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비처네 (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
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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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키웠음에도 '처네'의 뜻을 잘 모르고 있었다. 언뜻 들었던 기억은 있는데 책 제목을 보고서도 '누비처네'가 무슨 뜻일까? 연신 궁금했다.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그 뜻을 알게 되었고 처네로 아이를 업고 키웠던 10여전을 문득 떠올려보았다. 왠지 모를 그리움, 아득함이 밀려온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소설보다는 수필이 마음에 더 와닿는다. 이제야 비로소 과거에 대한 그리움, 추억, 공감이라는 감정에 익숙해졌나보다. 저자의 글 속에는 노스탤지어가 담뿍 담겨져 있는데, 과거를 돌아보며 담담하게 쓰여진 글 속에는 아늑함이 느껴진다.

 

부끄럽게도 저자 목성균의 작품을 읽어본 건 처음이었기에, 저자에 대한 소개를 공들여 읽어보게 되었다. 목성균은 십대에 문학에 대한 꿈을 꾸었지만, 학업 중단과 사업 실패로 낙향하여 산림공무원이 되었다. 25년이 지나 정년퇴직 후 황혼길에 들어서야 접었던 유년의 꿈을 다시 떠올렸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병상에서 눈을 감기 직전까지 글을 썼고 펜을 잡은 채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글은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읽히게 되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수필계에선 가장 탁월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그 과거의 모습을 통해서 현재의 모습을 꼬집어내는 울림을 주고 있어, 미래는 과거 속에 있다, (본문 624p)라는 해설 김종완의 글귀가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기러기들은 맨 앞자리의 필요성을 잘 안다. 그랫 존중한다. 기러기 떼의 앞자리는 선거법에 의해서 선출하지 않는다.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서슴없이 앞으로 나서고, 죽지의 힘이 떨어지면 서슴없이 물러난다. 임기 5년이 단임제의 자리가 아니다. (본문 90p)

 

저자가 '누비처네'에 갖는 감정은 좀 특별하다. 내가 두 아이들의 배냇저고리를 보관하고 있는 것과도 다른 듯 보인다. 그에게 누비처네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갖고 있는 연민이 있고, 동반자의 의미를 일깨워 준 소도구이기도 하다.

 

구닥다리 세간에 대한 아내의 애착심은 그것들이 우리의 인생을 연출한 소도구이기 때문이다. 이제 아내의 애착심을 존중해야지, 누비처네를 보면서 생각했다. (본문 28p)

 

그러고보면 내가 아이들의 배냇저고리나 결혼하면서 구입한 실용성없는 원앙금침을 버리지 못하고 장농 깊숙이 넣어둔 것도 인생을 연출한 소도구이기 때문이었나보다. 그저 버리기 아까워서, 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내 마음은 그런 의미를 이미 이해하고 있었나보다. 지나간 과거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나의 인생을 연출한 수많은 소도구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목성균의 옹기와사기, 목도리, 누비처네, 부엌 궁둥이, 선풍기, 기둥시계처럼 그는 인생을 연출한 소도구들을 통해서 과거를 돌이켜보며 독자들에게 삶의 돈독함을 일깨운다. 또한 저자는 자연의 모습을 통해서 삶의 이치를 깨닫는데, '혼효림'에서는 소나무와 참나무의 모습을 보면서 인간사회와 대비시킨다.

 

가난하면서 가난을 가난으로 여길 줄 모르고 성의껏 살던 삶이 사라져 버린 우리 땅의 여분을 차지하고 억새만 홀로 피어서 어쩌자고 저리도 고결스러운지 -. (본문 52p)

참나무에 의해서 소나무의 기품이 뛰어나 보이고, 소나무의 뛰어난 기품에 의해서 참나무의 필요성이 인식된다. 백두대간의 아름다운 숲들은 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그렇게 이룬 혼효림이다. 그 돈독한 숲의 사회상이 인간사회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본문 127p)

 

서정적인 표현들이 그가 갖고있는 노스탤지어를 내게도 그대로 전달한다. 조부모, 부모 그리고 아내와 친구에 대한 그의 아름다운 기억들이 애잔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참 오랜만에 과거를 추억해 보았다. 그의 글 속에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며, 내가 누리고 있는 이런 소소한 삶에 대한 감사함을 느껴본다. 잔잔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감동을 주는 이야기에 따뜻한 기운이 마음 깊숙이 자리잡았다.

 

아버지의 손은 육감적이고 내 손은 턱없이 왜소하다. 전혀 닮지 않은 손이 운명의 때에 보이 닮아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닮아 있다. (본문 32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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