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에서 토끼가 뛰어나오다 시공 청소년 문학 45
남상순 지음 / 시공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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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리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곤 덥석 모두를 먹어 삼킨 이 시키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중략)

왜 바꾸진 않고 마음을 조이며 젊은 날을 헤맬까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이데아> 가사 중의 일부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 그 가사에 흠뻑 빠져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미 중고등학생의 현실에서는 벗어나 있었지만, 학창시절 느꼈던 그 답답함을 표현한 듯하여 노래를 듣는 순간 후련한 기분이 들었었다.

이제 중학생인 내딸이 그 현실에 놓여져 있다. 그 답답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착실히 학교 생활을 잘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어내길 바라고 있다. 물론 현 교육체계에 대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교실이데아>에 열광했었던 기억은 이미 외면한 채, 학교를 잘 다니는 것만이 살길이라 생각하는, 학교가 우리 아이들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편협한 생각을 갖게 된 어른이 되었기 때문인가보다.

그런데 정말 학교에 다녀야만 우리 아이들이 무엇이 될 수 있는걸까?

<<라디오에서 토끼가 뛰어나오다>>는 열두 살 '유령 소년' 요리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성장소설이다. 학교 교육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요리의 좌충우돌 성장 이야기가 노래의 가삿말처럼 구슬프게 혹은 흥겹게 전해진다.

 

'늘푸른자원'이라는 이름의 고물상에서 할아버지, 삼촌 그리고 고양이 두리와 함께 살아가는 열두 살 소년 요리는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고물상 가장 안쪽 후미지고 높은 자리에 돌돌 말린 헌 장판 더미 위에 버려져 있던 갓난 아기는 할아버지에게 '요리'라고 불리며 이곳에서 함께 살게 되었던 것이다. 학교에 가자고 했을 때 도리질을 쳤던 요리는 아홉 살이 되었을 때 심심하지 않았기에 학교에 가지 않았다. 열 살이 되자 학교에 갔어야 하나 싶을 때가 있기는 했지만, 그건 어딘가 근질근질하고 불장난 같은 게 하고 싶을 때였다. 학교에 다니지는 않았지만, 요리는 노래를 통해서 말과 글을 배웠고, 사람과 인생 그리고 가사에 나오는 땅을 지도에서 찾아보기도 했고, 그 땅을 직접 찾아가 보고 싶은 꿈도 가졌다.

 

그런데 학교가 본격적으로 궁금해지기 시작한 것은 열두 살이 되어 하나를 만났을 때였다.

고물상에 놀러오던 하나가 며칠 째보이지 않자 요리는 하나를 만나기 위해 학교에 갔다가  오정민 선생님으로부터 학교에 다니라는 권유와 함께 '임시 학생 증명서'를 받게 된다.

고민 끝에 학교를 가지 않자, 선생님은 요리를 찾아오고 학교를 보내야한다는 선생님과 학교에 꼭 다녀야 하느냐는 삼촌과의 언쟁에서 자신이 출생신고도 되어 있지 않은 '유령 아이'임을 알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된다.

후에 삼촌의 권유로 학교에 가게 된 요리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하나를 보게되고 함께 학교를 다니지 말자고 하지만, 하나는 자신만의 계산방식으로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옆방에 사는 대학생 언니가 일주일에 한 번씩 수학 가르쳐 준단 말이야. 그 언니가 그러는데 난 머리가 좋대. 힘들어도 꿋꿋하게 공부하래. 날 괴롭히는 애들, 알고 보면 그냥 시시한 애들인 거야. 내가 걔네들 때문에 마음 상하고 괴로워서 주눅 들고 뭔가를 포기한다면 그게 더 부끄러운 거래." (본문 135p)

 

그러나 뜻하지 않게 요리가 학교 다니는 것을 반대하는 학부형 때문에 요리는 심한 좌절을 느끼게 되지만, 두려움을 이기고 자신의 얼굴과 마주하면서 학교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찾으려한다.

 

지금까지 학교를 너무 좁게만 생각한 건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세상 전부가 다 학교일 수 있었다. (중략) 그렇다고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란다. 공부가 정말 하고 싶다면 검정고시를 쳐서 아무도 반대하지 못하게 정문으로 당당히 중학교에 들어가면 된다.

'사람이 꼭 뭐가 되어야 합니까?'

삼촌이 오정민 선생님에게 한 말이었다. 어쩌면 그 말은 틀렸을 수도 있다. 요리는 반드시 무언가 될 것이다. 누구보다 요리 자신이 그걸 믿었다. 다만 누구이고 무엇일지가 학교에서 제시하는 목록에 들어 있지 않을 수는 있었다. (본문 154,155p) 

 

학교에서 배워야 꼭 무언가를 될 수 있다는 사회의 통설 속에서 자유로운 소년 요리는 학교 밖에도 세상이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테두리를 벗어나 학교가 아닌 학교 밖으로 나와 <교실 이데아> 노래를 부른 서태지나 학교가 아닌 노래를 통해서 세상을 배우고 이제 막 삶의 방식을 찾기 시작한 요리처럼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길은 여러 갈래길이 있다.

하지만 요리도 학교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언제가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보는 요리의 마지막 모습을 통해서 학교 밖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정답이라고는 할 수는 없다. 좀더 자유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있다면, 삶의 방식을 찾는 길을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방식을 선택하던 간에, 주위의 시선과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자유롭고 자신의 내면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요리는 바로 그 용기를 선물하고자 했을 것이다.

 

거울을 똑바로 쳐다보기까지 한참이 걸렸다. 용기를 내기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어둠 속에서 배를 끌며 움직이던 유령 아이의 생김새를 확인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어서 꽤나 무섭고 꺼림책했다. 하지만 눈을 똑바로 뜨고 마주 보아야 할 것 같았다. 거울을 자세힌 들여다본 적은 없지만 요리가 생각하는 요리는 아름답고 멋진 소년이었다. 상대원초등학교 남자아이들이 모두 자기 밑이라는 생각에는 아직도 변함이 없었다. 그 멋진 모습을 오정민 선생님이 알아봐 준 게 아니던가. (본문 1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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