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킹제이 ㅣ 헝거 게임 시리즈 3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2부 <캣칭 파이어>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탓이었나? <<모킹제이>>에서는 다소 실망감이 느껴진다. <헝거 게임><캣칭 파이어>와 달리 완결편 <<모킹제이>>는 너무도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헝거 게임>에서는 청소년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느낌을 강하게 보여주었고 <캣칭 파이어>는 캣니스와 피타의 로맨스를 중점으로 다루었다면 <<모킹제이>>는 전쟁과 권력으로 눈을 돌렸다. 갑자기 너무 다른 분위기를 선보였기 때문인지, 전편에서 느꼈던 긴장감, 흥미로움은 사라지고, 전반적으로 암울한 느낌을 준다.
저자 수잔 콜린스는 이 시리즈에서 무언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걸까? <헝거 게임>에서 보여주었듯이 캣니스의 용기와 시련을 통한 성장과정만으로도 청소년들에게도 큰 의미가 부여되었을텐데, 갑자기 변화된 분위기가 영 마뜩잖다.
2권 <캣칭 파이어>에서는 독재권력을 가진 캐피톨의 스노우 대통령이 캣니스를 죽이기 위해 75주년 기념일에 다시 한번 캣니스를 헝거 게임에 참여시킨다. 피타와 캣니스는 서로를 살리기 위해 경기에 참여하지만, 피타는 캐피톨에 잡히고 캣니스만이 가까스로 구출된다. 캣니스로 인해 12구역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캣니스는 자유를 열망하는 이들의 영웅적인 존재가 된다.
<헝거 게임><캣칭 파이어>에서 캣니스의 상징적 의미가 되었던 '흉내어치'는 저자가 만들어 낸 가상의 새로 번역에 의해 흉내어치로 옮겨졌지만, 완결편에서 '모킹제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된다. <<모킹제이>>는 사라진 줄만 알았던 13구역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구출된 캣니스는 13구역에서 반란을 모색하는 이들과 함께 지내게 된다.
캣니스가 살던 12구역은 불에 타 사라졌지만, 다행히도 게일의 도움으로 엄마와 여동생 프림도 함께 살아남는다.
13구역의 대통령은 알마 코인이며, 13구역은 지하 세계에서 오랫동안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왔다. 이들은 캣니스가 혁명의 화신이 되어주길 바란다.
싸워야 할 또 하나의 권력이 생겼다. 나를 자기 게임 속의 한 부분으로 이용하기로 결심한 또 하나의 강력한 플레이어가 등장한 것이다. 물론 뜻대로 돌아가는 일이라곤 없는 것 같지만. 처음에는 게임운영자들이 나를 자기들의 스타로 만들더니, 독이 든 딸기 한 줌이 가져온 후폭풍으로 휘청거렸다. 그러고는 스노우 대통령이 나를 이용해 반란의 불길을 끄려 했지만 내 모든 행동은 사람들을 선동하는 결과만 낳았다. 다음엔 반군들이 나를 금속 집게발로 경기장에서 끄집어내 자신들의 모킹제이로 삼으려 했다가 내가 날개를 원치 않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에서 회복해야만 했다. (본문 68,69p)
캣니스는 피타와 친구들의 안전을 요구하는 대신 모킹제이로서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을 약속하고, 게일과 함께 13구역의 반군들과 합류한다. 마치 76회 헝거게임이 판엠 전지역에서 일어나듯 했으며, 캣니스는 그 게임에 합류하는데, 이 과정에서 전쟁의 실태가 고스란히 묘사된다.
스노우 대통령의 독재로 인해 판엠 12구역 사람들은 어렵고 힘들게 살아왔다. 그렇다면 반란으로 인해 스노우 대통령의 권력에서 벗어난 13구역은 어떨까? 코인 역시 캣니스는 불필요한 존재였고,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캣니스는 제거되어야 하는 인물이었다.
<<모킹제이>>는 이렇게 전쟁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권력자들의 횡포를 저자의 세밀한 묘사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알 수 없는 미래의 모습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너무도 끔찍하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였던가? 이 잔인함과 비겁함이 미래에서도 되풀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암울하기만 하다.
<헝거 게임><캣칭 파이어>에서 보여지는 캣니스는 사람들의 희망이었지만, <<모킹제이>>의 캣니스는 결국 권력자들에 의해 이용당한 희생자일 뿐이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가족과 친구를 지키려했던 캣니스의 순수한 용기는 권력자들에 의해 퇴색되어버렸다. 전편과는 사뭇다른 분위기의 완결이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저자는 전쟁의 아픔과 권력자들의 모순은 꼬집어냈다. 조금은 억지스러운 진행이 아니었나하는 아쉬움, 피타와 캣니스의 로맨스를 설레임으로 기대했던 내용과 사뭇 다른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내게 필요한 것은 봄의 민들레다. 파괴가 아닌 부활을 의미하는 밝은 노란색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잃었어도 삶은 계속될 수 있다는 약속이다. 다시 좋아질 수 있다는 약속이다. (본문 406p)
결국 남은 것은 '희망'이다. 저자 수잔 콜린스는 전쟁, 권력자의 횡포, 좌절, 아픔, 시련 그 모든 것 뒤에는 '희망'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나보다. 세상은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을, 미래는 더 밝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려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