 고개를 끄덕여 주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위안이었다. (본문 65p)

 

너무도 재미있게 읽은 책이었다. 반 아이들이 쿨샘을 좋아하는 것처럼, 나 역시도 쿨샘의 매력에 푹 빠졌다. 쿨샘은 그저 소설 속에나 등장하는 멋지게 다듬어진 캐릭터라고 생각했는데, 쿨샘은 작가의 사촌 여동생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장혜진 선생님을 모델로 했다고하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세상에 이런 선생님이 존재하는구나!라는 놀라움이리라. 더군다나 책 속에 등장하는 '마음일기' 역시 장혜진 선생님이 실제로 교육 현장에서 만난 '아픈 아이'를 위해 고안해 낸 것이라고 하니, 그 놀라움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였기에 더 감동적으로, 더 깊이있게 다가온 듯 하다. 중요한 사실은 나 역시도 쿨샘처럼 방황하는 내 아이의 마음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는 점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존재감있는 사람이고 싶어한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의 아이들은 '엄마의 사랑하는 누구''아빠의 사랑하는 누구''제일 친한 친구 누구' 등등이고 싶어한다.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가족과 선생님 그리고 친구가 알아주었으면 싶은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때 아이들은 상처를 입는다. 존재감이란 누구로부터 관심을 받고, 사랑받고 싶어하는 애정욕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 존재감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세 아이가 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이년'이라는 말로 친근하게 다가온 쿨샘이 있다.

아빠 엄마의 젊은 시절의 순정으로 태어났지만,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된 순정은 엄마 아빠의 부재를 느끼기는 했지만 할머니의 관심과 사랑으로 행복하게 지냈다. 그러나 엄마에 이끌려 서울에서 살게 된 순정은 자신의 존재자체를 힘겨워한다.

늘 조용하게 지내지만, 엄청난 포스로 반 친구들에게 엄청난 존재감을 느끼게 하는 순정이지만 스스로가 느끼는 존감은 제로에 가깝다.

반면 강이지는 내면의 상처를 감추기 위해, 늘 밝게 보이려 노력한다. 덕분에 '쉬운 년'이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가난으로 인한 부모의 잦은 다툼과 아무 존재감 없었던 어린시절의 상처를 감추려 애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까라면 가는 걸 자신의 역할로 생각로 생각하며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고,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머릿수 채워 주는 역할을 하는 학생이 있다.

이순정, 강이지에 비해 이름도 잘 등장하지 않는 이 아이는, 책 속에서도 그저 머릿수 채워 주는 역할처럼 너무도 존재감이 없다.

이 아이의 존재감은 결말에 가서야 드러나는데, 생각해보면 학생들의 대부분이 생각하는 자신의 존재감은 바로 이 아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나 역시도 학창시절 이 아이처럼 스스로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쿨샘은, 첫 등장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쿨샘에 대한 아이들이 느끼는 첫 인상은 "쿨하네!"였으며, 그뒤 선생님의 별명은 쿨샘이 되었다.

 

"하이고! 언제부터 이년이 욕이셨어요? 내숭 떨기는. 시끄러, 이년아!" (본문 8p)

 

정말 입에 짝짝 달라붙고 감칠맛까지 나는 선생님의 "이년"은 욕이라기보다는 친숙함의 표시였다. 쿨샘은 어린시절의 상처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고, 그로인해 마음에 상처를 안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읽을 낼 수 있었다.

쿨샘이 작성하라고 한 '마음 일기'는 생뚱맞게 여겨졌지만, 그로인해 아이들은 어느 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쿨샘의 댓글 한줄에 위로를 받았으며, 의지하고 싶어했다.

 

"마음은 한시도 쉬지 않고 너희를 부르고 있다 이 말이야. 아프다고 부르고, 슬프다고 부르고, 외롭다고, 힘들다고, 기분 째진다고....계속 너희를 부르고 있다 이 소리야. 그러면 봐 줘야 할 거 아니야. 대답을 해 줘야지." (본문 70p)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보든 흔들리지 않게 돼. 누구 때문에 힘들고, 누구 때문에 살 것 같고, 누구 때문에 죽고 싶고,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나 혼자서도 꿋꿋하게 살 수 있다는 뜻." (본문 71p)

 

"샘, 마음을 알면 뭐가 좋아요?"

"좋은 점.....힘이 생겨. 내 마음을 모르면 눈이 자꾸 밖으로 가거든. 다른 사람, 다른 조건, 다른 환경, 이런 것 때문에 흔들리고 힘들고, 괴로워질 때가 많아. 그런데 내 마음을 알면 중심이 잡히면서 흔들리지 않게 돼. 힘들면 힘들구나, 하고 내가 알아주고 지치면 지치는구나, 하고 내가 알아주는데 굳이 다른 사람 위로가 필요하지 않잖아. 다른 사람 눈치 안 봐도 되잖아." (중략)

스스로를 미워하는 일도 줄어들게 돼. 실패해도 미워하지 않게 된다 이거지. 점점 더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거여. 그러면 어떻게 돼, 단 사람이 나를 좀 덜 사랑해도 내가 날 사랑하니까 꿋꿋하게 버틸 수 있는 거여." (본문 157~160p)

 

존재감이 없는 세 아이는 쿨샘이 만든 소모임 '마음 나눔 반'에 합류하게 되고, 각자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털어놓게 된다. 그렇게 서로에게 존재감있는 친구들이 되어가면서, 각자가 떠안고 있는 문제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당장 괴로워서 죽어 버릴 것 같았던 마음은 다 지나갈 것이다.

 

"어떤 마음이 들어도 괜찮아. 마음이 원래 그래. 미친년같아. 예의도 없고 도덕도 없어. 누굴 죽이고 싶은 마음? 괜찮아. 죽고 싶은 마음? 괜찮아. 자책할 필요 없어. 그건 그냥 마음일 뿐이니까. 지켜보면 지나가고 흘러갈 마음이니까. 그 마음에 휘둘리지만 않으면 돼. 그럼 저절로 사라져. 제발.......제발 잊지 마라. 너무너무 힘들면 주문처럼 외워. 지나간다, 이 마음도 지나간다, 지나간다....." (본문 88,89p)

 

어른이 되고나면 청소년시기에 힘들었던 마음을 모두 잊어버리고 만다. 그래서인지, 요즘 아이들이 힘들어하는 마음을 도통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쿨샘은 자신이 어린시절 받았던 상처와 아픔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고, 그 마음으로 아픈 아이들을 다독여주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마음의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하고, 아픈 마음을 어쩌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 누구도 그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려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해 휘둘리고만 있다.

'마음 일기' 참 유치한 듯 들리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마음을 알게 아이들은, 힘겹게 안고 있는 문제들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이제 이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누구를 탓하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잡게 된 이들은 이제 세상 속에 큰 존재감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마음 일기는 바로 소통이었다. 선생님과 학생간의 소통은 관심과 사랑이었고, 이것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근본적인 힘이 되었던 것이다.

 

코끝이 찡해지는 뭉클함이 느껴진 책이다. 주인공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겠지만, 내 딸이 스스로 느끼는 존재감은 무엇일까를 생각해보기도 하고, 나는 쿨샘처럼 의지하고 싶은 엄마였는지, 순정이나 이지의 엄마는 아니였는지 생각해보면서 사춘기 딸과 엄마인 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지만, 너무도 쿨한 '쿨샘'으로 인해 이야기가 어둡지 않았던 점이 좋았다. 청소년, 부모 그리고 청소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아픈 아이들은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을 기다리고 있음을, 이 책은 너무도 분명히 알려주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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