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레 사진관 - 상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네오픽션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친정엄마의 영정사진은 누군가의 결혼식날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사진을 사용했다. 갑자기 돌아가신터라 급하게 앨범을 뒤적여 찾은 사진인데, 즐거운 결혼식날임에도 불구하고 영정사진 속 엄마의 모습은 왠지 인생의 고뇌와 쓸쓸함이 잔뜩 묻어나 있다. 엄마 제삿날이 되면 으레 우리는 영정사진 속 엄마는 남아있는 자식을 안쓰럽게 쳐다보는 듯한 눈빛이라고 말하곤 한다. 즐거운 날이었지만, 무척 피곤했을지도 모를 엄마의 표정이 그렇게 보이나보다 생각하곤 했지만, <<고구레 사진관>>을 읽으면서, 이 사진이 영정사진을 쓰이게 될지도 모를 어떤 예언에 의해서 찍힌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좀 섬뜩하긴 하다.

 

<모방범> 때문에 굉장히 미스터리를 기대했지만, 그보다는 약간의 미스터리를 가미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성장설이라 하는 편이 더 나을 듯 하다. 이는 일본에서 '신인 미야베 미유키'라는 홍보문구를 선보였을 만큼, 작가는 이번에 기존의 작품 세계와 확고하게 달라졌다고 하니, 그런 이유에서 일게다. 그럼에도 왠지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일본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 중 하나인 그가 가진 명성탓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결혼 이십 주년을 맞아 꿈에 그리던 집을 마련한 탓에, 열여섯살의 에이이치에게는 통학 전차환승편도 훨씬 편해졌다지만 에이이치(애칭은 하나짱)는 이 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지은 지 삽십삼 년이나 지난데다, 예전에 '고구레 사진관'이라는 가게가 딸린 재미(?)난 집이기 때문이다. 에이이치의 눈으로 바라보는 부모의 모습은 너무도 '괴짜'이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같은 반이 된 후로 계속 친구로 지내온 다나코 쓰토무(애칭은 덴코)에게는 이런 점이 오히려 즐거움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이사온 얼마 후, 성난 여고생이 '고구레 사진관'에서 찍은 사진이라며 울고 있는 여자의 사진이 찍혀있는 심령 사진을 건네주고 갔다. 그냥 찢어버리지 못한 에이이치는 사진을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주기 위해, 사진과 관련된 인물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에이이치가 심령사진의 문제를 하자, SNS를 통해 이 이야기가 퍼져나가고, 에이이치는 또 하나의 심령 사진과 관련된 사건을 맡게 된다.

 

우리는 흔히 심령사진이라고 하면, 죽은 사진의 혼이 찍힌 것을 말하곤 하는데, <<고구레 사진관>>에서의 심령사진은 좀 다르다. 사람들은 감추고 싶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 가끔은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도 있지만, 대부분은 혼자 비밀을 감내하며 아파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흔히 얼굴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제아무리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해도 아프고 슬픈 마음을 갖고 있다면, 그 미소 속에서 슬픔이 느껴지기도 하는 법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심령 사진은 사진 속에 감추어진 누군가의 슬픔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짱이 미스터리한 사진을 풀어나가는 동안, 그는 그저 '괴짜'라고만 이름 붙혔던 가족의 아픔을 꺼내들게 되고, 자신이 가진 문제들과 마주하게 된다.

 

미야베 미유키는 미스터리 추리소설 외에도, 청소년소설, SF소설, 시대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출간했으며,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고 하는데, <<고구레 사진관>>은 그 추리소설과 청소년소설이 적당히 버무려진 작품인 듯 싶다.

심령사진을 통해 약간의 미스터리를 가미하긴 했지만, 미스터리 형식을 취하기보다는 흥미로운 소재로서 다가왔으며, 이 심령사진을 소재로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잔잔한 감동을 가미한 에이이치의 성장이 돋보이기 때문이다.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이 아니었다면, 좀더 좋은 평점을 매겼을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도 강했기에, 이 작품이 가진 잔잔한 감동과 열여섯 고등학생의 성장이 저자의 작품에 가진 기대에 대한 배신(?)이 마이너스 요인이 되었다.

 

에이이치가 심령 사진을 통해서 자신과 가족의 문제를 대면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는 <<고구레 사진관>>의 심령 사진을 통해서 친정 엄마의 영정 사진을 좀더 자세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반쯤 감겨진 슬픈 눈매와 약간의 미소를 지었지만 쓸쓸함을 감출 수 없는 엄마의 얼굴은 결혼식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때 엄마는 어떤 슬픔이나 아픔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였을까? 혹은 앞서 말한것처럼 지금 찍고 있는 이 사진이 앞으로 영정사진으로 사용될수도 있다는 것을 예감했던 것일까? 엄마가 돌아가신지 9년이 되어가는데, 이 책을 읽은 후 영정 사진에 더 많은 신경이 쓰이게 되었다. 그 시절 엄마의 마음을 잘 알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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