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싸리 정사 화장 시리즈 2
렌조 미키히코 지음, 정미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시대적 배경 속에 사랑, 죽음, 인간의 본성이 절묘하게 버무려진 미스터리물 <<저녁싸리 정사>>는 화장(花葬)시리즈의 완결편이다. 여기서 화장이란, '꽃으로 장사지내다'라는 뜻인데 수록된 단편단편에는 꽃이 사건의 중심에 있다고 봐도 좋을 듯 싶다. 수록된 꽃은 트릭이 되기도 하고, 복선을 암시하기도 하고, 죽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은유적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어두운 시대적 배경 속에서 스며든 인간의 어두운 단면 위에 깔려진 아름다운 사랑이 꽃과 조화를 이루어내고 있다. 화장 시리즈가 '일본 미스터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불리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짐작이 된다.

 

<<저녁싸리 정사>>에는 '붉은꽃글자, 저녁싸리 정사, 국화의 먼지' 3편의 미스터리물과 유머를 가미한 미스터리 연작 '양지바른과(課) 사건부'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붉은꽃글자>는 그 반전이 너무 놀라웠는데, 이야기는 '나'가 이야기를 하는 듯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욕망, 탐욕과 분노가 가장 많이 수록된 작품인데, 그 감정들로 인한 충격적인 반전이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나는 꽃으로 돌팔매질 당하며, 꽃잎 한 장 한 장에 실린 죄의 무게에 파묻혔습니다. 그러나 한 마리 귀신의 모습을 하고 있는 나는 끝내 비명을 지르지도 않고,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과도 같은 그 붉은색을 무언가 너무나 아름다운 것에 매료된 눈빛으로, 미소까지 지으며 바라보고 있습니다. (본문 81p)

 

표지 제목을 장식한 <저녁싸리 정사>는 메이지 시대를 배경으로 정부 고위간부의 아내와 그 집 서생의 동반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은 그 아내와 서생의 이름을 따서 '저녁싸리 정사' 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데,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 이면에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만과 민중들의 고통, 아버지에 대한 복수 등의 놀라운 진실이 숨겨져 있다. 이 단편에는 싸리꽃이 등장하는데, 이 꽃은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데 이용된다.

 

<<국화의 먼지>>는 어두웠던 시대상을 가장 많이 반영한 작품으로 한 군인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쫓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대륜의 국화꽃 떨어지는 한 잎에 나의 피도 함께 보내는 혼탁한 세상의 가을 (본문 243p)

 

이 단편에서 보여지는 국화는 국화가 가지고 있는 은유적인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포석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는데, 군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굴욕감과 천황에 대한 충성심이라는 두 가지 심리를 이용한 이야기는 실제 역사사건 속에서 절묘하게 녹아내리고 있다.

 

<양지바른과(課) 사건부>는 총 3화로 구성된 작품으로 유머가 아주 많이 가미된 미스터리 물로 긴장감보다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한 블랙 코미디라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이 속에는 다이토 신문사의 한가로운 자료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사회부에서 밀려난 시미다 과장, 아이코, 오가와, 로쿠스케 4명이 세 가지 사건과 맞딱뜨리면서 벌어지는 내용을 수록한다. 기존에 수록된 단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인생의 가을에 접어든 시마다의 모습은 가족과 사회 속에 겉도는 현 가장들의 모습을 대면하고 있는 듯하다.

 

<<저녁싸리 정사>>는 표면에 드러난 내용보다는 꽃잎처럼 겹겹이 쌓여져 있는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면서 놀라운 반전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반전 속에서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보여주는 부분으로 인해 씁쓸함이 느껴진다. 사랑 속에서도 서로 각자의 철저한 계획이 숨겨져 있고, 인간의 약한 본성을 이용한 사건이 안타깝기만 하다.

꽃, 암울한 시대적 배경, 사랑, 인간의 본성을 이용한 놀라운 반전을 가진 이 놀라운 작품 <<저녁싸리 정사>>는 다이쇼 시기를 배경으로 한 <<회귀천 정사>>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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