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 최고의 날
카를로스 발마세다 지음, 박채연 옮김 / 북스토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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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소설, 드라마의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는 바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랑의 소재는 나이에 따라 그 깊이가 달리 표현되어지곤 하는데, 십대는 풋풋한 사랑을, 이십대는 열정적인 사랑을 주로 묘사한다면, 삼십대는 좀더 강한 치명적인 사랑이 존재한다. 삼십대는 일과 사랑 등 삶이 조금 농후해지기 시작하는 시기이기에, 사랑에 대한 감정의 깊이가 더 깊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서른 살, 최고의 날>>은 사랑, 이별, 배신 등의 너무도 흔한 소재를 다루고 있어 조금은 식상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주인공 파울리나가 쓰고 있는 논문과 신화, 오페라, 연극 등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풀어냄으로써 여타의 작품들과 차별성을 두어 식상함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던 거 같다.

 

 

 

"나는 이미 지옥에 있어요"

표지의 글, 하얀색 표지 위에 빨간 장미 꽃잎과 아름다운 여인이 날카로운 칼을 감춘 뒤태의 모습이 '치명적인' 느낌을 풍겨준다. 왠지 서른 살이라는 단어와 맞물리는 느낌이 든다. 주인공이 맞이하는 최고의 날은 어떤 의미를 주고 있을까? 표지삽화와 글이 너무도 인상적인 이 작품은 저자의 네 번째 소설이자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 생각해보게 한다. 로맨스 소설이 가지고 있는 달콤함과 에로틱함이 곳곳에 담겨져 있지만, 사랑의 본질에 대해 끝임없는 자문을 구하게 하는 이야기는 로맨스 소설을 가장한 철학 소설이라 해도 좋을 듯 싶다.

 

'사랑과 연인들에 대한 책'을 주제로 논문을 준비하는 파울리나 바르톡은 문학을 전공한 서른 살의 대학 강사이다. 마르텔플라타 국립대학교 도서관에서 논문을 쓰기 위해 '아이네이스'를 분석하는 데 집중하던 파울리나는 도톰한 입술과 푸른 눈을 가진 호나스를 만나게 된다. 문학비평과 이론을 가르치는 교수이자 과학기술부 연구원인 서른두 살의 호나스는 전임교수 자리를 얻고 이곳에 이사 온 지 몇 주 안 되었으며, 여의사와 결혼해 7년을 함께 살았으며 이혼한 지 6개월이 지난 상태였다.

2주일 동안 매일 만난 두 사람은 곧 사랑에 빠졌고, 변호사인 라미로와 이별을 선택한다. 언제까지나 기다리겠다는 라미로의 마지막 말은 파울리나는 괴롭혔는데, 호나스와 연애를 시작하면서 파울리나는 지나치게 논리적인 악몽에 시달리게 된다.

파울리나는 같은 문학과 교수이자 대학시절부터 친구인 미카엘라와 함께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꿈을 해석해보지만, 파울리나의 꿈은 연극이나 신화, 오페라 등의 문학작품과 맞물리면서 파울리나의 미래를 예견하는 듯 보여진다.

호나스의 여러가지 의심스러운 행동들은 파울리나를 더욱 힘들게 하는데, 호나스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지면서 파울리나는 자신을 점점 잃어간다.

파울리나는 글라우케와 결혼하기 위해 자신을 버린 이아손을 복수하고 날개가 달린 용이 끄는 태양의 멋진 마차를 타고 영원히 도망간 메데이아를 생각한다. 파울리나는 그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 작품 속 주인공들을 통해서 매혹적이면서도 치명적인 자신의 사랑을 되찾고자 한다.

 

<<서른 살, 최고의 날>>에서는 입센의 <페르 귄트>, 오페라 <나비 부인><트리스탄과 이졸데><탄호이저> 등의 작품들은 사랑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랑의 본질에 대해 파고든다. 사랑과 이별, 배신과 복수, 열정 등 사랑의 실체를 작품과 파울리나의 논문을 통해서 확인해보게 된다. 무엇보다 사랑과 이별, 배신과 증오 등 사랑의 면면을 경험하게 된 파울리나의 심리적인 묘사가 탁월했는데, 사랑이라는 느낌과 동시에 다가오는 불안과 의심 그리고 미련과 애달픔 등의 감정을 통해서 우리가 가진 사랑의 또다른 이면을 대면하게 한다.

또한 파울리나가  "사랑은 육화된 열정인 거 같아요. 안 그래요? 만일 만질 수 있고 쾌락을 줄 수 있는 당신 몸이 없다면 당신에 대해 내가 느끼는 사랑은 강박관념이 되고 말 거예요." (본문95p) 라고 한 말처럼, 연인의 잘린 다리를 가슴에 끌어안은 채 의사들을 향해 애인을 살려달라고, 연인의 몸을 망가뜨리지 말라고 사정했던 파울리나 엄마의 오랜 기억처럼 사랑과 육체는 불가분의 관계일지도 모른다는 점도 고씹어보게 한다.

 

이 작품은 이렇게 파울리나의 사랑과 연애를 통해서 사랑의 본질을 탐구하게 하고, 사랑의 의미를 재발견하도록 이끌어내고 있다. 에로틱함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분노와 증오로 서스펜스를 표현하고자 했지만, 그 느낌이 다소 부족했는데, 악몽과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연결시킴으로써 식상한 소재를 조금은 다른 전개로 보여주려고 했던 부분이 작가의 의도대로 이끌어가지 못한 느낌이 든다.

책을 읽고나자 표지 글 "나는 이미 지옥에 있어요"라는 문구가 조금은 다르게 들려온다. 사랑이 시작되면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이라 명명하면서 사랑의 이면을 내세우며 스스로를 감정의 지옥 속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사랑과 동시에 찾아오는 그 감정의 이면들은 사랑과 뗄 수 없는 부분이기에 사랑이 더욱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의 이런 이면들을 강조한 결말은 내게는 조금은 아쉬운 작품이었던 거 같다.

 

(사진출처: '서른 살, 최고의 날' 표지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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